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신해설 44> 인간과 맺으신 하나님의 언약의 본질_김병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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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맺으신 하나님의 언약의 본질 <제7장 1항>

 

< 김병훈 목사, 합신 조직신학 교수 >

 

7장 1항: “하나님과 피조물의 간격은 실로 크기 때문에, 비록 이성적 피조물들이 창조주이신 하나님께 복종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하나님에게서 축복과 보상과 같은 것을 성과로 가질 수는 없다. 단지 하나님 편에서 기꺼이 스스로 낮추시는 겸양으로 가질 수가 있으며, 하나님께서는 언약의 방식으로 이것을 표현하시기를 기뻐하셨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언약은 성경의 교훈들의 토대가 되는 핵심 사상이며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는 중심 원리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베푸시는 복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하나님과의 교제와 영생은 언약을 통해 약속이 되었고 실행이 되었습니다. 인간은 그 언약 안에서 참된 자유의 행사를 통해 언약의 의무를 행하며 언약의 복을 누립니다. 신앙고백서 7장은 이러한 언약에 관련한 핵심 원리들을 교훈합니다.

 

본 항이 교훈하는 바는 언약의 본질에 관한 것입니다. 두 가지 교훈을 살필 수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언약의 대상자인 하나님과 인간이 서로에 대해 언약 대상자로서 어떠한 자격을 갖는지에 관한 것이며, 다른 하나는 언약이 이루어지기 위한 전제 또는 가능성에 관한 것입니다.

 

1. 언약 대상자가 갖추어야 할 조건

 

우선 첫 번째 교훈이 의미하는 바를 살펴보기로 합니다. 언약이 이루어지려면, 언약을 맺는 대상자들이 서로 동등하거나 또는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서로에게 어떤 유익을 주고 또 의무를 요구할 수 있는 능력이나 자격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하여서는 상대에 대하여 일정한 독립성을 가져야 합니다.

 

만일 어떤 일과 관련하여 어느 한 편이 다른 한 편에 대하여 일방적 요구나 명령를 할 수 있는 권한이나 위치에 있다면, 그 일과 관련한 이들의 관계를 가리켜 통상적으로 언약적 관계에 있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이를 테면 종은 주인에게 종의 의무를 행한 후에 그 행한 바와 관련하여 주인에게 어떤 권리를 주장할 자격이나 위치가 아닙니다. 종이라는 위치는 주인에게 어떤 유익을 주었다는 것에 근거하여 반대급부를 주인에게 권리로 요구할 수가 없습니다.

 

종은 주인의 재산으로 간주되며 출생 때부터 주인의 명령에 순종하도록 일방적인 의무가 지워진 존재입니다. 어떤 종이 주인에게 유익을 주었다는 이유를 들어 주인으로 하여금 자신을 향해 어떤 의무를 행할 것을 요구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치를 조금만 생각해 보아도,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어떠한 언약이 맺어진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임을 바로 알 수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피조물인 인간은 창조주 하나님께 의무를 행하여야 함이 마땅하며, 또한 최고의 선이시며 모든 선의 근원이신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의무를 행한다고 하여 어떤 유익을 새롭게 받으시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인간이 무엇인가 선하고 유익된 것을 행하여 하나님께 드린다면 그것 자체가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복된 선물일 뿐입니다. 인간은 근원적으로 스스로 존재하는 자기 아니며, 그의 존재와 활동과 활동의 능력과 또한 누리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의존할 따름인 한낱 피조물일 뿐입니다.

 

이러한 사실과 관련하여 본 항은 “하나님과 피조물의 간격은 실로 크기 때문에, 비록 이성적 피조물들이 창조주이신 하나님께 복종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하나님에게서 축복과 보상과 같은 것을 성과로 가질 수는 없다”고 고백을 합니다.

 

하나님과 피조물의 간격을 무엇에 비교하여 설명할 수 있을까요? 인간이 사용하는 어떤 언어적 표현으로도 불가능합니다. 인간의 언어란 결국 유한한 세계를 반영하며 그것을 가리키는 표상일 뿐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표현은 비공유적 속성으로 영원성, 무한성, 불변성과 같은 부정의 방식(via negationis)이나, 공유적 속성을 주로 나타내는 전능성, 전지성, 선하심과 공의 등과 같은 탁월의 방식(via eminentiae), 또는 사물과 사람의 관계 등에 빗대는 왕과 백성, 목자와 양, 또는 산성, 요새 등 여러 가지 유비의 방식(via analogiae) 등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하지만 이러한 모든 것들은 유한 세계 안에서 이끌어진 것들이며 절대로 영원하시며 무한하신 절대존재이신 하나님을 표현하기에 뚜렷한 한계를 피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간격 또한 너무나 커서 어떤 표현으로도 그것을 충분히 드러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어떤 말로도 간격의 차이를 표현할 길이 없을 정도로 그 간격의 차이가 큰 창조주 하나님께 피조물인 인간이 복종을 한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이 당연한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복종의 의무를 실행하였다고 하여 인간이 하나님께 어떤 보상이나 축복 같은 것을 요구한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다는 신앙고백서의 고백은 지극히 옳은 교훈입니다.

