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 특집 강좌| 교회 전통과 예배 형식 _ 김영재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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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 특집 강좌

 

교회 전통과 예배 형식

 

<김영재 교수 _ 전 합신, 역사신학>

 

기독교 예배의 형식은 교회의 역사와 전통에서
형성되고 전수되어 왔으므로
그 적합성은 역사적 교회의 전통에서 찾아야 한다

종교개혁의 교회들은 성경을 믿음과 행위의 규범으로
존중하되 교회의 역사와 전통도 존중하고 고려한다

종교개혁자들은 예배는 성경적이며, 단순하고
회중이 이해할 수 있는 예배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배의 개혁을 원한다면 종교개혁자들이 초대 교회 예배로
돌아가야 한다고 했듯이 개혁을 위한 향방이 있어야 한다

 

종교개혁을 기념하여 현대 교회의 예배를 반성하는 포럼에서 오늘의 교회 예배 형식이 왜 다양한지 그리고 교회마다 예배 형식의 변화를 꾀하는 경향이 농후한데 그런 현상이 예배의 본질에 합하는 것인지에 대하여 한국 교회와 교포 교회를 염두에 두면서 논의하고자 한다.

 

기독교 예배의 정체성

신약 성경에 예배 형식이 어떠해야 한다는 말씀이 없으므로 어떻게 예배하든 상관이 없다고 할 수 있으나, 적어도 기독교의 예배는 다른 종교의 예배와는 구별되어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창조주이시며 우리를 구원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께 행하는 기독교 예배는 그 내용은 물론이고 형식도 다른 종교의 것과 같을 수 없다.

기독교 예배는 하나님께서 백성에게 주시는 말씀과 이에 응답하여 기도와 찬송으로 드리는 화답으로 성립된다는 점에서 다른 종교의 드리는 데 편중된 예배와는 다르다. 기독교 예배의 형식은 교회의 역사와 전통에서 형성되고 전수되어 왔으므로 그 적합성 혹은 적법성은 역사적인 교회의 전통에서 찾아야 한다. 다시 말하면, 전통적인 교회의 예배 형식을 떠난 예배는 기독교 예배일 수가 없다. 이를테면, 1982년에 남미 리마에서 열린 WCC 대회서 어느 한국의 참가자가 벌인 무당 종교의 강신 굿판이나 종교다원주의자들이 하나님과 불타를 동시에 부르면서 행하는 혼합종교의 예배는 기독교 예배가 아니다. 기독교의 예배 형식은 예배하는 공동체, 즉 교회의 신앙고백과 전통에 따라 차이를 보이게 되었다. 예배 형식에 변화가 있고 차이가 있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응답하는 백성들의 신앙과 문화적 배경의 차이로 인한 것이다.

 

기독교 예배는 유대교 회당 예배와 같지 않다

예배 학자들 가운데는 기독교의 예배가 유대교의 회당 예배에서 유래되었으며, 따라서 형식이 비슷하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그것은 수긍할 수 있는 말이긴 하나 예배의 내용은 같지 않다. 유대교의 회당 예배는 제물을 드림으로 예배하는 구약의 예배를 임의로 생략한 예배임에 반하여, 기독교의 예배는 단 한 번에 제물로 드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근거로 드리는 예배이므로 제물을 동반하는 구약의 예배의 계속성을 함의하는 예배이다. 기독교 예배는 초기의 교회가 소위 말씀 예배에 이어 늘 성찬식을 행했다는 점에서 회당 예배와는 현저하게 다르다. 말씀 예배에 이어 성찬식을 행하는 것은 비단 초대 교회뿐 아니고 역사와 전통을 존중하는 교회에서는 오늘날도 마찬가지로 행한다. 앵글리칸교회와 루터교회는 매주 행한다. 로마 가톨릭교회는 개신교와는 다른 의미의 미사라는 이름으로 행한다.

