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주 사모 8월 25일 소천..향년 94세
박윤선 주석 완필할 수 있도록 내조, 합신 설립에도 협력
고 박윤선 목사의 사모 이화주 사모가 8월 25일 오전 10시 25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향년 94세.
입관예배는 9월 2일(화) 오후 7시, 하관예배는 9월 3일(수) 오전 11시 로즈힐 메모리얼파크에서 송병주 목사(선한청지기교회)의 집례로 거행됐다.
유족으로는 장남 박성은, 차남 박성진, 장녀 전성혜, 사위 전지현 씨가 있다.
장기려 박사와 주기철 목사 사모에게 신앙 지도 받아
이화주 사모는 1920년 7월 20일, 평남 평양에서 출생, 17세에 기독교에 귀의하며 이름을 花珠에서 和主(주님과 화목함)으로 개명했다.
21세, 당시 평양 기홀 기독병원과 연계된 간호 전문학교를 졸업한 이화주 사모는 기홀 기독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하며 장기려 박사와 김명선 박사에게 배웠다.
소련 신탁통치 시절에는 당시 북한 평양 산정현교회에 출석하며, 이미 홀로 되신 고 주기철 목사의 사모인 오정모 여사를 수 년동안 가까이 모시며 신앙적 감화와 지도를 받았다.
이후 6.25 전쟁 직전 월남, 부산 고려신학교(현 고신대학교)에 입학, 신학 예과 과정과 연구과(현 M.Div 과정)를 졸업했다.
1952년 전도사로서, 지방 교회들을 위한 목회 사역을 시작하던 중, 당시 고려 신학교 교장 (고)박윤선 목사와 1954년 결혼했다.
1973년 박윤선 목사가 총회신학교(현 총신대) 70세 교수직을 은퇴하면서 자녀들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 첫 2년을 전자 제품 공장 노동과 간호보조원, 직접 운영하던 드라이 크리닝에서 옷 수선 등을 하며 가정 경제를 감당해 나갔다.
또한, 박윤선 목사의 주석 집필을 돕기 위해 50대 중반에 운전 면허를 따고 탈봇, 풀러,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도서관들로 차로 태워 모시며 1978년 주석 완필할 수 있도록 적극 도왔다.
1977년 부군 박윤선 목사와 함께 귀국하면서 1988년 박윤선 박사가 소천할 때까지 약 10여 년 동안 한국에서 합동신학원(현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설립에 협력하며 내조하다, 박윤선 목사 소천 후에는 자녀들과 함께 미국 오렌지카운티에서 거주했다.
가장 좋아하시던 성경은 로마서 8장, 가장 좋아하시던 찬송은 하늘가는 밝은 길이(통493/새545), 내주를 가까이 하려함은(통338/새364)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