 

2. 언약이 이루어지기 위한 전제 조건

 

그렇다면 인간이 이렇게 크신 하나님과 어떻게 언약을 맺을 수가 있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언약이 이루어지기 위한 전제 또는 가능성에 관한 것으로 신앙고백서 본 항이 교훈하는 두 번째 내용입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무한한 격차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하나님과 교제를 할 수 있기 위하여서는 그 무한한 격차를 뛰어 넘는 특별한 관계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형성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특별한 관계의 형성은 피조물인 인간 편에서는 무엇인가를 실행하여 되는 일이 도무지 아닙니다. ‘유한은 무한을 도무지 담아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Finitum non capax infiniti). 그렇다면 방법은 오직 하나,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다가오시는 것뿐입니다.

 

본 항은 이와 관련하여 “단지 하나님 편에서 기꺼이 스스로 낮추시는 겸양으로 가질 수가 있으며, 하나님께서는 언약의 방식으로 이것을 표현하시기를 기뻐하셨다.”고 진술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어떠한 보상의 약속이 없이 복종을 명하실 권리를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순종의 조건과 보상의 약속을 언약의 방식을 통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언약을 이루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마치 인간이 스스로의 힘으로 언약의 조건을 성취하고 그것을 근거로 보상을 요구할 수 있는 상대가 되는 것처럼 인정을 하여 주셨습니다. 그것은 인간을 높여주시는 것이며, 하나님 자신을 낮추시는 겸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언약의 방식을 통해 인간과 교제를 가지기 위하여 인간을 창조할 때부터 그들을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특별한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신앙고백서는 “이성적 피조물들”이라는 표현으로 이와 관련한 사실을 반영합니다.

 

인간을 창조하실 때, 인간으로 하여금 자유의지로 자발적으로 하나님의 교훈에 순종을 하고 그로부터 약속된 영생의 복을 누리며 하나님과 교제를 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하신 것입니다. 인간의 창조는 처음부터 하나님과의 언약적 교제를 염두에 둔 특별한 은혜이었던 것입니다.

 

언약이 특별한 은혜인 까닭, 그러니까 언약을 위하여 이미 창조 때부터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인간이 누리는 복이 특별한 은혜인 까닭은 언약을 통해 피조물에게 상상을 초월하는 영광이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곧 피조물에 불과한 인간이 언약 아래서 하나님께 대한 순종을 통해 하나님께 약속의 성취를 요구할 일정한 권리를 갖게 되는 어마어마한 영광을 누리는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무엇을 뜻합니까? 하나님 편에서는 언약의 약속을 성취해야할 의무를 자신에게 부여하며 그것을 선하심과 공의로움과 진실한 것으로 여기는 것이며, 인간 편에서는 언약 안에 순종으로 머물러 있음으로서 만물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에게 그의 선하심과 공의로움과 진실함을 따라 약속을 이행하실 것을 요구할 권리를 부여받는 것을 뜻합니다.

 

이러한 의미를 담은 언약의 방식만이 창조주와 피조물의 무한한 간격을 뛰어넘어, 인격체이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은 피조물인 인간과 교제를 하실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입니다.

 

여기서 창조주 하나님을 지나치게 피조물에게로 끌어 내리면 범신론의 경향을 갖게 되며, 반대로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의 존재론적인 무한한 격차를 그대로 놔두게 되면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어떤 교제도 불가능한 이신론이 되고 맙니다. 이와 달리 하나님께서 인간과 맺으시는 언약은 기독교 성경적 신관이 결코 범신론이나 이신론의 하나님이 아님을 말합니다.

 

요컨대 언약은 이성적 인격체인 인간에게 인격적 반응을 따라 강요를 받지 않은 채 하나님을 예배하고 사랑하며 순종하며 섬기는 피조물의 지극한 행복을 누리도록 하시는 은혜의 방식입니다.

 

언약은 하나님의 선하신 교훈을 악한 것으로 판단하고 불순종을 하였던 인간의 최초의 범죄가 어찌하여 죄인가를 드러내주는 원리가 되며, 또한 타락한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의롭게 되는 구속의 원리가 되며, 아울러 성령의 중생과 조명과 인도하심에 따라 지음을 받은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거룩한 경건의 삶을 살아가야할 원리가 되기도 합니다.

 

3. 맺는 말

 

언약을 맺는 일이 가능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시는 일이 있어야 하고, 또 하나님께서 인격적 교제를 위하여 자신을 낮추시어 겸양의 은혜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은 인간과 언약을 맺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바로 인간에게 가장 으뜸가는 목적을 지시하여 줍니다.

 

인간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통해 최고의 행복을 누리게 되며 그것으로 하나님의 지극히 크신 영광을 드러내게 됩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1문항 “사람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무엇입니까?”의 질문의 답은 언약의 본질과 가능성과 관련한 본 항의 교훈을 그대로 반영합니다.

 

“인간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