신앙 고백’에 대한 우리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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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고백’에 대한 우리의 자세

송영찬 국장

우리는 우리의 삶을 규모 있게 가꾸기 위해 신앙의 선배들로부터 물려받은 좋
은 신앙고백서을 가지고 있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 대표적인 신앙고백
서로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하이델베르그 신앙고백서, 벨직 신앙고백
서 등을 들 수 있다. 하지만 오늘날 이런 신앙 고백이 오직 교회 생활과 관계
된다고 여기는 경향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데 이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
이 아닐 수 없다.

대다수 교회 성도들은 교회 생활과 관련해서는 신앙 고백에 의해 규제를 받지
만 일상의 삶 속에서는 그것으로부터 자유롭다고 여기고 있다. 심지어 목회자
들 가운데서도 일부는 일상의 삶 속에서 신앙 고백과 아무 상관없이 사는 경
우도 발견된다. 그러나 우리는 일요일뿐 아니라 월요일에도, 교회에서만 아니
라 일상의 모든 삶 속에서 우리의 신앙 고백과 깊은 관계 속에 묶여 있어야 
한다. 우리는 교회의 일원으로서 교회 생활에서뿐 아니라 사회의 
일원으로서 
매일의 삶에서도 신앙 고백에 매여 있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매일 그리고 매 시간 하늘에 계신 우리의 아버지의 말씀에 따라 살아
야 한다.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진정한 자유이다. 하
나님의 말씀은 우주적이고(universal) 영속적이며 우리의 모든 삶에 관계한
다. 같은 원리에 따라 우리가 기독교인으로서 하는 고백은 우주적이며 영속적
이며 우리의 모든 생활과 관계된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
로부터 떠나 우리 자신의 욕구를 따르도록 허락된 소위 중립 지대는 없기 때
문이다. 

하나님의 의지와 우리들의 욕구 사이에 중립 지대가 없다는 것은 우리들의 일
상 생활에 대해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 분명하다. 신앙 고백의 우주적
인 기능은 우리의 힘이 닿는 한 우리들의 모든 삶의 현장에서 개혁 신앙적인 
성격을 드러내어야 함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우리의 신앙 
고백에 기초한 개혁 신앙적인 특징을 모든 삶의 현장에서 나타내어야 하는 것
이다. 이것은 어떤 열정적인 사람들의 일종의 특별한 행위와 같은 것이 아니
며 진정 자신의 신앙을 말과 
행동으로 고백하는 개혁교회 신자들의 귀중한 소
명인 것이다. 

신앙 고백이 진실로 우리의 일상 생활에서 기능해야 하고 우리는 우리 선조들
이 가졌던 것과 동일한 믿음의 내용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하는 주장이 우리
가 신앙 고백에 대해 과대평가하기 위함은 아니다. 이것은 일종의 신앙고백주
의(confessionalism)가 될 수 있으며 자칫 하나님의 말씀 통치에 정당하게 부
응하지 않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신앙 고백은 성경의 근본적인 확실성으
로부터 유래된 파생적 확실성만을 가질 뿐이다. 동시에 우리는 만일 성경적
인 신앙 고백을 가질 여지가 있고 요청이 있다면 이 신앙 고백을 의심하지 않
아야 한다. 

우리가 신앙고백주의에 빠지는 것을 거부한다면 성경주의(biblicism)에 빠지
는 것 역시 거부해야 한다. 성경주의란 성경에 기록된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용납하지 않는 것인데 그렇게 되면 자칫 성경이 갖지 않은 어떤 기능을 성경
에 첨가하는 오류를 낳게 된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삶의 실체의 밖에, 
즉 교회에 위임되어져 온 것을 지키고 유지하기 위해 오랫동안 싸워온 교회 
생활의 실체 밖으로 밀어내는 결과
를 가져올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한 신앙고백(confession)으로서 그 신앙 고백이 
가지는 특성 때문에 결코 신앙고백을 포기할 수 없다. 하나님의 말씀으로부
터 분명하고 확실한 논증으로 그 신앙 고백이 틀렸음이 입증되지 않는 한 우
리가 고백하는 신앙을 포기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혹 그런 경우라 할지라도 
우리는 신앙 고백에 작별을 고하지 않고 교회적인 방식을 택해 해명된 진리
에 근거하여 새롭게 접근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신앙 고백에 대한 과대 평
가도 안 되지만 다른 편으로 과소 평가도 안 된다. 

신앙 고백의 기능은 결코 죽은 신조(dead formula)처럼 기능해서는 안 된다. 
신앙 고백은 항상 영적인 인도자로서 기능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 칼빈의 말
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칼빈은 “우리는 신앙 고백을 높이 평가해야 한다. 참
으로 신앙 고백은 사람이 쓴 것이다. 그러나 그 내용과 광채는 사도들과 선지
자들로부터 나온 것이다”고 말했다.

칼빈 사후 약 300년 후에 흐룬 반 프린스터러(Groen van Prinsterer)도 다음
과 같은 말을 하였다. “교회의 신앙 고백은 교회의 모든 예식서나 규
정보다 
더 존중되어야 하며, 어떤 규정도 구속력이 있는 것으로 간주되어서는 안 된
다. 왜냐하면 이것은 교회의 신앙 고백을 유지하는 데 장애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특히 사람들이 모든 활동이나 각각의 상황에서 신앙 고백 전체에 의
해 구속(拘束)되지 않으려고 한다는 의미에서 신앙 고백에 제한(limitation)
을 두려는 경향은 매우 잘못된 것이다. 그들 중 일부는 선교나 정치, 교육을 
위한 특별한 신앙 고백을 갖고자 시도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이 주장하는 
내용들을 신조와 신앙 고백의 내용과 비교해 본다면 오히려 기독교적인 삶과 
행동을 제약하고 빈곤하게 만들뿐이다. 

이상과 같은 이유에서 우리는 어떤 경우라 할지라도, 그것이 교회 생활이건 
일상의 삶의 장소이건 나아가 어떤 이념이나 주의 주장을 불문하고 우리의 신
앙 고백을 제한해서는 안 된다. 특히 이 사실을 총회로 모이는 총대들이 유념
해 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