 

백성이 함께 모여 예배하는 교회

신약 성경은 예배뿐 아니라 교회의 형태에 관하여서도 어떠해야 한다고 말씀하지 않는다. 신약의 교회는 형성되어 가는 과정에 있는 교회였으므로 교회의 형태는 역사가 흐름에 따라 형성되었다. 오늘에 와서 초기의 교회 형태가 가정교회였다고 하는 견해로 인하여 가정교회 운동도 있으나, 그것은 박해 시대의 불가피한 상황에서 있었던 교회의 모습이었지 신약에 나타난 교회는 아니었다. 사도행전에 따르면 그리스도인들은 성전에서 모임을 가졌다(행 1:46).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 마가의 다락방에 사도들과 함께 모인 신자의 수가 120명이나 되었다(행 1:15). 그들은 결원된 사도를 보충하는 등 조직을 갖추려 했고, 예루살렘 교회는 교인 수가 짧은 시일 내에 많은 수로 불어났으며 남녀의 큰 무리를 이루었다(행 1:47, 5:14). 사도들은 말씀 전하는 일에 전념하고자 일곱 사람의 일꾼을 뽑기도 하였다. 고린도전서에서 바울이 교회 내의 파벌에 대하여 경고하는 말씀이나 교회의 지체와 각양 은사에 대하여 언급한 것(고전 1:10-17; 12:12 이하) 등을 미루어 보아서도 사람들이 큰 무리로 함께 모여 교회를 이루었음을 알 수 있다. 성찬을 행할 때 질서를 지키라는 말씀(고전 11:21 이하) 역시 그러하고, 교회를 가리키는 ‘에클레시아’라는 말도 회집의 뜻을 잘 드러내는 말이다. 그것은 본래 정치적인 집회를 뜻하는 말이었다. 로마 카타콤의 예배 장소로 쓰였을 공간의 크기를 보아서도 박해하에서도 할 수만 있으면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모였음을 알 수 있다. 함께 공적인 예배 모임을 갖거나 거기에 참여하려는 것은 사람의 본능이고 신자의 바람이다. 박해 시대를 지나면서 교회가 예배당을 갖기 시작했는데, 그 이전인 2세기에 예배는 이미 예전을 갖추기 시작하였다.

 

동방 교회와 서방 교회의 예배

콘스탄티노플을 중심한 동방 교회와 로마와 유럽의 서방 교회는 문화와 신학적인 관점의 차이에서 오는 불화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교회를 유지해 왔으나 1054년에 마침내 동방의 정교회와 서방의 가톨릭교회로 분립하게 되었다. 동방과 서방의 교회는 이미 3, 4세기에 예전을 갖게 되면서 예배 이해와 시행에서도 현격한 차이를 보이게 되었다. 동방 교회의 예배는 서방 교회의 것보다 훨씬 현란하였다. 서방 교회는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는다는 구원론에 관심을 가진 데 반하여, 삼위일체를 비롯한 신론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진 데다 율법주의적인 공로주의에 머물러 있었을 뿐 아니라, 시와 문학, 예술과 철학을 꽃피운 헬라 문화에 젖어 있던 동방 교회는 더 많은 의식과 상징을 사용하고 예술성을 추구함으로써 천상의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예배 광경을 재현한다고 하였다.

 

종교개혁자들의 예배 개혁

1517년 마르틴 루터가 비텐베르크 성문에 중세 교회의 교황주의와 면죄부 판매를 비판하는 95개조의 항의문을 게시한 소식이 4주 만에 독일 전역과 6주 후에는 온 유럽에 전해지면서 역사적인 종교개혁이 시작되었다. “오직 성경으로”, “오직 은혜로”, “오직 믿음으로”를 외치며 교회 개혁을 추진하기 시작한 종교개혁자들은 먼저 예배의 개혁에 착수하였다. 성경을 각국의 국어로 번역하는 한편 예배서들을 내놓고 라틴어로 예배하던 것을 백성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예배하기 시작하였다.

교계주의hierarchy에 함몰되고 반半펠라기우스주의로 인한 공로주의를 벗어나지 못한 중세 교회의 예배는 예전이 점점 길어지면서 예전과 말씀의 균형을 잃은 예배가 되었다. 종교개혁자들은 이러한 중세 교회의 예배를 개혁하기 위하여 그 모델을 초대 교회의 간소한 예배에서 찾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의미한 초대 교회 예배는 소위 다락방식이나 가정에서 하는 예배가 아니고, 2, 3세기의 예전을 갖춘 예배였다. 그들은 또한 중세 교회의 예배 의식을 다 폐기한 것도 아니었다. 예를 들면, 종교개혁 교회들 가운데서 가장 간소한 예전을 가진 제네바에서 비롯된 개혁주의 교회 예배에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라는 말씀에 이어 “우리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의 이름에 있도다(시 124:8)”라고 하는 예배 시작의 말씀은 교회가 종교개혁 이전부터 해 오던 말씀이다.

