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죽음의 춤”(Danse Macabre)_가정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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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춤”(Danse Macabre)

가정호 목사(세대로교회)

 

저명한 그림 중에 그 시대를 반영하는 작품이 많다. “죽음의 춤”(Danse Macabre)은 중세 유럽에서 수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간 페스트와 100년 전쟁, 그리고 반복되는 굶주림 등으로 일어난 사회현상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유럽에 닥친 다양한 재난으로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고 죽음의 행렬이 이어졌다. 대개의 시민은 개인의 죽음을 넘어 인류에게 다가온 종말적 위기를 느꼈다. 죽음이 언제 자신에게 또 자기 가족에게 찾아들지 모른다는 공포로 죽음의 행렬 속에서 몸을 흔들었다.

이른바 “죽음의 춤”은 역사 속에 등장했던 죽음에 대한 기억을 소환하는 하나의 상징이었다. “죽음의 춤”은 모든 사람이 죽는다는 보편적 죽음 즉, 산 자는 필연적으로 죽게 된다는 것에 기초한 예술적 장르였다. 당시 “죽음의 춤”은 시간과 공간을 구분하지 않고 모두에게 보편적으로 파고들었다.

의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종말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던 14세기의 유럽의 치명적인 죽음 공포가 일상의 삶을 급진적으로 표현하는 문화로 나타났다. 순서만 다를 뿐 곧 자신에게도 닥칠 것이라는 죽음 인식은 그들이 의지해 왔던 신과 종교에 더 의존하게 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죽음을 앞두고 쾌락에 깊이 빠져드는 현상도 일어났다.

문화는 사회현상으로 인해 형성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죽음의 춤” 역시 피할 수 없는 죽음을 일상에서 준비하도록 자극하고 권고하는 역할을 했다. 죽은 자를 장사지내는 우리의 “상여문화” 역시 그랬다. 시신을 상여에 올려 고인이 살던 마을을 한 바퀴 돌고, 또 생전에 머물던 집과 자주 가던 곳을 돌고 또 돌아서 사자가 묻힐 무덤에 도착했다.

이 역시 산 자들이 죽음을 목도하고 그것을 잊지 않고 준비하도록 권고하는 의도가 담긴 문화적 행위였다. 14세기에 이어 계속해서 당시 북부 유럽 교회의 성벽, 공동묘지, 건물들의 외벽, 무덤, 유적지에서 볼 수 있었다. “죽음의 춤”은 죽은 자와 죽은 자의 생전 모습을 기억하게 하면서 일상에서 죽음을 친밀하게 느끼도록 도와준다.

성경은 잔칫집보다 장례식장을 더 찾아가라고 권고한다(전 7:2-3). 왜 그럴까? 지혜가 거기 있기 때문이다. 태어난 것은 매년 생일로 기억하여 축하해 준다. 반면 죽음에 관해서는 이야기하기를 꺼린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죽는다.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모두 죽음 앞에 서야 한다. 죽음을 기억하고 죽음과 함께 어우러지는 죽음의 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세상일이 아무리 재미있고 화려하다 해도 죽음은 어느 날 나와 너에게 필연적으로 찾아온다.

그러므로 죽음을 통하여 삶의 완성을 경험하려는 성화와 영화의 이상(理想)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사망을 사망시킨 그리스도와 일상에서 동행하면서 죽음의 춤이 주는 의미를 묵상하고, 죽음의 춤 행렬을 외면하지 말 일이다.

너와 나 우리 모두 죽음의 춤을 추었던 그날을 기억하며 삶의 리듬과 죽음의 리듬에 발을 맞추어 흔들어 보자. 그리하여 결국 죽음의 춤과 삶의 춤이 하나임을 이해하도록 의논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