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쓰시는 자_김정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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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쓰시는 자
삼상 16:6-13

김정태 목사/ 송도중앙교회

먼저 이번 총회 교직자 수련회를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오며, 이 행사
를 위하여 수고하시는 교육부장님과 모든 관계자들의 노고를 치하합니다.
영국의 리차드 백스터 목사님은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
의 직을 천사에게 맡기시지 않고 사람들에게 맡기셨다.” 찬송가 550장 1절 
가사에는 “우리가 지금은 나그네 되어도 화려한 천국에 불원에 가리니, 이 
세상 있을 때 주 예수 위하여 우리가 힘써 일하세. 주 내게 부탁하신 일 천
사도 흠모하겠네”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교직자 여러분! 우리 모두는 이 시대에 하나님의 소명과 또 사명감을 가지
고 주님의 일꾼된 자들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귀하게 쓰임
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디모데후서 2:20-22절을 보십시오. 큰집(곧 교회)에는 금그릇, 은그릇, 목
기, 토기 등 여러 종류의 그릇들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는 귀히 쓰는 
그릇
이 있고 천하게 쓰는 그릇이 있다고 합니다. 문제는 고가품의 그릇이라도 용
량이 큰 그릇이라도 귀히 쓰임을 받지 못하면 가치가 없다는 것입니다.
영국 속담에 ‘왕의 밥그릇이라도 녹쓸고 깨어진다면 강아지 밥그릇이 된다’
는 말이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외적으로 훌륭해 보여도 버림받은 사람이 있
고, 초라하고 유약한 자 같은데도 귀하게 쓰임을 받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사무엘상 15장과 16장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과 
본문의 다윗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사울은 용모가 뛰어난 지도자상입니다. 그런데 결국 
버림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본문의 다윗은 들에서 양치는 목동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이스라엘 역사에 위대한 왕이 되었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였
으며 인류의 구속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이 다윗의 혈통을 따라 탄생하였습
니다. 이처럼 다윗은 위대한 왕이었고 하나님께로부터 귀하게 쓰임을 받았습
니다.
우리 교직자들에게 있어 최고의 희망은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을 받는 것입니
다. 이 시간은 다윗을 중심하여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쓰시는지 상고하므로 
은혜를 받도록 
하십시다.

1. 하나님은 그 중심에 믿음이 있는 자를 쓰십니다.
본문의 다윗은 유년시절부터 믿음이 있는 자였습니다. 비록 몸은 왜소하지
만 믿음을 가진 그 마음은 담대하여 양을 치면서 사자를 찢어 죽이는 일까지 
하였습니다. 또 다윗은 이스라엘이 블레셋의 침공을 받을 때 아무도 상대할 
수 없는 블레셋 장군 골리앗을 물멧돌로 격퇴시키기도 했습니다. 그때 다윗
이 골리앗과 싸우기 위하여 그 앞에 나갈 때 무엇이라고 말하였습니까? “너
는 칼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
라”고 하였습니다. 이 간단한 말에도 다윗의 중심에 큰 믿음이 있었음을 우
리는 읽을 수 있습니다.
또 그는 참으로 하나님을 사랑하였습니다. 역대상 15:29절과 사무엘하 
6:12-23절에 보면, 하나님의 법궤를 메고 다윗성으로 들어올 때에 그는 너
무 기뻐서 하나님의 법궤 앞에서 춤을 추는데 어찌나 흥겹게 추는지 사울의 
딸이자 자기 아내인 미갈은 다윗이 왕으로서 체통없이 모든 신복들 앞에서 몸
을 드러냈다고 비웃었습니다. 그때 다윗이 섭섭해하면서 “내가 하나님 앞에
서 진실로 기뻐 춤을 춘 것이라 그가 나
를 택하사 왕을 삼으셨으니 내가 여호
와 앞에 뛰어 놀리라. 내가 이보다 더 낮아져서 스스로 천하게 보일지라도 
기뻐하리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다윗의 아내, 미갈에게는 하나님을 향한 경
외심이 없었지만, 그러나 다윗에게는 하나님을 향한 열정과 순수한 신앙이 
있었습니다. 다윗은 비록 왕이었지만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법궤 앞에서
는 어린아이처럼 춤추며 기뻐하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다윗의 중심에서 
믿음과 하나님 사랑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또 시편에서 다윗은 “주의 궁정을 사모하여 마음과 육체가 쇠약함이여”라
고 하였습니다. 참으로 다윗의 중심에는 믿음이 있었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요한복음 21:15-18절에도 보십시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사명을 주실 때 3
번이나 물으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
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고 하시면서 주님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셨습니
다. 이와같이 하나님께서 귀하게 쓰시는 자는 믿음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
음이 있어야 합니다. 특히 믿음은 모든 것의 근본과 기초요 하나님의 일을 

