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두 본질의 고유한 사역과 한 위격의 관계 <제8장 7항>
< 김병훈 목사, 합신 조직신학 교수 >
제8장 7항: “그리스도께서 중보사역을 하실 때, 그는 두 본질들에 따라서 행하셨으나, 각각의 본질에 고유한 것을 그 본질에 의하여 행하셨다. 그렇지만 그리스도의 위격은 단일하므로, 성경에서는 때때로 어떤 한 본질에 고유한 것이 다른 한 본질에 따라 불리는 위격에 의한 것으로 돌려진다.”
심판주 그리스도께서는 신성에 따라, 전지하시며 전능하신 분으로 판결하실 것입니다. 동시에 인성에 따라, 판결의 자리에 앉으시어 눈으로 보고 지각할 수 있는 활동으로 판결하실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중보사역은 신성에 따른 고유한 일과 인성에 따른 고유한 일이 단일한 인격 안에서 경우에 따라 행사됨으로써 비로소 실행이 완전하게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잘 기억해야 합니다.
시작하는 말
신앙고백서가 본 항에서 말하는 바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1)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중보사역을 인적 본질 곧 인성, 또는 신적 본질 곧 신성 가운데 어느 한 본질에 따라서만 행하시지 않으시고, 두 본질들을 모두 사용을 하셨으며, 이 때 경우에 따라 각각의 본질은 각각에게 고유한 일을 하는 방식으로 하셨다는 것입니다.
(2) 그리스도께서 신성과 인성의 두 본질들을 가지고 계시지만 그 위격이 단일하기 때문에, 어느 한 본질에 따른 사역이 다른 본질에 따라 호칭이 된 그리스도에게 돌려지는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신앙고백서가 이러한 사실을 교훈하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신-인(God-man)으로서 단일 위격이시면서도 신성과 인성을 둘 다 가지고 계신 분이라는 신비로운 사실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이러한 신비와 관련하여 유의해야 할 것과 관련해서, 신앙고백서는 앞선 8장 2항은 단일한 위격 아래 두 본질들이 어떠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 교훈을 하였습니다.
그것은 두 본질들이 한 위격 아래 있지만, 두 본질들은 서로 온전하고 완전하게 구별이 되며, 두 본질들의 결합으로 인하여 각 본질에게 어떤 변화나 혼합이나 혼동 없으며, 두 본질들은 분리할 수 없게끔 서로 결합되어 있음을 가르칩니다.
이와 비교해서 여기서 살피는 8장 7항은 그리스도께서 사역을 하실 때 한 위격 아래에 있는 두 본질들은 각각 어떻게 역할을 하며, 그럴 경우 위격의 호칭은 어떻게 되는 것인지에 대해 가르칩니다. 다시 말해서 8장 2항은 그리스도의 존재와 관련하여 ‘단일한 위격과 두 본질들’의 문제를 다루는 반면에, 8장 7항은 그리스도의 생활과 사역에 관련하여 다루고 있습니다.
1. 신성과 인성을 가지신 그리스도
그리스도의 인격은 본래부터 영원하신 성자 하나님의 단일한 위격입니다. 다시 말해서 신적 본질인 신성을 영원부터 가지고 계신 제2위 하나님이신 로고스, 곧 성자께서는 인적 본질인 인성을 취하셨을 뿐이기에, 성육하신 그리스도의 인격은 신적 인격과 인적 인격이라는 두 인격들을 가지고 계시지 않습니다.
성자 하나님께서 인적 인격이 없는 상태로 인성을 취하신 이 연합의 방식을 신학자들은 인격이 없는 ‘무인격적 연합’(anhypostatic union)이라는 신학적 명칭으로 가리킵니다. 그런데 인성은 일단 로고스이신 성자 하나님의 위격에 결합이 된 이후로는 더 이상 인격이 없는 상태에 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성자 하나님의 신적 인격이 인성을 소유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된 연합의 결과를 인격이 있는 ‘유인격적 연합’(enhypostatic union)의 상태라는 말로 표현을 합니다.
