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암교회에서>
2017 농촌교회 비전트립
>> 6월 19일-22일 <<
농어촌은 가까이 있는 선교지 김신영 전도사
농촌은 수많은 영혼들이 하나님의
복음을 기다리고 있는 선교지이다
신학교에 오기 전 직장 일에 관련하여 농어촌교회를 여러 곳 다니며 여러 목회자 분들과 교제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자연스럽게 농어촌교회의 현실을 접하게 되었고 관심을 가지고 기도하게 되었다.
3박 4일 동안 세 곳의 교회를 다녀왔다. 분주한 일정만큼 세 분의 목사님을 만나며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고, 두 번의 노방전도로 농촌도 다 같은 곳이 아니며 지역과 환경에 따라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잡초 제거와 나무 옮겨심기, 페인트칠, 땅을 파는 작업들을 통해서 농어촌의 고된 일상을 잠시나마 느끼며 농어촌 교회의 성도들의 삶을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도달한 생각은 ‘목회란 무엇인가?’였다. 각 목사님의 성향마다 다양한 목회의 모습을 보면서 앞으로 내가 걸어가게 될 길이 무엇인지,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교회를 어떠한 모습으로 빚어가기를 원하시는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래에 그것을 적어 보았다.
목회란 밭을 일구는 것이다
이번 비전트립을 다녀오며 농사와 목회는 참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우리가 가장 많이 했던 일 중 하나가 바로 잡초 제거이다. 새소망교회 목사님은 “농촌목회는 잡초 제거와 같다.”고 말씀해 주셨다. 잡초 제거는 아무리 열심히 해도 티가 잘 나지 않는다. 성도들과 함께 살아가며 매일과 같이 섬김으로 마음의 밭을 일군다. 성도들의 마음의 밭에 자라난 잡초들을 말씀으로 그리고 사랑으로 제거해 준다. 주변 사람들은 그 수고를 알 수 없다. 아무리 열심히 수고해도 잘 티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하나님은 다르다. 하나님께서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시는 분이시다. 사역자의 땀과 눈물어린 수고를 다 아시고 기억하신다. 우리의 수고는 사람을 향하지 않고 하나님을 향한다. 그분을 향한 사랑을 표현 할 수 있는 기회로 여긴다면 특별히 농촌목회는 하나님 앞에 더욱 영광스러운 사역이라 생각한다.
멀리 있지 않은 선교지 농촌
첫 번째 방문했던 증평 노암교회에서 노방전도를 나갔다. 둘씩 짝을 지어 나간 농촌의 들판에서 우리는 가뭄 때문에 힘들어 하시는 어르신들을 만나 뵈었고, 손을 붙잡고 이야기를 들어 드리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여든이 넘은 한 할아버지는 우리를 반가워 하시면서도 젊은 사람들은 농촌에 있으면 안 된다고 이야기 하셨다. 농촌에는 특별한 변화도 없고 기회나 희망이 없으니 당연히 도시로 나가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그렇게 말씀하시는 할아버지의 눈빛은 외로움에 가득 차 계셨다. 가뭄 때문에 말라만 가는 눈에 보이는 농작물보다 보이지 않는 그분들의 마음이 쩍쩍 갈라져 있는 것처럼 느껴져 마음이 아려왔다. 고된 농사일과 생활 형편이 아니라 정말 그분들의 어려움은 바로 외로움이었다. 명절 때마다 잠깐 들리는 자식들에 대하여 서운함 마음을 토로하시는 모습을 보며 외로움과 싸우면서도 주어진 삶에 순응하며 살아가시는 그분들의 외롭고 희망 없는 마음을 느꼈다.
그들의 외로운 마음에는 예수님이 필요하다. 아들, 손자, 며느리가 방문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예수님과 함께 하지 못하기에 외로운 것이라 생각한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 살아가는 삶은 허무하다. 그 마음은 자식도, 돈으로도, 명예로도 채워질 수 없다. 그들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생각한다. 그들을 지으시고 그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누구보다 안타깝게 여기심을 알게 되었다.
도시의 젊은이들이 농촌의 어르신들을 이해할 수 있을까? 어려울 것이다. 유교적, 샤머니즘적인 관습과 문화에 그대로 순응하며 살아가시는 농촌의 어르신들을 뵈며, 언어적 장벽은 없지만, 문화적으로는 우리와 정말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이것은 도시와 농촌의 생활환경이 다른 차이도 있지만, 세대 차이가 가장 큰 원인이 되는 것 같다.
