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증 장애인들의 천국 ‘은혜의 집’
경기도 양평군에 위치한 은혜의 집은 더불어 살아가는 아름다운 대가족이
모인 공간이다.
박인숙 사모에 의해서 10여 평의 창고를 빌려 어려운 이들을 돌보며 시작된
작은 모임이 1990년 5월 마침내 정식으로 설립을 하게 되었다.
그 자리에 함께 했던 사람들은 부모의 이혼과 가출로 돌볼 사람이 없었던 아
이들과 심한 장애 때문에 더 이상 가정 형편상 같이 지낼 수 없어서 버려진
사람들이 전부였다.
은혜의 집 설립의 기쁨과 함께 이들에게 던져진 것이라고는 이웃 주민들의
심한 박해와 이웃으로 같이 살기를 반대하는 냉정한 시선이었다.
땅값이 떨어지고, 자녀 교육에 안 좋다는 이유들로 일년 반 동안이나 진행
된 극심한 반대는 가난하고 병든 자의 친구이신 하나님의 보살핌으로 서서
히 줄어들고 현재 ‘지게의 집’과 함께 70여명 이상의 식구들이 함께 지내고
있다.
은혜의 집 대부분의 식구들은 혼자 신변처리를 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선생님이나 봉사자의 손길이 있어야만 살아갈 수 있다. 두발로 서서 걷고 혼
자서 음식을 먹으며 내가 아닌 남을 도울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은혜의
집 식구들에게는 커다란 사치이자 곧 행복이다.
대, 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친구들이 많아 항상 기저귀를 차고 있는 가족들
과 식사 또한 스스로 하지 못하여 선생님들의 도움을 받아 먹여주어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또한 신체가 건강하지 않아 찬물로 씻기는 것이 힘들어 항상 따뜻한 물을 사
용해야 하는 가족들도 있다.
이들은 항상 옆에 누군가를 의지하며 생활하고 있지만 함께하는 가족들의 얼
굴에 천진난만함이 흐르고 그들만의 아름다움을 항상 가지고 있다.
은혜의 집 설립자인 최재학 대표이사는 강원도 동면에서 4남 3녀 중 네 번
째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가난은 그에게 숙명처럼 따라 다녔지만, 청년이
되어가면서 더불어 사는 봉사의 관념이 자리매김 하였고 잘 살아보는 것이
꿈이자 목표가 되었다.
학창시절에도 공부보다는 여러 가지 재주가 있는 만큼 매사에 어떠한 일에
든 관심이 많았다.
학교에서든 가정에서
든 늘 적극적으로 일하고 모든 일을 긍정적으로 생각하
는 아이었다. 군 제대 후에는 가정의 형편이 어려워지자 스스로 해결해야겠
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많은 고민 끝에 사우디에 가서 목돈을 마련하려
는 계획을 세웠다.
많은 돈을 벌어 사업을 해보고 싶어 출국을 위한 모든 서류를 준비 하던 중
친구의 공장에서 잠시 일을 돕다가 뜻밖의 사고로 한 팔을 잃게 되었다. 모
든 꿈과 희망이 한 순간에 좌절과 절망이 나락으로 빠졌다.
스스로 감당해야하는 고민도 컸지만 장애라는 사회적인 편견과 차별 등, 이
루 말할 수 없는 사회의 두터운 벽에 맞부딪치게 되었다.
이후 장애라는 고통과 사회적 편견 속에서 방황하다가 종교를 접하게 되었
다.
그가 절망 가운데서 하나님을 만나게 된 동기는 본인 보다 더 장애가 심한
한 자매를 통해서였다. 전도를 받아 믿음을 통해서 도전을 받은 것이다.
인생의 꿈과 목표는 달라졌고 오늘의 은혜의 집을 운영하게 한 큰 원동력이
되었다.
은혜의 집에는 최재학 대표이사의 젊은 날의 아픔과 같은 고통을 당하고 있
는 사람들이 오는 곳이다.
아직은 작고 연
약한 공간이라고 생각하지만 은혜의 집을 통해 한 사람이 변
화되기를 원하고 문 밖의 세상도 보다 평안한 사회가 되기를 소망하고 있
다.
장애인들을 더 이상 다른 존재로 구별시키지 않고 같은 형제와 자매로써 감
싸 안아주길 바랄 뿐이다.
은혜의 집이 세워지기까지 많은 사람들의 수고와 기도가 함께 했지만 앞으
로 더 많은 절망의 사람들을 위로하기에 부족한 것들이 많이 있다.
일회적인 동정보다는 지속적인 관심과 따뜻한 사랑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
다. 남의 일이라는 시선을 벗어버리고 주님의 사랑 안에서 함께 감당해 나가
기를 원한다.
어떠한 일이든지 사람은 자신이 경험한 만큼 알기 마련이며 그 좁은 경험으
로 드넓은 세상을 판단하고 살아간다.
우물 안의 개구리와 같이 하늘의 한 부분만을 바라보고 살아가지 않기 위해
우리 안에 있는 큰 사랑을 이제 나누며 살아갈 때이다.
앞으로 은혜의 집에 더욱더 많은 관심의 손길들이 찾아와 주기를 기대하며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