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의 신화
김재성 교수
인생을 살면서 성공해야 하고, 반드시 노력하면 성공하게 되어 있지만, 그
모든 과정과 결과는 하나님의 은혜인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인간
의 성공은 대부분 하나님의 은혜라기보다는 위대한 잠재력의 개발이라거나,
내적으로 충만해 있던 자아의 실현이라고 생각하는 까닭에 실패하고 만다.
한국 사람들은 2002년에 과연 성공의 신화를 창출하고 있는가? 세계인들이
지켜 본 월드컵에서 처음 16강 진출이라는 소박한 기대를 넘어서서 당당히 세
계 4강에 올라가게 된 ‘이변’ 혹은 ‘의외의 성과’로 인해서 많은 내외 언
론들이 찬사를 보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차분히 들여다보면, 이번 축구 대회의 좋은 성적은 결코 성공이나
신화라는 단어는 적합하지 않다. 선수들의 피나는 연습과 노력의 결과이며,
일치단결하여 응원한 전 세계 한민족 공동체의 성원이 결집된 것이라고 본
다.
따라서 한국 월드컵의 새로운 역사는 성공의 신화가 아니라, 수고와 피땀의
열매인
것이다. 바울 사도의 표현대로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선수 가운데서
열심히 달려서 목표를 향해 매진한 사람이 받는 월계수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성공한 선수들 주변에는 상업적 성공주의가 넘실대고 있
다. 해외 선수들의 몸값에 비례하여 천문학적인 대우를 받게 된다는 이야기
를 흘려보내고,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대우를 받고 어디로 가는가에 대해서
뒤질세라 경쟁적으로 보도 하고 있다.
한국 월드컵이 성공한 행사였다면 이로 인해서 몇몇 사람들은 부와 명예를
얻게 될 것이다. 하지만, 윤리적으로 바르게 살지 않는 한 모든 인간의 실패
가 불가피하다. 따라서 성공의 신화는 허망한 바벨탑이다.
목회에 관해서도 역시 성공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 있을 것이지만, 다소 혼
란된 개념을 정립할 필요성을 느낀다. 유진 피터슨 목사의 책들이 최근에 한
국어로 많이 소개되고 있고, 어떤 책들은 다소 자극적인 표현으로 관심의 대
상이 되고 있다. 그의 책 “성공주의 목회신화를 포기하라” (원제; Under
Unpredictable Plant, 차성구 역, 좋은 씨앗, 2002년) 와 “껍데기 목회자는
가라” (원제; The Unne
cessary Pastor) 등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전 세계 목
회자들에게 많은 교훈을 던져주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책들이 한국의
신학적인 입장에서 볼 때에는 보수주의자들에게 의해서 씌여진 것이 아니라
는 점이다.
전 세계적으로 교회 성장학이 보편화되고 목회성공이라는 과제가 목회자들에
게 일반화된 추세가 되었다. 그리고 새로운 스타로 등장하는 목회자들과 초대
형 교회들의 이야기가 많이 알려지고 있다. 그동안 거의 대부분의 외국의 초
대형 교회의 목회 프로그램이 한국교회에도 알려졌고, 열심히 그러한 패턴을
받아들이고 있다.
하지만, 목회의 성공보다는 하나님이 주신 소명에 충실 하는 것이 더 급선무
이다. 오늘날 우리 한국 목회자들에게 보다 더 적합하게 이해할 수 있는 단어
로 말한다면, 각자 자신이 사명을 받은 대로 충성하라는 의미일 것이다. 남들
이 가는 길을 곁눈질 하는 습성을 버리고 자신의 신앙에서 확인된 길을 가라
는 것이다.
목회의 발전을 위해서 여러 종류의 책도 읽고, 세미나에 참석도 하고, 다른
목회자들의 훌륭한 사역을 본받아 배우기도 해야 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의 양심에 부끄러움이 없는 목회자가 되려고 노력해야 한다. 목회자
가 가져야할 내면의 자세와 내용을 갖추지 못한 채, 목회현장에서 성과만을
위해 시간과 노력을 집중한다면 엄청난 좌절과 괴리감을 극복할 수 없게 되
는 것이다.
목회에 대해서는 아무리 많은 교훈을 들어도 끝이 없다. 교회를 섬기는 목회
원리는 시장의 원리로 지배되는 기관이 아니다. 세계 도처에서 이미 유명한
분들의 이야기들이 너무나 많고, 도저히 평범한 목회자로서는 따라가기조차
힘들 정도로 흔하게 퍼져 있다. 그래서 평범한 목회자들은 스타 플레이어가
되지 못하는 좌절을 겪는다. 하지만, 그러한 상업주의적 평가로 혼란에 빠져
서는 안된다. 오늘날 복음주의 사상 속에 숨겨져 있는 바는 성공주의 목회관
이며, 이미 본 란에서 이런 여러 차례 이런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다.
현대 한국 교회는 날이 갈수록 더욱 더 반기독교화 되어가는 문화 속에서 투
쟁하는 성도들을 돌아보아야 할 어려움에 처해 있다. 좁은 문을 향해서 좁은
길을 가는 것이다. 따라서 성도들이 복음에 합당하게 살아가는 데 필요한 신
앙의 힘을 불어넣어주고, 지혜
와 확신을 가지도록 돌아보는 어려운 임무를 부
여받았다.
그런데, 목회 성공을 위해서 인위적인 지도력이나 카리스마를 개발하게 한다
거나, 성공한 기업처럼 교인 수를 늘이고 영향력 확대를 숫자화 하는 데에 급
급하도록 한다면, 목회자나 교회 지도자들의 마음속에 세속적인 우상을 품는
꼴이 되고 만다.
교회를 섬기는 목회자들에게는 양적인 발전을 거부할 필요는 없으며, 수적으
로 믿는 자들이 많아지도록 불신자를 전도하는 일에 게으를 수는 없다. 확고
한 믿음과 바른 성경관 위에 서 있다고 한다면, 더욱 더 최선을 다해서 교회
를 섬기고 자신을 헌신해야 함은 물론이다. 헌신의 실패에서 오는 시행착오
를 끌어안고 하나님 앞에서 씨름한다면, 분명히 어느 날엔가 새로운 영역을
보여 주시고, 기쁨과 감격을 주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