종교개혁 이후 서방의 기독교 예배는 중세 교회의 예배를 대체로 그대로 이어 오는 로마 가톨릭교회의 예배와 종교개혁 교회의 예배로 이분되었고, 종교개혁의 교회는 루터교회, 개혁교회, 앵글리칸교회 및 재세례파를 포함하는 급진적인 교회들로 분립되면서 각각 예배에서도 차이를 보이게 되었다. 신령주의 배경을 가진 재세례파는 30여 그룹이나 되었다.

 

성경과 교회 전통에 대한 세 가지 이해

교회의 전통을 성경과 동등하게 존중한다면서도 교황의 무오를 주장함으로써 전통에 더 무게를 둔 로마 가톨릭교회는 중세 가톨릭교회의 교회제도와 예전을 그대로 이어 받은 데 반하여, 재세례파를 위시한 급진적인 그룹들은 성경만을 믿음의 규범으로 존중하여 중세 교회로부터의 급격한 개혁을 추구한 나머지 교회의 역사와 전통은 존중하거나 고려하지 않았다. 이들은 대체로 교직제도를 부인하고 전통적인 예전을 갖춘 예배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예배한다. 종교개혁의 교회들은 이러한 소위 급진파들과는 달리 성경을 믿음과 행위의 규범으로 존중하되 교회의 역사와 전통도 존중하고 고려함으로써 주관적인 성경 이해를 피하고 보다 보편타당한 성경 이해를 위해 전통을 참조한다. 그리고 교회 전통을 두고는 성경에 부합하지 않은 것은 폐기하고 부합하는 것은 취하였다. 성경과 교회 전통에 대한 이러한 견해의 차이는 제가끔 교회 형태와 예배 형식에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루터교회와 장로교회를 포함하는 개혁교회 및 앵글리칸교회는 예전을 중요시하고 보전하며 예배서를 보유하고 사용한다. 주일 예배와 성찬의 예전은 그들의 찬송가에 수록하고 있다. 앵글리칸교회는 교황주의를 제외하고는 가톨릭과 방불할 정도로, 그리하여 이를 비판하며 보다 철저한 개혁을 주창한 청교도 운동을 낳게 되었을 만큼 중세 교회제도와 예전을 보유하고 있다. 예배서는 주로 예배 인도자가 사용하지만, 앵글리칸교회에서는 예배하는 회중이 공기도서(Common Prayer Book)를 찬송가와 나란히 사용하고 있으며, 예배에서 45%의 시간을 예전에 할애한다. 그리고 성만찬의 회복을 주창한 대로 앵글리칸교회와 루터교회는 매주 성찬식을 거행한다. 개혁교회는 츠빙글리의 영향으로 1년에 네 번 시행하고 있다. 칼빈은 제네바에서 매주 하기를 원했으나 그가 부임하기 이전에 당회를 겸하고 있던 시의회가 이미 츠빙글리의 가르침에 따라 정한 대로 건덕을 위하여 시행하였다. 반면에 급진적인 교회들은 예전에서 자유로울 뿐 아니라 말씀 예배만 행하는 경향이었다. 교회 안에 있으면서 자신들의 경건을 위하여 주일 오후에 따로 또 집회를 갖는 독일의 경건주의자들은 성만찬은 교회에서 받는다. 종교개혁 이전의 중세 교회에서는 1년에 한 번씩 성찬식이 있었으나, 평신도들은 떡만 받고 잔은 받지 못했다.

 

청교도의 세 부류

앵글리칸교회의 철저한 개혁을 주창한 청교도들은 세 그룹으로 분류된다. 크게는 앵글리칸교회 안에 잔류하면서 청교도적 신앙을 유지하는 그룹과 앵글리칸교회에서 분립한 그룹, 즉 비국교도dissident, nonconformist로 분류되는데, 비국교도에는 장로교회와 회중교회 등 교회 역사와 전통을 존중하는 그룹과 그렇지 않은 급진적인 그룹으로 분류된다. 침례교, 퀘이커들, 플리머스 브레드른 등이 후자에 속한다. 잉글랜드에서 비국교도였던 이들은 잉글랜드에 있을 때 유럽의 재세례파들과 마찬가지로 박해를 받기도 했으나 미국에 와서는 종교적인 자유를 향유하게 되었으며, 미국 국가와 사회 건설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으며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교회들이 되었다. 교파 간의 갈등을 피하기 위한, 국가와 종교의 분리라는 원칙 아래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헌법이 제정됨으로 인하여 유럽에서 비국교도들을 박해하거나 갈등 관계에 있던 로마 가톨릭과 앵글리칸교회도 동등한 자유를 누리게 되었다.

