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따뜻한 개혁주의”

“따뜻한 개혁주의” ‘따뜻한 개혁주의’는 ‘따뜻한 아이스아메리카노’처럼 형용모순인가? 우리 교단은 그동안 한국 교계에서 바른 신학을 표방하는 개혁주의 교단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우리 교단 목회자들은 비교적 작은 교단임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에 올바른 신학과 말씀을 전달한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그러면서도 때로는 편협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고, 현대판 바리...

[사설] 예배 의식과 사도신경의 낭독

예배 의식과 사도신경의 낭독 예배 의식 가운데 사도신경을 낭독하는 것은 불필요하며 더 나아가 잘못된 것이라는 왜곡된 주장이 일부 성도에게 영향을 주면서 목회에 어려움을 주는 일이 있다는 말이 들려온다. 그러나 예배하는 공동체 교회가 무엇을 믿고 있는지를 선언하기 위하여 교회가 공적으로 인정하는 신경을 읽는 것은 예배 의식에 있어서 바람직하며 중요한 일이다...

[사설]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기독교는 가장의 권위 아래 가솔(家率)이 자동적으로 종교적 혜택을 받는다는 식의 가정 종교는 아니지만, 가정의 중요성을 강조한다는 점에서는 일면 가정 종교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기독교는 구원의 문제에 있어서 개별 신앙을 주장한다.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는다고 해서 아들의 이가 신 것이 아닌 것처럼, 아버지가 믿음을 가진다고 ...

[사설] 그리스도의 복음을 지켜야 하는 교회는 유신진화...

그리스도의 복음을 지켜야 하는 교회는 유신진화론을 배격하여야 한다 최근 한 신학대학원 이사회가 해당 학교 교원징계위원회에 어느 교수를 중징계하라고 주문했다. 해당 교수가 유신진화론을 옹호하고 성경적 창조론을 부인하였다는 것이 이유다. 성경적 창조론은 성경대로 하나님께서 만물과 모든 생물을 직접 초자연적으로 창조하셨음을 강조한다. 반면 유신진화론은 하나...

[사설] 부활과 복음 설교

부활과 복음 설교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그리스도의 교회가 선포해야 할 이보다 더 크고 영광스러운 설교는 없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교회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까지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키고 선포해야 할 복음 설교의 절정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이 부활의 영광스러움을 자랑해야 하며, 성탄 설교와 더불어 부활 설교를 성경에 기초한 논증과 확신...

[사설] “네가 믿느냐?”- 부활주일을 앞두고

“네가 믿느냐?” - 부활주일을 앞두고 예수님이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진술의 한 복판에 우리가 흔히 요절로 여기는 내용이 들어있다(요 11:25-27). 예수님은 나사로의 죽음 앞에서 애통해하는 마르다에게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이것은 기독교 진리를 간명하게 보여주는 말씀이다.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이며 영생의 종교이다. 기독교 신앙...

[사설] “동성 커플 축복을 반대하는 것이 위선”이라는...

“동성 커플 축복을 반대하는 것이 위선”이라는 교황을 단호히 비판하라   지난해 12월 18일, 가톨릭 교황청 신앙교리성은 ‘간청하는 믿음’(Fiducia supplicans)이라는 교리선언문을 공식 발표했다. 이 교리 선언문은 실로 위험하다. ‘선언하지 않는 것’과 ‘선언하는 것’의 구별을 통해 결과적으로 동성 커플 축복을 향한 정서적 동의와...

[사설] 세속정치에 관하여

세속정치에 관하여 4월 총선을 앞두고 주변에서 여러 불미스러운 소식들이 들려온다. 신학교 어느 동기 단체 메신저 채팅방에서 정치 견해가 좌우로 갈려 심한 언쟁이 오갔고, 심지어 어느 노회에서는 좌우 논쟁 끝에 회원 사이에 얼굴을 크게 붉히는 일도 벌어졌다는 것이다. 이런 사례들은 세속정치에 관해 현재 기독교 안에서 일어나는 불일치의 아주 작은 단면에 ...

[사설] 기억하자

‘기억하자’ 2024년 새해를 맞이했지만 우리의 목회 상황은 여전하다. 지금의 교인은 늙어가고, 새로운 젊은 교인 보기는 쉽지 않고, 신학생은 줄어만 간다. 여전히 전도의 문은 열려 있고 교인의 수가 증가하는 교회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교인은 줄어들고 있다. 현재 상황이 계속된다면 장래 교회를 이끌어갈 목사의 수의 부족으로 교회가 겪을 어려움은 쉽사리 짐...

[사설] 영원하신 왕 앞에서

영원하신 왕 앞에서 시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극적으로 감지하게 만드는 것은 해 바뀜이다. 날이나 달의 바뀜도 그렇지만, 해의 바뀜은 시간에 쓸려가고 있다는 두려움을 가장 생생하게 느끼게 만든다. 하루가 끝나는 자정 언저리에는 초침처럼 째깍거리며 바삐 흘러가는 시간이 느껴지고, 월말의 늦은 오후에는 분침이 썩둑썩둑 시간을 잘라먹은 것 같은 느낌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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