이처럼 단일한 인격이 신성과 인성을 둘 다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사역을 행하실 때 그의 생활과 사역은 때로는 하나님의 능력을, 때로는 인간의 특성을 나타냅니다.
이것과 관련하여 신앙고백서는 본 항에서 “그리스도께서 중보사역을 하실 때, 그는 두 본질들에 따라서 행하셨으나, 각각의 본질에 고유한 것을 그 본질에 의하여 행하셨다”고 고백을 합니다.
성경을 읽다보면 할 수 있는 질문들, 곧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이신데 어찌하여 주리시기도 하시며 죽으시는 것일까? 또한 예수님은 사람이신데 어떻게 죽은 자도 살리시며 귀신도 내쫓으시는 등의 초자연적 능력을 행하시는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서 신앙고백서는 올바른 이해의 길을 잡아줍니다.
우선 그리스도께서는 신성에 따라서 하나님이심을 드러내셨습니다. 마태복음을 중심으로 살펴보기만 해도,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완전케 하려 오셨다고 하신 말씀이나(5:17), 나병환자를 깨끗이 고치신 일이나(8:2), 중풍병자에게 죄를 사하시는 권능을 나타내 보이시며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고 하신 말씀이나(9:6), 물 위로 걸어서 가신 일이나(14:29), 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신 일이나(14:17-21, 16:9), 맹인과 저는 자들을 고쳐주신 일이나(21:14), 훗날에 천사들과 함께 영광 가운데 오셔서 보좌에 앉으실 것을 말씀하신 것이나(25:31),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으셨다고 말씀하시며 하나님 아버지와 성령과 나란히 자신의 이름을 두어 세례를 주라고 명하시고 영원토록 제자들과 함께 있을 것이라 약속하신 일(28:18-20) 등은 모두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나타내 보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심을 증거하는 구절들 가운데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초자연적 사건들은 모두 그의 신성에 따라 이루어진 일들입니다.
그러하기에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일을 보고 이르기를 “이이가 어떠한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마 8:27)고 한 일이나, “이 사람이 내 눈을 뜨게 하였으되 당신들은 그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는도다”고 말한 맹인의 반응 등은 그리스도께서 단지 인성을 따라 이러한 일들을 행하시지 않은 것임을 시사해 줍니다.
특별히 나사로를 살리시고 자신을 가리켜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말씀(요 11:23-26)하신 것은 그리스도께서 신성을 따라 행하시고 자신의 신성들 나타내신 가장 결정적인 근거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리스도의 이러한 초자연적 사역은 인성에 관계없이 그의 신성에 따라 행하신 일입니다.
반면에 또한 그리스도께서 겪으신 모든 환난, 유혹, 시험, 결핍, 고통, 그리고 죽음 등은 모두 그의 인성을 따라서 당하시는 일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그의 백성들을 구하시기 위한 대제사장의 사역을 행하시기 위하여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속량하려 하심이라.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히 2:17-18).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백성들을 대리속죄하기 위하여 형벌도 친히 받으셨습니다. 그것은 단지 육신으로만이 아니라 영혼을 통해서도 고통을 당하시는 것을 포함합니다. 주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을 앞두시고 고통을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내 마음이 괴로우니 무슨 말을 하리요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 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 때에 왔나이다.”(요 12:27) 그리스도께서 당하시는 이러한 고통은 그의 신성과는 관련이 없이 오직 인성의 고유한 성질에 따라 받으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심판의 날은 천사도 모르고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신다고 하신 말씀(막 13:32)이나 그가 자라가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만하였다는 말씀(눅 2:40,52)은 그가 인성 가운데 생활을 하셨음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이 곳 저 곳을 다니셔야 했었습니다(막 6:6; 요 6:24; 11:15). 이러한 제한들은 모두 예수님께서 그의 인성을 따라 행하신 생활의 모습들입니다.
