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공평, 공정, 일관성에 힘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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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공평, 공정, 일관성에 힘쓰자

 

 

소금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짠맛이다. 음료와 음식물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청결함이다. 오염되지 않는 것이다. 판사와 심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공정함, 공평함이다. 공정과 공평을 상징하는 것이 저울이다. 근자에 운동경기와 법원판결에 대하여 많은 잡음과 저항하는 일들이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그만큼 우리 시대에 공정하지 않은 게임과 판결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반증한다.

각종 경기가 국내외적으로 매주 벌어지는데 안타깝게도 모든 종목에서 오심이 일어나고 있다. 아무래도 컴퓨터가 아닌 불완전한 사람이 심판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즉 오심은 필연이다. 그런 오심의 가능성을 다 인지하고 살지만 관중이나 감독들이나 선수들은 오심에 대해 얼마나 예민한지 폭력 사태까지 발생하곤 한다. 유럽과 남미 등에서는 오심 때문에 운동장에서 심판을 폭행하고 죽음에 이르게 하는 사건도 일어난다. 왜 그런가? 심판의 오심으로 중요한 승패가 갈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때론 심판을 매수하는 범죄까지 생긴다.

프로 경기의 팀과 선수들은 오직 승리를 위해 매일 같이 죽도록 연습하고 엄청난 돈을 쏟아 붓고 있다. 경기마다 팀과 선수들의 생사가 걸려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러니 납득할 수 없는 오심에 대해 벌떼처럼 들고 일어나는 것이다. 이렇게 오심이 너무 자주 발생하자 해법으로 나온 것이 비디오 판독이다. 현재 축구, 야구, 배구, 테니스, 육상, 배드민턴 등에서 비디오 판독을 사용한다. 비디오는 사람보다는 더 공정하고 정확하게 반칙과 인(in)과 아웃(out) 등의 상황을 영상으로 잡아낸다. 경기 중 심판의 판결에 대해 합리적인 의심이 들면 곧바로 비디오 판독을 요청하고 확인에 들어간다. 그 결과에 따라 모두 승복하는 문화가 자리 잡게 되었다.

오늘날 대한민국 사법부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졌다. 사법농단, 사법거래, 전관예우 판결, 일관성 없는 판결 등으로 판결에 대한 불복종과 저항 운동이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어느 나라 어느 사회든 법이 있지만 그것은 신뢰로 유지된다. 신뢰가 무너지면 모든 것이 무너진다. 현재 우리나라가 이러한 지경에 이르렀다. 가장 큰 책임은 이유를 불문하고 사법부에 있다. 판사들이 객관적인 기준에 따라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일관성 있게 판결을 해 왔다면 지금과 같은 불신은 없었을 터이다. 하지만 법원이 정권, 이해관계, 권력, 로비에 따라 좌우로 치우쳤기에 불복종 사태가 발생하는 것이다.

물론 법적 판결에 비디오 판독 같은 장치는 없다. 결국 판사들도 불완전한 인격체라 실수하는 심판들처럼 오판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실수나 오류가 누구든지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이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그 정도가 심하기 때문에 불신을 받는다. 법원에도 보편적이며 일정한 판결 기준과 형량 기준이 있다. 또한 유·무죄와 구속 여부에 대한 객관적인 원칙이 있다. 예를 들면 형사재판에서는 ‘물증(근거) 제일 중심으로 한다’는 것 등이 있다. 그런데도 어느 재판은 물증이 없거나 부족하다고 무죄를 선언하고 어느 재판은 직접적인 물증이 하나도 없는데도 증인들의 정황 진술만을 듣고 유죄와 구속여부를 판결한다. 이러면 피고인들은 순복하지 않는다. 일관성과 객관성을 잃은 판결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개연성이 있어도 물증이 없으면 무죄이다. 이것이 법치주의와 형사재판의 원칙이다.

이런 공정한 잣대와 객관적인 원칙과 기준이 무너지니 불복종과 저항을 하는 것이다. 이유를 불문하고 심판과 판사는 공정해야 한다. 그러려면 공정한 원칙과 기준을 만들어 그에 따라서 재판을 해야 신뢰를 받아 이의 제기에 당당하게 소명할 수 있다. 재판에서는 인격체인 판사가 곧 법 해석의 주체이다. 그러므로 개인 성향, 자질, 사명감, 이념, 정치성향, 성장과정 등이 판결에 은연중 영향을 준다. 이는 곧 경우에 따라 주관적인 판결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최대한 객관적인 기준과 원칙을 만들어 그에 따라서 판결을 하도록 애써야 한다. 그래야 판사의 인격적 주관에 따른 판결, 오판, 불신, 오해를 막을 수 있다.

판사와 심판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저울처럼 공정함이다. 교회, 노회, 총회의 결의와 재판도 마찬가지이다. 언제나 공평무사하게 결의하고 재판을 해야 한다. 그런데 교회, 노회, 총회들도 때론 공정하지 않게 결의하고 판결하는 경우가 있다. 어떤 때는 엄격하고 어떤 때는 관대하고, 어떤 때는 느슨한 관례를 따르다가 어떤 때는 한 치의 오차 없이 법대로 한다. 몇몇 유력한 사람이나 그룹의 의중만 반영하는 경우도 있다. 또 힘으로 분위기를 몰아가서 공감대 없는 편향된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반드시 냉혹한 것만이 법의 정신이라 할 수는 없고 그 속에서도 어느 정도의 적용의 유연성은 있을 수 있겠지만 그런 경우에도 관건은 일관성이다. 유력자나 갑의 위치에 있는 자들, 권력자들에게는 관대하고, 을의 위치에 있거나 힘없고 연줄이 없는 자들에게만 필요 이상으로 냉혹하다면 그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이랬다저랬다 하는 변칙적인 적용과 판별의 불공정함은 공동체의 유지와 관리를 불가능하게 한다. 그런 불공정한 결의나 판결은 누구도 마음으로부터 신뢰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인들은 교회, 노회, 총회에서든 시민사회 속에서든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항상 공평, 공정, 일관성을 실현하도록 함께 힘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