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역의 현장에서]
숙제를 마친 학생
김승주 목사 (사)안양호스피스선교회 설립자 예심아카데미 원장
어제 늦은 시각에 모친을 방문했던 따님의 전화를 받았다. 간병인에게서 ‘엄마가 어제 많이 우셨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는 것과 “엄마가 마음이 많이 편해지신 것 같아요”하는 것이었다. “네!
그러시겠지요. 숙제를 하셨으니까요.”
“숙제요?” “네! 인생에는 누구나 숙제가 있답니다. 모친께서는 그걸 해결하셨으니 이제는 편안히 계실 거예요” “???”
그렇다! 모든 인생에는 숙제가 있다.
돌아갈 집 마련이다. 날은 저무는데 돌아갈 집이 없는 사람이 있다면,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남들이 기다리는 퇴근 시간이 오히려 우울하고, 두렵 기까지 할 것이다. 개학은 다가오는데, 방학 숙제를 마치지 못한 학생이 있다 면, 그는 개학이 두려울 것이다. 하지만 미리 숙제를 잘 해 둔 학생이 있다면 개학이 기다려질 것이다. 모친은 미루어 오던 바로 그 인생 숙제를 어제 마무리한 것이었고, 안도감에서 나오는 눈물 이었을 것이다.
죽음이 무서운 이유 중에는 죽어가는 과정의 고통, 사랑하는 이들과의 이별, 하던 일의 중단, 미지의 세계 즉 ‘심 판’에 대한 두려움 등이 있다. 그중에서 가장 큰 고통은 심판에 대한 두려움 이다. 히브리서 9:27에서도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확인하셨다.
“의인은 없다”(롬 3:10)라고 하셨으니 표현 방법은 달라도 ‘심판에 대한 중압 감’을 우리는 기본적으로 가지고 살아 간다. 그것이 이따금 표출될 때가 있는데 간혹 예기치 못한 어려움이라도 닥치게 되면 한 번쯤은 “혹시 죗값인가?”
자책하기도 한다. ‘심판에 대한 두려움’ 은 영적 존재로서는 본질적 고통이다. 이토록 무거운 짐을 지고 고통받는 인간들을 향하여 주님은 ‘자유와 생명’을 선포하셨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하게 하리라”(요 8:32)고 하셨 고,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 니라”(요 5:24)고 하셨다.
안호선(안양호스피스선교회)에서는 그동안 3,200여 분이 가시는 길에 동행해 왔다. 협력병원은 기독교기관이 아니 지만 안호선의 예배와 기독교 정신의 선한 소문이 나면서 많은 성도들이 이 병원을 찾아와 위로 받고 마지막 정리를 하고 떠나가셨다. 종교적 제한을 둔 것은 아니므로 일반인들도 입원하게 되었 는데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롬 10:17) 라는 말씀이 가장 실감 나게 구현되는 현장이 호스피스 현장이기도 하다. 불신자 중 설교를 듣고 복음을 받아들인 170여 명의 세례식을 집례하였는데 많은 이들이 눈물 속에 세례를 받았다.
우리는 눈물 흘리는 것을 절제시키지 않는다. 억울하거나, 미련 때문이 아니 라, 절체절명에서 극적으로 미래를 보장받으며 감격하여 자연스럽게 나오는 ‘안도의 눈물’인 줄을 알기 때문이다. 여생이 아직 수십 년은 남았을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과 시계 초침 소리를 자기의 남은 시간과 연관 짓는 사람이 세례에 임하는 마음가짐은 같을 수 없다.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어 종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 하심이니”(히 2:15)라고 하셨다. 예수님은 죽음 앞에서 떨고 있는 ‘모든 자’들의 해방자로 오셨다. ‘모든 자!’ 주목할 단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