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EA와 성경관
김병훈 교수 합신 조직신학 석좌교수
세 계 복 음 주 의 연 맹 ( W E A , W o r l d Evangelical Alliance) 제15차 총회가 2025 년 10월 27일부터 31일까지 서울에서 개최된 다. WEA의 역사적 성립은 크게 세 가지 차원 에서 이해될 수 있다.
첫째, 신학적 차원에서 WEA는 독일 계몽주 의와 합리주의로부터 파생된 역사비평학이 성경관을 근본적으로 변질시키고,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을 단순한 윤리적 모범 혹은 도덕적 교사로 축소시킨 데 대한 대응으로 출범하 였다. 이는 성경의 영감과 권위를 수호하고, 기독교의 본질적 토대를 보존하려는 시도였다.
둘째, 선교적 차원에서 세계 복음화를 위해 교파와 국경을 초월한 복음주의 연합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이는 복음주의 선교 운동이 가진 초교파적 성격의 제도화로 평가될 수 있다. 셋째, 사회적 차원에서 산업혁명 이후 심화된 노동 착취, 빈부 격차, 노예제도 문제에 대한 복음적 정의 구현이 긴급한 과제로 제기 되었다.
이와 같은 복합적 인식 속에서 WEA는 1846년 런던에서 설립되었으며, 그 핵심은 성경의 영감과 권위를 확증하고, 예수 그리스도 의 대속 사역을 근거로 한 구원의 진리를 보존 하려는 공감대에 있었다.
이러한 배경을 고려할 때, WEA 서울 총회는 한국 교회의 환영과 지지를 받을 만하 다. 그럼에도 일부 교계에서는 비판적 시각을 표명하고 있다. 그 주요 논거는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1) WEA가 성경의 무오성 (inerrancy) 대신 무류성(infallibility)이라는 용어를 채택함으로써 성경관을 약화시킨 다는 점, (2) 신사도운동과의 연루 의혹, (3) 세계교회협의회(WCC)와의 교류 속에서 포용주 의·혼합주의·다원주의로 기울어진다는 우려, (4) 복음화보다 공동선을 강조함으로써 복음의 본질을 희석시킨다는 비판 등이다.
이에 대해 WEA는 여러 공식 문서를 통하여 신사도운동과의 무관성을 천명하였으며, 복음의 타협이나 복음주의 정체성의 경계를 허무는 에큐메니컬 포용주의를 결코 수용하지 않음을 분명히 하였다. 또한 인권과 종교의 자유와 같은 공동선을 위한 협력은 복음 진리 수호 와는 구별되는 차원임을 강조하며, 성경관에 있어서도 역사적 복음주의 교리를 고수하고 있음을 반복적으로 WEA의 신앙고백문을 통 해 확인하였다.
실제로 WEA 성경관은 설립 선언문(1846) 에서 “성경의 신적 영감, 권위, 충분성”을 분명히 고백하였고, 2001년 신앙고백문에서는 “성 경은 하나님께서 원래 주신 그대로 신적으로 영감되었으며, 무류하고(infallible), 전적으로 신뢰할 만하며, 신앙과 생활의 모든 문제에 있어서 최고의 권위”임을 명시하였다. 또한 2021년 연례 보고서에서는 이 고백이 “변하지 않는다”고 확인하였다. 이러한 WEA 성경 관은 역사적 개혁주의 신학의 관점에서도 충분히 인정할 만하다. 이는 성경을 단지 종교적 경험의 기록으로 격하시키는 자유주의 신학에 대한 분명한 거부이며, 또한 성경을 신앙 공동체의 역사적·문화적 ‘증언’으로만 이해하는 WCC 입장과도 확실히 구별된다. 자유주의와 WCC 성경관은 역사비평을 수용하여 성경의 오류를 인정하고, 성경을 오직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증거로서만 하나님의 말씀이라 부르지 만, WEA는 이러한 견해를 단호히 배격하며 성경을 신적으로 영감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고백한다.
특히 무오와 무류의 관계에 대한 논의는 주
목할 만하다. WEA 신앙고백문이 ‘무오’가 아니라 ‘무류’라는 표현을 사용한다는 이유만으로 그 성경관을 의심하거나 비판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역사적으로 무류는 무오와 동등한 의미를 갖는다. ‘무오’라는 용어는 17세기 이후 개혁파 정통 신학자들이 ‘무류’라는 용어와 점차 병행하여 사용한 것이다. 그 이전이나 이후나 ‘무류’라는 표현은 본래 ‘무오’와 의미 차이가 없는 용어였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역시 ‘무류’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으며, 이는 무류가 무오를 전제 하는 개념임을 보여준다. 따라서 두 용어는 사실상 동일한 의미로 이해될 수 있다.
다만 신정통주의 신학이 성경의 오류 가능 성을 인정하면서 ‘무류’라는 용어를 오용한 결과 불필요한 혼란이 발생하였다. 그러나 WEA가 사용하는 무류는 이러한 신정통주의적 의미와는 본질적으로 무관하다. 주목해야할 점은, 두 용어의 표현 차이가 곧 성경관의 차이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성경은 무오하기 때문에 오류가 없으며, 따라서 무오와 무류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신적 영감에 의한 무오성은 무류성의 기초가 되고, 무류성 은 무오성이 지향하는 목적과 맞닿아 있다. 결국 성경관의 근본적 분기점은 성경을 단지 인간의 증언으로 이해하느냐, 아니면 신적으로 영감된 말씀 자체로 고백하느냐에 달려 있다.
결과적으로, WEA가 ‘무오’대신 ‘무류’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사실만으로 그 성경관이 역사적 개혁주의와 상충한다고 단정할 수 없다.
오히려 복음주의 연합 운동이라는 WEA의 성격을 고려할 때 이는 충분히 이해 가능한 선택 이다. 따라서 교회의 바람직한 태도는 배타적 거부가 아니라 적극적 참여를 통해 WEA가 복음주의적 성경관을 지속적으로 견지할 수있도록 지도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WEA 성경관은 윤리적 쟁점에서도 분명히 드러난다. 2014년 WEA는 우간다의 ‘동성애 금지법’에는 인권 차원에서 반대했 으나, 동시에 동성혼은 성경에 위배된다는 복음주의적 입장을 명확히 재확인하였다. 이는 복음주의적 성경관이 사회윤리적 문제에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라 할수 있다. 따라서 WEA 2025년 서울 총회는 한국 교회가 주도적 역할을 하여, WEA가 고백해 온 성경관을 보다 명확히 확인하고 강화 하는 기회가 되어야 한다. 이는 오늘날 성경관이 심각하게 훼손된 신학적·교회적 현실 속에서 특별한 의의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