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죽음 이후 천국이 없다면’
< 이은상 목사, 동락교회 >
“믿음의 생활은 천국에서만 아니라 이 땅에서도 복 가져와”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고 말한 파스칼은 최초로 계산기를 발명했습니다. 그는 도박에도 조예가 깊었던 사람인데 이 도박정신을 가지고 신앙을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가령 신앙을 가져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두 가지 경우의 수가 있는데 (1) 신앙을 가졌을 경우. 만일 천국과 지옥이 있다면 천국에 갈 것이고, 만일 천국과 지옥이 없다면 그만이다. (2) 신앙을 가지지 않았을 경우. 천국과 지옥이 없다면 그만이지만, 만일 진짜 천국과 지옥이 있다면 큰일 난다. 그러므로 신앙을 가지는 것이 안전하기 때문에 여기에 배팅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파스칼의 ‘내기 논증’(Pascal’s wager)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반론이 등장합니다. 그것은 신앙을 가졌을 경우 천국이 있으면 다행이지만 만일 천국이 없다면 밑져야 본전이 아니라 손실피해를 수용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손해가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신자는 천국을 위해 이 세상에서 포기한 것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억울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독자들에게 심각한 질문 하나 드리고자 합니다.
‘만일 죽음 이후 천국이 없다면 과연 여러분들은 신앙생활을 하겠는가?’하는 질문입니다. 이 질문의 요지인즉, 예수를 믿는 신앙생활이 지금 이 땅에서도 우리에게 유효한가를 묻는 것입니다. 믿음생활이 오직 천국만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이 땅에서도 복이 되는 것인지요?
이 질문의 해답은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저희 것임이요’(눅 6:20)라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 안에 있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 나라’는 장차 우리에게 임할 천국을 말하기도 하지만 또한 예수를 믿을 때 이미 이 땅에서 신자가 받은 하나님 나라를 말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이 땅에서 누리는 하나님 나라는 어떤 복인지 누가복음 11장 20절이 그 해답을 말해줍니다. 이 본문의 내용은 우리 마음을 누가 차지하느냐의 싸움을 설명한 대목에서 등장합니다. 말하자면 우리 마음의 통치자가 누구인가를 설명한 것입니다.
예수 믿기 이전에는 마귀가 우리 마음을 다스렸지만 예수 믿은 이후부터는 우리 마음을 성령께서 통치하십니다. 그 성령께서 우리를 다스리게 되면 우리에게 엄청난 복이 임하게 됩니다. 그 복이 바로 로마서 14장 17절의 내용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그리고 이어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에서 말하는 세상에서 결코 매매할 수 없는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의 복도 누리게 됩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진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 땅에서 누리는 신자의 복은 바로 하나님의 통치라는 개념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땅에서 누리는 복을 소유의 개념에서만 찾으려고 합니다. ‘얼마큼 가졌느냐, 얼마나 배웠느냐, 얼마나 배부르냐?’ 이렇게 생각한단 말입니다. 당연히 소유의 개념으로 보자면 신자 중에는 복 받지 못한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통치의 개념으로 볼 때 그리스도인들은 엄청난 복을 누리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독도는 대한민국 땅입니다. 가장 중요한 근거는 ‘옛날 지도책에 대한민국 소유로 나온다’가 아닙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근거로 실효적 지배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통치아래 있다는 말입니다. ‘거기에 경찰이 주둔하고 사람이 살고 있으며 기상청에서 매일 일기예보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소유자 확인보다 더 중요한 근거가 ‘통치’라는 개념입니다. 세계 각국의 영토분쟁에서 국제법상의 판례의 대부분은 ‘소유’보다 ‘통치’가 이겼다고 합니다.
신자가 가지는 고민 중 하나는 이 땅에서 예수 믿는다는 이유로 손해보고 산다는 연민입니다. 왜 신자의 현실이 이 모양 이 꼴인가 하면서 억울한 마음이 들 때면 나중에 천국에서 보자하며 마음속으로 식식거리곤 합니다.
다시 자신에게 질문해봅시다. 죽음이후 천국이 없다 해도 예수 믿는 일에 배팅하겠습니까? 이 땅에서는 유효 승, 천국에서는 한판 승!
그리스도인이 이 땅에서도 결코 손해보고 사는 인생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해 우리는 기꺼이 ‘아멘!’으로 화답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