또 마태복음 25장 31-46절에서 보듯이, 중보자이신 그리스도께서는 마지막 날에 모든 자들을 향해 심판을 하실 터인데, 이때 그리스도께서는 이 심판의 사역을 신성과 인성 둘 다에 따라 행하실 것입니다. 심판주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신성에 따라, 전지하시며 전능하신 분으로 판결하실 것입니다. 동시에 인성에 따라, 판결의 자리에 앉으시어 눈으로 보고 지각할 수 있는 활동으로 판결하실 것입니다.
요한복음 5장 27절(“또 인자됨으로 말미암아 심판하는 권한을 주셨느니라”)의 말씀에서, “인자됨으로 말미암아”라는 표현은 심판의 권세가 인성에 주어졌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다니엘이 환상 가운데 보았던 바대로(단 7:13),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받으신,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 곧 인자 같은 이가 심판의 권세를 받으셨음을 말씀하실 따름입니다. 이 인자는 신성과 인성을 모두 가지고 계신 하나님이시며 사람이신 중보자 그리스도이십니다.
2. 서로 구별되는 그리스도 안의 두 본질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의 두 본질들은 각각 본질에 고유한 대로 활동을 나타내지만, 그것의 주체가 ‘하나님-사람’(God-man)이 되신 성자 하나님의 단일한 위격이기 때문에 때로는 인성에 따라 행하신 일을 하나님께서 행하신 것으로, 혹은 그 반대로 표현을 하는 경우들이 성경에 나타납니다. 이러한 사실을 신앙고백서는 “그렇지만 그리스도의 위격은 단일하므로, 성경에서는 때때로 어떤 한 본질에 고유한 것이 다른 한 본질에 따라 불리는 위격에 의한 것으로 돌려진다”고 교훈합니다.
예를 들어, 이 세대의 통치자들이 지혜가 없고 무지하여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는 말씀(고전 2:8)을 보면, 십자가에 못 박혀 고통 가운데 죽는 것은 인성에 따라 이루어지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 일을 당하시는 분을 가리켜 하나님께 합당한 호칭인 ‘영광의 주’라는 표현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또한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다는 말씀(요 3:13)은 하늘에서 내려오셨다가 다시 오르시는 신비로운 신성에 따른 일을 사람의 아들이라는 표현을 담은 인자에게로 돌립니다. 이것은 영혼이 몸을 통하여 작용을 하듯이, 그리스도에게서는 신성에 따라 행하시는 일들이 다 인성을 통하여 작용이 되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20장 28절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는 말씀은 교회를 가리켜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것이라고 표현을 합니다. 신성에 따른 하나님을 인성에 따라 ‘피’를 흘리시는 분으로 말씀한 것이며, 또는 반대로 인성에 따라 ‘피’를 흘리는 분을 하나님으로 말씀한 것입니다.
이러한 교훈을 통하여 유의할 것은 각각의 본질에 따라 행하시는 활동과 생활 때문에 그리스도의 단일한 위격을 둘로 나누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중보사역은 신성에 따른 고유한 일과 인성에 따른 고유한 일이 단일한 인격 안에서 경우에 따라 행사됨으로써 비로소 실행이 완전하게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잘 기억해야 합니다.
모름지기 그리스도께서 행하시는 일 자체는 그 일이 각 본질, 곧 그리스도에게 속해 있는 것(totum Christi)에 따라서 실행이 되지만, 그 일은 각각 ‘전체로 한 분이신 그리스도’(totus Christus)이신 단일한 위격에게로 돌려져야 합니다.
또한 그 위격은 신성과 인성에 따라 각각 하나님으로 혹은 사람으로 불리어집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종종 어떤 일을 실행하실 때, 그 일을 실행한 본질에 따른 이름이 아니라, 다른 본질에 따른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십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사역이 바로 단일한 위격 아래 두 본질을 가지고 계신 그리스도의 독특한 존재에 따라 실행이 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