이러한 세대 차이와 문화 차이가 존재하는 농어촌은 선교지이다. 새소망교회 목사님은 농어촌 역시 선교지이며 해외선교보다 관심을 안 갖는 일은 잘못된 것이라 하셨다. 동일 언어권이지만, 서로 다른 용어, 정서와 문화 속에서 살아가는 농어촌은 문화적 장벽이 결코 해외 선교지와 다를 바 없는 상황인 것이다.
도시와 농촌이 그리고 젊은 사람들과 농어촌의 어르신들이 하나 될 수 있는 것은 오직 복음으로만 가능하다.
복음은 모든 문화적 장벽을 넘는 것이며 초문화적인 것이다. 농어촌은 분명 선교지이며, 복음이 필요하다. 많은 사람들은 희망이 없다며 가기를 꺼려하지만, 농어촌은 수많은 영혼들이 하나님의 복음을 기다리고 있는 선교지이다. 앞으로 더 많은 성도들과 사역자들이 농어촌에 관심을 갖고 기도하며 다가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 이번에 경험한 농촌을 생각하며 주님의 은혜를 간구한다.
<노암교회 활동>
‘주님이 부르셨으니 또한 책임지시리라’ 전승훈 전도사
지역을 사랑하는 마음 선한 영향력
처음 농어촌 선교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가고 싶었지만 출산을 40여일 앞 둔 아내와 3살 딸을 두고 방학하자마자 또 집을 비운다는 것에 부담이 있었다. 기도하고 고민하다가 새로운 배움과 도전, 그리고 함께 하는 동기들과의 좋은 추억의 시간들이 될 것 같아서 참석하게 하였다. 이번에 방문한 세 곳의 교회들(노암교회, 새소망교회, 세광장로교회)에서 목사님들의 하나님과 지역을 사랑하는 마음, 열정들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또한 후배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여러 모습으로 섬겨 주시고 격려해 주심에 도전이 되었다.
이번 선교를 통해 느낀 점들은 첫째, 농어촌 선교가 단순하지 않다는 것이다. 방문한 세 곳은 모두 농촌 마을이지만 달랐던 것 같다. 농사(품목, 규모), 지역 거주 형태(귀농, 고향), 도시와의 접근성 등에 따라 성향과 고민하시는 것들이 모두 다름을 알게 되었다. 지역이 농촌일 뿐 도시의 다양한 사람들과 복음의 접근 방법이 동일하게 요구되는 것을 본 것 같다.
둘째, 선한 영향력, 좋은 이웃이 되어 주기가 중요한 사역이었다. 방문 했던 교회의 목사님께서 8년이 지났을 때부터 마을 분들이 같은 마을 사람, 이웃으로 생각해 주었다고 한다. 그때 쯤 교회의 빚을 다 갚았다고 하신다. 마을 사람들은 특정 목적(전도)을 가지고 다가오는 것은 싫어하지만, 교회의 상황들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고 다 알고 있었던 것이다. 목사님은 당장을 위해 공격적으로 전도하기보다는 그 마을의 일원, 이웃이 되기 위해 애쓰셨다고 하셨다.
전도가 너무 중요하고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지만 오늘날의 전도의 모습, 동기가 영혼을 향한 근본적인 사랑이나 그 대상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사람 수를 채우는 목적 달성을 위한, 단기간의 결과를 기대하는 식의 전도가 아닌가 다시금 고민하고 반성하는 시간이었다.
셋째, 농촌에는 사역할 일꾼이 없다. 진짜 너무도 없다. 잘 정착한 교회도 있었지만, 아직 개척 단계에 있는 교회가 많았다. 목사님이 모든 사역을 주로 혼자서 감당하고 계시며, 반주자가 없어서 우리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도 하셨다. 그러면서 어려움 속에서도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는 이유가 ‘주님이 나를 이곳으로 불러 주셨으니 또한 책임지시리라’는 믿음 때문이라는 고백이 큰 감동이었다. 앞으로 내 사역 속에서도 해야 할 진정한 신앙 고백이 아닌가 생각하였다.
<새소망교회 목회나눔>
농촌 목회란 주민들과 함께 살아가며 지내는 것 송선주 전도사
농촌 교회의 어려움과 수고,
농민들의 삶의 고단함을 알게 되었다
태어나서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나는 계속 도시에서 자랐다. 그리고 그 이후에 집을 떠나 잠시 다른 곳으로 이동하게 되었고 10년 동안 살았던 곳은 내가 자랐던 도시보다 훨씬 큰 대도시였다. 심지어 가족, 친척들 모두가 서울과 경기도 권에서 살기에 농촌에 갈 일이 많이 없었고, 농촌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다.