 

미국 교회의 예배

따라서 미국에는 예배에서 예전을 따라 예배하고 성찬식을 매일 행하는 교회들보다는 거기서 자유로운 교회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데다가 17세기부터 있었던 수차례의 대각성으로 교파를 초월하여 말씀과 믿음을 강조하는 복음주의 운동이 확산되었으며, 침례교회와 대각성으로 생겨난 감리교회가 장로교회를 능가하여 큰 교세를 이루게 되었다. 19세기 후반에는 예전 회복 운동도 있었으나 백인들과는 다른 문화적인 배경을 가졌으며 보다 즉흥적이고 감정적인 흑인 교회들이 미국 교회의 일부를 형성하면서 자유롭게 예배하는 교회는 더 늘어났다. 19세기 말엽에 생겨난 성결교회와 20세기 초에 생겨난 오순절교회 등으로 인한 카리스마 운동의 확산으로, 그리고 20세기 중반부터 TV를 통하여 활동한 전도자들을 통하여 자유로운 예배와 무대를 누비면서 설교하는 설교자의 자세에 사람들은 익숙해졌다. 게다가 재즈 음악, 비트 음악, 록큰롤 등의 대중음악이 교회 음악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예전에서 자유로운 경향을 가진 교회일수록 예배에서 음악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예전에서 자유롭게 예배하는 교회들 중에 교직제도에 대하여 부정적인 견해를 가진 그룹들, 예를 들어 퀘이커들, 플리머스 브레드른, 경건주의자들은 그들의 집회에서 예배 인도자 없이 리더들의 인도로 엄숙한 분위기에서 예배한다.

 

한국 개신교와 복음주의

주로 미국 선교사들에 의하여 선교를 받은 한국의 교파 교회들은 처음 설립 때부터 내내 미국 교회의 영향을 받아 왔다. 초기에 한국에 온 선교사들은 대부분 19세기 후반에 무디Dwight Moody가 주도적으로 역할한 제3차 각성 운동에서 선교의 사명을 받은 이들이었다. 이들 복음주의적 선교사들은 각자의 교파교회를 한국에다 이식하였으나 장로교회와 감리교회 및 성결교회의 경우 교파를 초월하여 협력하였으며, 더욱이 교파를 초월하여 경험하게 된 1907년 전후에 일어난 대부흥은 교회들의 교파 의식을 무디게 만들었다. 장로교회와 감리교회의 경우 1920년대를 거치면서 각자의 신학적이며 교회적 정체성을 의식하게 되었으나 부흥 집회에서 정착하게 된 비슷한 예배의식에는 별로 변화가 없었다. 1908년에 나온 “합동 찬송가”도 비슷한 예배의식의 조성에 기여하였다.

신학과 교회사 지식에 취약했던 한국 교회 지도자들은 구약과 신약의 계속성과 단절성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인하여 구약의 말씀을 문자 그대로 신앙과 생활에 적용하려는 경향이 농후했는데, 현재도 그러한 경향은 여전하다. 이를테면, 1970년대 이르러 한국 교회의 많은 이들이 목회자의 안식년을 땅을 쉬게 하는 구약의 안식년에 유추하여 당연히 할 수 있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라든지, 목사를 레위 족으로 유추하거나 제사장으로 인식하는 것 등이 그러한 사례이다.

 

