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도 자존심을 내려 놓으셨는데…_변세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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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도 자존심을 내려 놓으셨는데

< 변세권 목사, 온유한교회 >

 

세상과 하나님을 따르는 길이 어떻게 다른지 분별할 줄 알아야

 

 

올 여름은 더위가 빨리 찾아오고 후텁지근한 날이 계속된다. 그래도 가끔 소나기가 지나가 다행이다.

늘 그렇지만 이 더위에도 마음이 차분하고 욕심을 낼 일도 별로 없다. 조용히 사니 찾는 이 없고 묻는 이 없으니 참 좋다. 그러다 혹 어떤 일에 성과가 있다한들 그것이 우리에게 뭐 그리 대단한 기쁨이 되겠는가?

세상을 보니 자존심을 버리지 못해서 체면을 구긴 사람들이 여기저기 보이는 것이 한 둘이 아니다. 그까짓 자존심이 뭐라고… 

동료 목회자에게 져주고, 자식에게 져주고, 성도에게 져주는 것이 참으로 어려운 것 같다. ‘진작 져주었더라면 고생도 안하고 머리도 훨씬 아프지 않았을 것을…’ 평소 기다려주는 걸 잘하지 못하다보니 이제와 후회와 자성이 많다.

우리는 그 흔한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라는 말 한 마디 못할 정도로 자존심으로 가득하다. 아무리 교양이 있고, 신사인 체 하고 있어도 우리가 갖고 있는 비극은 사람과 사람사이의 신뢰와 용서, 화해와 사랑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가 남보다 내가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십자가를 이해한다면, 맨 처음 가져야 하는 생각이 다른 사람과 내가 방불하다는 사실이다. 남들이 나보다 나으면 나았지, 내가 남보다 나은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우리가 과연 이런 생각을 가질 수 있을까? 이 생각을 가질 수 없다면, 사람들에게 과시하고 갖다 붙일 것이 많다면 아직도 십자가를 모르는 것이다.

사단이 우리를 조종하는 가장 큰 무기는 우월감이다. 그래서 죄가 죄의 형태를 가장 교묘하게 숨기고서도 죄의 실력을 가장 많이 발휘하는 것이 자존심이다. 자존심을 꺾으면 그는 참다운 신자이다. 그래서 오늘 우리 마음의 문을 열고 내 안에 있는 물품들을 확인해보아야 한다.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고 자존심만 우리의 뱃속에 가득 차 있을 것이다. 사람이 자존심만은 양보를 못한다. 도덕적, 윤리적 차원에서의 양보를 하라는 말이 아니다. 

우리는 이제 화목케 하는 일을 담당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예수께서 우리를 죄인 되었을 때 사랑하셔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아버지의 사랑을 확증하셨기 때문이다. 그 사랑을 입을 자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우리의 권리와 행해야 할 책임이 사랑이요, 화해요, 용서라는 사실이다. 이것이 신앙의 본질이다. 이것부터 연습해야 한다. 우리를 붙잡고 있던 그 쓸데없는 자존심과 우월감에서 벗어난 자인 것을 실천해야 한다.

통계적으로 보면 일류학교 출신치고 괜찮은 사람이 별로 없다고들 한다. 일류학교 출신들의 가장 큰 약점은 그 학교들이 학교의 명예를 위해 개인들에게 너무나 많은 자신감을 심어주어서 질 줄 모르고 양보할 줄을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빈정대고, 언제나 거들먹거린다.

우리는 누가 무엇을 잘 하는 것에 박수쳐 주는 모습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뭐 그 까짓 걸 가지고…” 그것밖에는 할 줄 모른다. 같이 죽으면 죽었지 남이 잘 되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한다. 우리는 상대방을 낮추기 위해서라면 상대방도 죽이고 나를 죽여도 좋다는 끔찍한 생각을 하고 있다. 상대방을 살리는 것이 자기를 살리는 것임을 꿈에도 생각할 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십자가를 지라’는 명령과 ‘썩는 밀알이 되라’는 것은 얼마나 대단한 진리인가? 우리는 해야 한다. 그것이 상대방도 살리고 나도 사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거기에 대해서는 의례 고개를 돌린다. “그런 법이 어디 있어?” “누가 그렇게 했다며?” 못들은 척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살고 있지 않는가?

반면에 하나님은 바벨론 포로 시대에 하나님의 성전이 훼파되는 것을 허용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인류 역사 가운데 보내어 우리 손에 십자가에서 죽게 하셨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자비하심이 얼마나 대단한 하나님의 성의이며 의지인가를 알고 있다. 

하나님도 자존심을 내려놓으셨는데 이제 우리도 쓸데없는 자존심을 내려놓고 세상과 하나님을 따르는 길이 어떻게 다른지를 분별하고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어떤 길이 명예롭고, 어떤 길이 자랑인가를 볼 줄 알아야 한다. 명예나 감사로 가는 인생인지, 이해관계나 심판이 두려워서 가는 존재인지 깨달아야 한다.

사람이 자신의 신앙이 고백과 증언이 되면 표정이 좋고, 강요와 의무가 되면 표정이 사나워진다. 우리가 바른 원칙을 갖고 열심을 낸다 해도 평생 교인 30-40명과 함께 교회를 이룰 수 있다. 그것을 우리는 부끄럽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다만 작은 일에 충성해야 할 뿐이다. 큰 것이라는 것은 양적으로 그렇다는 것이지, 수준이 꼭 그렇다는 것이 아님도 알아야 한다.

우리는 큰 자가 섬기는 나라에 살고 있다. 자존심과 세상풍조와 싸우는 것이지 성경과 싸우는 것이 아니다. 목사라서 남들하고 싶은 것 못하는 것이 복이고 명예이다. 우리는 연륜이 쌓여가면서 외롭고 쓸쓸하다고 고집을 부릴 것이 아니라, 신앙의 무슨 증언을 교회에 남겨야 하는 것이다.

“걱정하지 마라, 괜찮다. 부족하고 작고 손해 본 것으로 네가 실패하지 않는다.” 이렇게 당당하게 말해줄 수 있어야 한다. 이런 모습을 우리가 교회와 역사에 보이고 남기지 못한다면 어떻게 후손들이 겁이 나서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겠는가? 어떻게 미래교회 세대를 걱정할 수 있겠는가?

아직도 화를 내고, 짜증을 내는 것은 자존심을 내려놓지 못하고 무엇인가 자신을 내세우고 싶어서이다. 더운 날씨는 앞으로 계속될 것이다. 

이번 주에는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들이 말하는 대로 뭐든지 해봐야겠다. 하나님도 자존심을 내려놓으셨는데 그까짓 자존심이 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