첫날 노암교회 부근에 도착했을 때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집의 모양과 구조, 마을의 모습에 놀랐다. 그러나 교회는 생각 외로 깔끔하고 최신식 시설로 보였다. 준비한 선물을 들고 흩어져 마을회관과 집을 방문했다. 마을회관 앞 정자에 주민들이 앉아 계셨다. 날씨가 너무 더워서 농사일을 할 수 없어 정자에 모여 대화를 하고 계셨다.
작은 마을이라 서로에 대해서 잘 알고 익숙해 보였고 젊은 사람들은 주변의 큰 도시로 떠나고 노인 분들만 남아 계셨다. 그 노인 분들이 농사를 지으면서 자식들에게 보내기도 하고 팔기도 하면서 지내고 계셨다. 그 분들이랑 이야기하며 깜짝 놀란 것 중 하나는 교회를 한 번도 못 가 보았다는 것이다. 근처에 교회들이 많이 없기도 했지만 대부분 농사일로 많이 바빠서 못 가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지금 가뭄으로 인해서 농사가 힘들다는 등 여러 상황들을 들으니 많이 공감이 되었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예전에는 비가 안 온다고 했을 때 살짝 안타깝다는 생각은 했지만, 현장에서 이야기를 듣고 보니 정말 심각한 상황임을 알게 되었고 이 분들의 절박한 삶의 모습에 대해서도 좀 더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곳 이장님은 논에 물을 주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애쓰고 계셨다. 그 분과 짧은 대화를 통해 이미 이단들도 만났었지만 자신이 살아온 인생으로 인해 교회에 나가 신앙생활하기가 힘들고 어려운 입장이라고 했다.
둘째 날도, 셋째날도 교회들을 방문하며 지역 주민들을 만났을 때 그들의 삶에 대해서 계속 듣고 보는 시간이었다. 농사는 그들의 인생에서 거의 전부라고 할 만큼 굉장히 중요하고 그로 인해 인생이 진행됨을 보았다. 농촌 교회와 도시 교회가 서로 다른 모습을 지닐 수밖에 없음을 깨달으며 농촌 교회의 어려움과 수고, 그들이 고민하고 마주하는 현실과 문제들을 같이 생각하고 고민해 보게 되었다. 이렇게까지 농민들의 삶이 고단하고 쉽지 않음을 알게 되었고, 그들의 입장과 삶에 대해 알지 못하면 농촌 사역은 상당히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지역을 방문하면서 농촌의 폐쇄성, 보수성, 고립성, 무속 신앙 등을 경험하고 보는 시간이 되었다. 사람들이 방어적이고 경계하며 마음을 열지 않는 것이 보였고 농촌 사역은 지역 주민들과의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3일 내내 경험하는 시간이 되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농촌의 모습과 사람들의 특성, 마을과 지역의 상황들을 배우며 농촌 사역의 필요성을 알게 되었다. 무조건 전도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그 지역에서 함께 살아가는 것, 살아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고 경험했다.
농촌 목회란 지역에 따라, 사람들에 따라 전략과 방법들을 준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에는 그 지역에서 그 주민들과 함께 살아가며 지내는 것인 듯하다. 그렇기에 주님 앞에서 매일을 살아내는, 하루를 살아가는 연습을 해야겠다. 그리고 다녀온 교회들과 지역들을 위해서 기도해야겠다.
<세광장로교회 활동 후>
농촌 목회는 복음과 사랑의 두 기둥으로 감당한다 이예라 전도사
세 교회는 각자 다른 색을 가졌지만
모두 십자가를 드높이고 있었다
기말고사가 끝난 후 6월 19일 월요일 학교를 출발하여 22일 목요일에 학교로 다시 돌아오기까지, 3박 4일간의 일정 동안 세 곳의 교회를 돌아보는 2017년 농촌 비전트립을 무사히 마쳤다. 돌아보면 체력적으로 버거울 때도 있었지만 분명 배운 것과 마음에 남는 것도 많았던 귀중한 시간들이었다.