한국 교회의 사제사상과 예배

로마 가톨릭교회와 종교개혁 교회 간에 가장 중요한 신학적 차이점은 성만찬과 사역자에 대한 이해이다. 로마 가톨릭교회는 중세 교회의 것을 그대로 이어받아 성찬의 화체설과 사제주의priesthood와 사제주의와 결부된 교계주의를 견지하는 데 대하여 교회 개혁을 절감한 종교개혁자들은 하나같이 화체설과 사제주의를 반대하였다. 로마 가톨릭은 그리스도를 성찬 시에 떡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을 변함과 동시에 성찬을 하나님께 바치는 제물이라는 믿음을 견지하는 데 반하여 종교개혁의 교회는 화체설을 부인함과 동시에 성찬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과 함께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라고 이해한다. 가톨릭에서는 사역자를 화체설에 걸맞게 사제, 즉 제사장이라고 주장하는 데 반하여 종교개혁 교회에서는 사제주의를 반대하고 목사는 복음의 사역자라고 한 것이다. 16세기 종교개혁 당시에 나온 종교개혁 교회의 신앙고백서들은 이를 명백히 천명하고 있다. 루터가 말한 “만인제사장”은 교직제도를 반대하는 급진적인 그룹들의 사상을 대변한 것이 되었지만, 교회의 직분의 중요성을 부정한 말은 아니었다. 특히 개혁주의 신앙고백에서는 “만인제사장”은 영적으로 이해한다면서 목사의 직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여하튼 이러한 종교개혁자들의 이해가 교회사 지식이 미천한 선교 초기의 한국 교회에는 전달이 안 되었을 뿐 아니라 샤머니즘적인 문화적 배경에서 자라 온 한국 교회는 나름대로의 구약적인 이해를 갖게 된 것이다.

초기에는 한국 교회가 예배 처소를 예배당이라고 불렀다. 아마 선교사들의 영향에서 그랬던 같다. 그런데 아마 1950년대에 와서는 예배당을 더러 성전이라고 했으며, 1960년대 이후 대형 교회들이 생겨나면서부터는 더욱 그런 경향이 되었다. 많은 교회들이 강단을 성역화한다. 대부분 이중 강단을 가진데다가 심지어는 울타리를 쳐서 시각적으로 성역화하는 교회도 있다. 미국 교회 중에 성가대가 강단 뒤쪽으로 설교자의 등 뒤에 앉는 경우가 많은데 한국 교회에서는 용납이 되지 않는 광경이다. 이러한 성역화는 오래전부터 진행된 것인데 1960년대부터 예배하는 이들이 신을 신은 채로 의자에 앉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교회에서 강단에는 예배 인도자가 여전히 신을 벗고 올라감으로써 강단의 성역화는 더 두드러지게 되었다. 이러한 성역화 현상은 종교개혁의 교회들이 교회와 예배의 개혁을 추진하면서 단행한 조처에는 역행하는 것이다. 종교개혁의 교회는 중세교회가 예배에서 교계주의와 사제 사상에서 그리고 말씀보다는 예전에 치중한 나머지 예배당 중간에 설치했던 설교단을 전면으로 옮기는 한편 예배당 내부를 성소와 지성소로 상징적으로 구분하는 천정에 달린 철책을 제거하는가 하면 제단은 성찬상이라고 불렀다.

