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하게 된 후에 전도한다고요?- 성화와 전도, 오해와 진실 -최광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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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하게 된 후에 전도한다고요?
– 성화와 전도, 오해와 진실 –

최광희 목사_수원노회 행복한교회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어 구원받은 신자가 말씀에 순종하며 성화를 이루어가는 것은 마땅한 도리입니다. 그러나 성화에 대한 오해는 자칫 신자를 율법주의자나 행위 구원론자로 만들 위험이 있습니다. 나아가 기독교를 단순한 윤리 실천 운동 단체로 전락시켜, 제자도의 핵심인 복음 전도를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기도 합니다.

 

성화의 수준이 전도의 자격인가

성경은 신자가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어 거룩하게 살 것을 명령합니다. 하지만 이를 오해하면 완벽한 도덕적 우위에 서야만 성경적 진리를 말할 자격이 생긴다고 착각하게 됩니다. 이런 강박은 청중으로 하여금 “설교자는 과연 저대로 사는가?”라는 의심을 품게 하고, 전도자로 하여금 스스로의 결함에 매몰되게 만듭니다.

물론 말씀을 전하는 자는 누구보다 거룩함을 지향해야 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인격은 아무리 연마해도 한계가 있는 법입니다. 충분한 인격을 갖춘 후에야 설교하고 전도할 수 있다면, 이 지상에 자격을 갖춘 사명자는 단 한 사람도 존재하지 못할 것입니다.

 

삶으로의 ‘증명’보다 앞서는 ‘증인’의 사명

복음을 전하는 이에게 비난받지 않을 인격은 분명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도의 전제 조건이 된다면 일평생 노력해도 복음을 입 밖으로 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복음의 ‘증인’이 되라고 하셨지, 삶으로 복음을 완벽히 ‘증명’해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빌립은 예수님을 만나자마자 나다나엘에게 달려갔고, 수가성 여인 역시 곧장 마을 사람들에게 메시아를 전했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얼마나 거룩하게 변했는지 설명하거나 증명하는 일에 시간을 지체하지 않았습니다. 신자는 ‘나의 의로움’이 아니라 ‘예수님의 의로움’을 전하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전도하다가 인격의 부족함을 지적받는다면 겸허히 사과하십시오. 그리고 “이런 부족한 죄인까지 구원하시는 것이 바로 복음의 은혜”라고 더 힘있게 선포하면 됩니다.

 

도덕적 수양이 전도를 대신할 수 없다

오늘날 한국 교회의 쇠퇴 원인을 신자의 부도덕함에서만 찾는 시각이 지배적입니다. 심지어 “착하게 살면 전도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스스로 올 것”이라는 주장은 심각한 오해이자 사탄의 미혹입니다. 이런 생각에 빠지면 평생 전도는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자기 수양에만 매달리게 되고, 개선되지 않는 자신을 보며 낙망하게 됩니다.

완벽한 삶을 사신 예수님이 가장 힘쓰신 일은 바로 ‘입술로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은 각종 이적과 봉사로 공동체를 유지하는 데 머물지 않으셨습니다. 봉사와 헌신은 전도의 문을 여는 귀한 도구이지만, 그 자체가 복음 전파를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복음은 반드시 ‘말’을 사용하여 선포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주님이 친히 보이신 본(本)입니다.

 

허물 많은 자를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은혜

설교자나 전도자 누구에게나 남모르는 부끄러움은 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 허물 많은 입술을 사용해 영혼을 구원하십니다. 효도가 부족한 자식일지라도 부모 공경을 설교해야 하고, 연약함이 있더라도 그리스도의 사랑을 강조해야 하는 것이 사명자의 숙명입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도 별수 없더라”는 비난은 오히려 복음의 정수를 전할 기회가 됩니다. 교회는 의인이 아닌 죄인이 모이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거룩을 위해 몸부림쳐도 여전히 허물투성이라는 사실은, 인간이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는 존재이며 그래서 우리에겐 반드시 ‘구원자’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증명해 줍니다.

거룩해진 후에, 혹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 후에 전도하겠다고 미루지 마십시오. 그러다가는 평생 한 영혼도 구원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신자는 비난 속에서도 예수, 십자가, 부활, 천국이라는 네 단어를 끝까지 들려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지상 최대의 사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