처음으로 도착한 교회는 경무현 목사님께서 시무하시는 충북 증평의 노암교회였다. 한적한 시골 한편의 전원주택 같은 고즈넉함을 지닌 이 교회가 알고 보니 오랜 시간에 걸쳐서 많은 분들의 눈물 어린 기도와 후원으로 세워진 교회라고 한다. 밝고 따뜻한 미소로 우리를 맞아 주시는 목사님과 사모님께서 그간 얼마나 기도하며 기다리셨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괜히 짠해져 왔다.
전도용품으로 가져온 팔토시에 준비해 간 라벨지를 붙이고 구역을 나눠 전도를 나갔다. 무더운 날씨지만 마을의 어르신들은 심은 농작물이 가물까 걱정이 되어 구석구석마다 물을 대고 계셨다. 밝은 인사와 함께 팔토시를 끼워드리며 짧은 시간이지만 안부를 여쭈었다. 시간의 여유가 더 있으면 좋으련만 그렇지 못해 마주 잡은 손이 아쉬웠다. 아쉬움을 뒤로 한 채 헤어지면서도 우리에게 지어주신 그 분들의 따뜻한 미소가 참 마음에 남았다.
목사님을 통해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께서 분명히 일하심을 들으며 늦은 밤 더위를 잊을 수 있었다.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 인고의 시간을 통하여 교회가 없는 이 작은 마을에 십자가를 높이 세우셨으니, 이곳을 통해 하나님의 이름이 높임을 받게 해달라는 기도를 드렸다.
다음날인 화요일 오전에 교회의 일을 도와드리고, 임용민 목사님께서 시무하시는 충북 청주의 새소망교회로 이동했다. 예배당 앞 커다란 현수막에 그려진 붉은 칼빈의 심장이 인상적인 교회였다. 예배당 입구에 입교를 준비하며 중고등부 학생들이 작성한 신앙고백이 게재되어있는데 너무나도 선명한 어조와 단호한 말투가 감탄을 불러일으켰다.
서툰 전도사 사역을 통해 신앙을 가르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는 중인지라, 학생들의 신앙고백에서 느껴지는 신앙의 균형과 진정성이 놀랍기만 했다. 함께 모여 목사님께 처음 부임하셨을 때부터의 목회 이야기를 들었다. 교역자가 먼저 탄탄한 교리를 기반으로 한 개혁신학적 믿음을 바탕으로 하며 어린이부터 장년에 이르기까지 성도들을 교리 교육으로 바로 세워 가는 교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말씀을 들으며 하나님께서는 교회에 복음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을 무척 기뻐하신다는 생각이 점차 확신으로 바뀌어갔다. 교리를 바탕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가르치고 전하면 그 열매는 더디더라도 반드시 싹을 틔운다는 것을 현장에서 몸소 배웠다. 진리이신 하나님의 말씀은 나이에 상관없고 상황에도 매이지 않음을 보았다.
수요일, 마지막으로 최진욱 목사님께서 시무하시는 경기도 여주의 세광교회로 이동했다. 선교사로서 십여 년간을 타지에 계시다 고향으로 돌아와 개척을 하셨던 목사님께서는 한 영혼을 향한 전도의 열정으로 목회를 감당하고 계셨다. 하나님의 사랑을 감격으로 받고 그 사랑에 붙들려 복음을 전하시는 목사님의 아름다운 자원함이 참 인상적이었다.
비록 현실은 녹록하지 않음을 듣지만 하나님께서는 농촌에 자리 잡은 이 작은 교회를 통해서도 분명히 일하고 계심을 보았다. 어르신들의 삶을 돌보고 필요를 채우며, 때로는 말동무로 고충을 들어 드리고 때로는 농사일을 돕고 병원에 모시는 일까지… 복음은 말의 언어와 함께 실질적인 삶의 언어를 통해 전달됨을 배웠다. 그 곳의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함께 드리는 수요예배는 작지만 따뜻했다.
2017 농촌 비전트립은 순간순간 더딘 듯 보였지만 빠르게 지나갔다. 세 곳의 교회는 각자 다른 색을 지니고 있었지만 모두 다 그리스도를 머리로 그 분의 복음을 전하며 세워진 곳에서 십자가를 드높이고 있었다. 잠잠히 돌이켜 보니 농촌 목회는 복음과 사랑의 두 기둥으로 감당한다는 것을 공통적으로 발견했다. 삶으로 들어가서 행동과 말로서 복음을 가르치고 세우는 것이 함께 가야함을 배웠다. 비록 무더운 날씨에 일이 녹록하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참 값진 배움이었다. 지나온 농촌 교회들과 목사님들을 통해, 모든 교회들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 구석구석에서 더욱 확장되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