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본주의적인 도덕 종교를 경계한다
날개 없이 마냥 추락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한국교회를 향해 걱정하고 아파하는 마음으로 소위 공평과 정의를 강조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곧 윤리가 상실된 것처럼 보이는 한국교회를 비판하며 교회 개혁과 사회 정의를 부르짖는 이들이 많아진 것이다.
물론 참된 기독교는 중생자의 윤리, 성화의 윤리, 거룩의 길을 걸어야 할 신자들의 윤리를 마땅히 강조해야 한다. 그리고 주님의 몸 된 교회를 더럽히는 요소들을 과감하게 척결하고 사회적 책임을 감당하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평과 정의를 강조한 나머지 성경을 부정하거나, 윤리적 삶을 강조한 나머지 십자가 은혜의 복음을 희석시키고 유일한 구원의 도리인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거나, 혹은 공평과 정의를 빙자하여 기독교 신앙의 핵심을 제거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런데도 작금 한국교회 현실을 이용하여 교회를 비판함으로써 자신들의 도덕적 의를 드러내거나 또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허무는 자들이 있다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이런 자들이 있다면 그것은 다른 복음, 거짓 복음을 주입시키는 것과 다름없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일반은총으로서 도덕과 윤리는 그것 또한 ‘하나님께서 남겨주신 잔여물‘이며 그들에게 주어진 선물이기에 그 자체로서 가치를 가진다. 하지만 일반은총만으로는 사람들로 하여금 구원에 이르게 하지는 못한다. 도덕과 윤리는 타락한 세상을 보존하려는 하나님의 의도에서 주어진 제한적 의미만 가지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세속의 도덕과 윤리의 가치를 궁극적인 것으로 간주거나 인본주의적 윤리만을 강조한다는 것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을 놓치게 만든다. 더군다나 세속적 도덕과 윤리를 교회에 강요하는 것은 언뜻 보면 그럴 듯하게 보이지만 그리스도의 교회를 허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것이 부패한 시대에 또 다른 극단으로 등장하는 인본주의적인 도덕 종교를 우리를 경계해야 할 이유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윤리를 강조할지라도 십자가 복음을 허물어서는 안 된다.
사람들이 제아무리 공평과 정의를 따라 산다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 없이는 생명도 구원도 없다“(스코틀랜드 신앙고백서 제16장)고 하는 개혁자들의 가르침을 주목해야 한다. 도덕과 윤리는 십자가를 통과한 도덕과 윤리여야 함을 명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