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하고 능하신 하나님이 왜 악을 허용하실까요?
박형용 목사(합신 명예교수, 신약학)
악은 인간의 타락으로 존재하게 되었고 우리 가운데 존재하는 악은 잠정적인 것뿐이다
악(evil)의 존재는 증명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항상 악에 둘러싸여 살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 어디에 가도 악이 존재하지 않는 그런 장소는 찾아 볼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왜 악이 이처럼 인간을 괴롭히는 세상에서 살 수밖에 없게 되었는가?’라고 질문을 하게 된다. 우리의 질문의 방향은 창조주이신 하나님에게로 향한다. 성경은 세상이 선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창조물이라고 가르친다(창 1:1, 31). 선하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창조 속에 어떻게 악이 존재할 수 있게 되었는가? 우리는 철학자(philosopher)가 아닐지라도 이런 질문을 쉽게 할 수가 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잘못된 논리를 사용하여 선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은 악의 존재를 허용할 수 없는데 악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으니 결국 선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결론을 내리기도 한다. 이와 같은 논리는 그럴듯하게 보이지만 그 결론은 성급한 결론이요 잘못된 결론이다.
이와 같은 논리는 논리 자체에 문제를 안고 있다. 이런 논리는 “모든 혼자 사는 남자는 총각이다. 그러므로 이승만 대통령은 총각이 아니다.”라고 말도 안 되는 논리를 세우는 것과 같다. 이런 문장은 논리라고 할 수가 없다. 이런 문장이 논리가 되려면, “모든 혼자 사는 남자는 총각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혼자 사는 남자가 아니다. 그러므로 이승만 대통령은 총각이 아니다”라고 말해야 한다. 이런 논리를 악의 문제와 연계시켜 전개하면, “이 세상에 악이 존재한다. 그러므로 선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은 없다.”라고 말하는 것은 올바른 논리가 아니다. 올바른 논리는 “악은 존재한다. 그런데 선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은 악을 허용하실 수 없다. 그러므로 거기에는 무슨 타당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라고 말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와 같은 논리에도 허점이 있음을 감지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악의 문제와 관련하여 하나님의 행위를 논하고 있기 때문이다.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의 마음과 행동을 완전하게 터득할 수가 없다.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설명해 볼 수 있다. 만약 어떤 유명한 의학 전문 학자가 2019년과 2020년에 세계를 놀라게 하고, 한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코로나 19”(COVID 19) 전염병의 예방약과 치료약을 만들어 발표했다고 하자. 그런데 의학에 대해서는 전혀 문외한(門外漢)인 내가 그 약을 이해할 수 없다고 그 약이 좋지 않은 약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인간의 지식과 경험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마찬가지로 전능하신 하나님이 악을 허용하시는 이유에 대해 타락한 인간이 하나님의 행위를 모두 이해할 수는 없다.
물론 악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너무도 명백한 사실이다. 그러면 우리 앞에 존재하는 악을 어떻게 이해하고 악의 문제를 어떻게 접근하는 것이 바른 방법인가? 우리는 결국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의존해야한다. 계시의존사색(啓示依存思索)이라는 말이 여기에서도 적용된다. 성경은 하나님이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고 인간을 창조하시되 죄가 존재하지 않는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가르친다(창 1:1; 2:7~9).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신 후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창 1:31)라고 감정을 실어 표현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처음 창조한 에덴(Eden)동산에는 악이 존재하지 않았다. 오로지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 인간을 구분 지을 수 있는 선악과만 있었을 뿐이다. 우리는 창세기 1장과 2장에서 악의 존재를 찾을 수 없다.
그런데 첫 사람 아담(Adam)과 하와(Eve)가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는 죄를 범함으로 거짓과 위선과 고통과 불신이 세상에 들어오게 되었고, 죄의 값은 사망이라는 진리를 증명이라도 하는 것처럼(롬 6:23) 아담과 하와의 직계 손인 가인(Cain)이 그의 동생 아벨(Abel)을 죽이는 일까지 발생하게 되었다(창 4:8). 노아(Noah)의 홍수 사건은 하나님이 인간들의 죄악을 얼마나 싫어하셨는지를 설명하는 사건이다. 성경은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창 6:5) 홍수로 사람들을 심판하셨다고 가르친다(창 7:23). 아담과 하와의 범죄는 온 세상을 죄로 물들게 만들었다.
이 경우 우리는 “왜 하나님이 죄를 지을 수 있는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셨는가?”라는 질문을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인간의 행복을 위해서 그렇게 하셨다고 말 할 수 있다. 하나님은 인간이 피조물인 것을 인정하면서 생각하고, 느끼고, 선택할 수 있도록 창조하셔서 행복한 삶을 살게 하셨다. 하나님은 인간을 로봇(robot)으로 만드시지 않았다. 나는 점심식사로 된장찌개백반을 먹고 싶은데 자장면을 먹도록 명령받고 그렇게 해야만 하는 존재라면 행복하겠는가? 그런데 아담이 행복한 삶을 살도록 창조되었는데 피조물의 한계를 벗어나 범죄하고 만 것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선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이 악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갖고 계시지 않았을까?”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인간인 우리는 그 답을 알 수 없다는 것 이외에 다른 말을 할 수가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자마자 “여자의 후손”(창 3:15)을 약속하시고, 그 약속을 지키시기 위해 독생자를 메시아(Messiah)로 보내셔서 인간의 죄 문제를 해결하시고, 죄를 지을 수 없는 세상인 신천신지(New Heaven and New Earth)를 그의 백성을 위해 준비하신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악이 없고, 저주가 없고, 사망이 없는 신천신지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영원히 성삼위 하나님과 교제하며 살 수 있도록 준비하신 계획을 이해하면, 하나님이 왜 악을 아직도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도록 허용하신 뜻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계 21:1; 22:1~5).
하나님은 인간이 죄를 범하자 더 이상 죄를 범할 수 없는 부활체를 예비해 두시고, 죄를 결코 범할 수 없는 그런 신천신지를 유업으로 주시기 위해 구속역사를 진행하고 계신다. 선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에 이와 같은 원대한 구속 계획을 세우시고 죄 없는 신천신지를 그의 백성들에게 주시기 위해 잠정적으로 악을 허용하시는 것뿐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Paul)은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롬 8:18)라고 선언하고, 사도 요한(John)은 하나님이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계 22:13, 개역개정)라고 선언하신 것이다. 우리는 이와 같은 하나님의 원대한 구속계획을 전해 듣고 악의 문제를 해결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다. 악은 인간의 타락으로 우리 가운데 존재하게 되었고, 선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은 그의 주권적인 방법으로 완벽한 세상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 진행하고 계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가운데 존재하는 악은 잠정적인 것뿐이다.
<박형용 저, 목사님 이것이 궁금해요, 합신대학원출판부, 2020>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