한국 교회의 예배당 내부의 구조와 목사에 대한 인식은 중세적이거나 구약적으로 발전한 것과는 반대로 예배 형식은 오히려 자유롭게 발전하여 교파교회들이 초기에 가졌던 간소하나마 예전을 갖춘 예배 전통마저도 상실해 가고 있다. 자유롭게 예배하는 미국 교회의 영향을 받아서도 그러하고 교파교회의 전통에 대한 의식이 취약해서도 그러하다. 개혁주의 전통을 표방하며 교회 헌법에서 예배 모범에 충실하도록 강조해 오던 장로교의 많은 교회들도 자유롭게 예배하는 미국의 흑인 교회나 오순절 교회, 윌로우 크리크 교회 등의 예배를 모방하려는 유행에는 무방비 상태인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예배 인도자인 목사에 대한 중세적이며 구약적인 이해를 가지면서도 예배는 자유로운 형식으로 하는 것은 교회 역사에 비추어 보아 아주 이례적인 일이고 위험한 일이다. 사제주의 사상을 견지하는 로마 가톨릭과 앵글리칸교회의 고교회High Church의 사제들은 교계주의 제도의 엄격한 질서와 통제discipline 아래 교회를 섬기는 한 직분자로 있는 데 반하여, 그런 것이 없이 노회의 기능마저 약화된 개교회주의적인 한국 교회의 목회자, 특히 교회를 개척하여 교회 성장을 이룩한 창업주 의식을 가진 대교회의 목회자는 제왕적인 교권자로 얼마든지 변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잘못된 의식을 가진 예배 인도자는 예배의식을 따라 겸손히 예배자의 한 사람으로 예배를 인도하기보다는 예배를 주관하는 사회자가 되기 쉽다. 임의로 모이는 예배에서는 몰라도, 주일 공예배(또는 대예배)에서는 예배 인도자가 사회하듯 예배를 관장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공예배란 주님의 명령을 따라 정하신 날에 남녀노소 온 회중이 모여 행하는 예배를 말한다. 많은 교회와 목회자들이 교회의 수적인 성장에다 초점을 맞추어 예배의 변형을 시도하거나 용인하는 것은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것을 원하시는 거룩하신 하나님께 정말 죄송한 일이다. 예배 인도자는 당신의 백성을 불러 모으시고 예배하도록 명하시는 거룩하신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세로, 주님의 백성을 존중하는 자세로 예배를 인도해야 할 것이다. 종교개혁자들은 예배는 성경적이며, 단순하고 회중이 이해할 수 있는 예배, 칼빈의 경우, 회중의 경건과 교양을 함양하는 예배여야 한다고 말하고 예배에는 하나님께 대한 경외함을 가지고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맺는 말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성경에는 예배 형식이 어떠해야 한다는 말씀이 없으므로, 교회 역사와 전통을 존중하는 교회든 아니든 간에 각자 교회의 전통을 따라 예배할 자유가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부분과 회중이 응답하고 화답하는 부분으로 구성되는 예배의 균형을 유지하며 기독교 예배의 정체성에서 이탈하지 않아야 한다. 예전 대신에 기타나 밴드 혹은 율동을 동반한 복음송과 찬송 부르기를 한참 하다가 바로 설교를 하는 그런 예배는 우선 하나님께서 주시는 부분인 말씀과 회중의 응답으로서의 찬송과 기도의 균형이 맞지 않는 예배이다. 그것은 마치 예전이 길어짐으로 인하여 균형을 잃었던 중세 교회와 비슷한 잘못을 범하는 것이 된다. 오늘의 대중음악에 익숙한 청년들을 얻기 위해서라고 하면 함께 고민해야 할 일지만, 그런 예배관은 열린 예배를 시도하는 이들의 주장과 상통한다. 전도의 대상들을 고려하고 배려하는 것은 교회가 언제나 해야 할 일지만, 청년들이나 신자로 부름을 받아야 할 사람들도 전통적인 기독교 예배에 참여해야 하고 예배하는 것을 배워야 할 교육의 대상이다.

전통적인 예배에서 설교 순서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부분이 아니고 예전에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부분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즉, 예배로 부르는 말씀, 십계명이나 시편 등의 교독하는 성경 말씀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부분이다. 예전은 예배하는 회중이 거룩하신 창조주이시며 우리를 구원하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 경외함으로 나아와 예배 시작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머리를 조아리며 우리의 죄를 고백하고 죄를 사한다는 선포의 말씀을 들으며 예의를 갖추어 질서 있게 영광과 존귀와 감사와 찬양을 드리며 경배하는 순서이다. 이러한 전통적인 예전을 찬송 부르기와 짧은 기도로 대신하는 것은 예의를 갖추지 못한 예배이다. 예전이 우연히 생긴 것이거나 찬양만으로 대치할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예배의 개혁을 원한다면 종교개혁자들이 초대 교회 예배로 돌아가야 한다고 했듯이 개혁을 위한 향방이 있어야 한다. 지향해야 할 향방도 모르면서 맹목적으로 새로운 예배 형식을 모색하는 것은 옳지 않다. 살아 계신 창조주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예배하는 자들의 반응을 살피며 그들의 비위에 맞추느라고 감히 실험적으로 행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역사적인 교회가, 즉 앞서간 성도들이 행해 온 전통적인 예배 의식의 의미를 알고 존중하는 가운데서 오늘의 예배를 반성하든지 개혁을 도모하든지 해야 할 것이다.

 

김영재 교수 _ 서울대 종교학과, 영국 클리프톤신학교를 졸업하고 독일 부퍼탈신학교에서 수학. 마르부르크 필립 대학교 신학박사). 독일, 미국에서 목회하고 서울대, 고려신학교, 총신대원 교수를 거쳐 1990년부터 합동신학대학원 역사신학 교수 역임 후 2006년에 은퇴. <기독교신앙과 생활><교회와 신앙고백><한국교회사><한국기독교의 재인식><교회와 예배><믿음 그리고 행함><기독교교회사><그리스도인의 매뉴얼><기독교교리사><되돌아보는 한국기독교><기독교 신앙고백><지각생의 간증> 등의 저서와 <이성에서의 도피><도피하는 현대인><칼빈의 교회관><요한 세바스찬 바흐> 등의 역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