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편지
봄이 왔다
봄이 온다는 말만큼 영혼 깊이 밝아지는 말이 있을까? 극히 진부함에도 언제나 따뜻하고 고마운 말이다. 봄이 왔다. 밭고랑이 얼부푼 겨울의 마스크를 시원하게 벗고 숨구멍을 연다. 푸석푸석 흙냄새가 스멀거린다. 그런데 우리는 마스크를 쓴 채 이 봄을 맞는다. 답답하다. 뜻하지 않은 감염병의 난국이다. 전에 없던 일들을 겪으며 비감한 우리의 가슴에 겨울이 머물러 있다.
하지만 겨울이 없고서야 어찌 봄인가? 그래서 존 번연은 “어떤 나라에는 겨울이 없기 때문에 나무들이 자라기는 하나 열매는 없다.”고까지 했다. 쓴물의 마라를 지나면 오아시스 엘림이요, 눈물 골짜기 뒤엔 시온의 대로이다. 역경 속에서 주님은 우리를 더 성숙케 하시고 한국교회를 더 단단히 참 믿음 위에 세워 주시리라.
성경의 들판 도처에는 위로의 말씀들이 꽃처럼 피어 있다.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전7:14)고 하셨다. 찰스 스펄전은 온 세상의 통치자이신 하나님이 천칭을 갖고 계시는데 이쪽 저울에는 백성들이 받을 시련을, 저쪽 저울에는 받을 위로를 올려놓으신다고 했다. 시련의 저울이 비면 위로의 저울도 비고, 시련의 저울이 가득 차면 위로의 저울 역시 무겁다고 했다.
이것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the good)을 이루신다.”(롬8:29)는 말씀의 뜻이리라. 슬픔과 기쁨, 탄식과 찬송을 버무려 주님은 우리를 유익(good)하게 하신다. 고난과 평강을 단순히 물리적 혼합으로만 두시지 않는다. 그것들을 영적인 화학반응을 통해 우리가 헤아리지 못할 전혀 새로운 유익과 복락으로 바꿔 주신다.
그러므로 재난과 고통의 때에 지나치게 비관하거나 분노하지 않기로 하자. 아우성만 내지르면 정작 주님의 은혜의 봄꽃 터지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호라티우스 보나르는 “우리가 고통의 눈물을 흘릴 때 평안은 소나기 위의 무지개처럼 조용히 자리한다.”고 했다. 고난 후에 넘치는 위로가(고후 1:5), 불안 뒤에 평안이 소리 없이 찾아든다. 이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며 마땅한 교훈을 잘 받고 하나님 앞에서의 겸손한 좌표를 회복하면 진정한 봄은 와 있으리라. 그렇게 또 봄이다.
박부민 국장 nasaret2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