함에 있어서 동력이 됩니다. 
뿐만 아니라 요한복음 6:28절에서 무리가 예수님께 묻기를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까?” 할 때, 29절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보
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여기에 강조점
은 ‘믿은 것’ 곧 믿음입니다. 믿음이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입니다. 바로 
말하면, 우리가 믿음이 있어야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
서 하나님이 쓰시는 자는 그 중심에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이 있어야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교직자 여러분! 우리 모두 큰 믿음, 정금같은 믿음, 온전한 믿음, 바른 믿
음을 가지십시다. 그리고 하나님께로부터 귀하게 쓰임을 받으십시다. 이러
기 위해서는 하나님 앞에 큰 믿음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2. 하나님은 약한 자와 겸손한 자를 들어 쓰십니다.
본문 8-11절의 내용을 보니, 사무엘은 이새의 여러 아들들 중 누가 하나님
에 의해 왕으로 선택되었는지를 몰랐습니다. 그리하여 이새의 아들들을 맏아
들 엘리압부터 아비나단, 삼마 등 차례로 자기 앞으로 지나게 하면서 하나님
의 뜻을 물었습니다. 
그러나 이새의 일곱 아들들 중에는 왕으로 선택된 자
가 끼어있지 않았습니다.
본문 10절에 “이새가 그 아들 일곱으로 다 사무엘 앞을 지나게 하니 사무엘
이 이새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들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
다. 그리고 사무엘은 또 이새에게 이르기를 본문 11절에 “네 아들들이 다 
여기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이새가 대답하기를 “아직 말째가 남았는
데 그가 양을 지키나이다”라고 대답합니다. 
여기 ‘말째’는 가장 어린 자 또 가장 작은 자라는 의미이며, 이는 다윗을 
가리킵니다. 다윗은 이새의 말째 아들로서 그 가문에 별로 두드러진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를 양치는 자리에서 택하신 것은 그야말
로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핍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드사 귀족들
과 함께 있게 하시며 영광의 위를 차지하게 하시는(2:8) 그의 주권에 의하
여 하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쓰시는 원리를 알았습니다. 고린도전서 
1:26-29절에서 바울은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
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
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치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 앞에서 쓰임받기 위해서는 나 자신이 말째 곧 가장 어린 자 혹
은 가장 작은 자임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지교회에서나 노회와 총회에서도 
또 기타 모임에서도 자신이 큰 자라 최고라는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내가 
없으면 안 된다는 생각도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 일에 내가 없어서 안 되는 
일은 없습니다.
또 하나님은 약한 자뿐만 아니라 겸손한 자를 쓰십니다. 사무엘상 15:17절에
는 하나님이 사무엘을 통하여 사울왕에게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왕이 스
스로 왕을 작게 여길 그때에 이스라엘 지파의 머리가 되지 아니하셨나이
까?” 이는 사울왕이 처음 사무엘 선지자를 만났을 때에는 자기 자신을 작
게 보며 겸손하였다는 것입니다(삼상9:12). 그러므로 그때에는 이
스라엘 왕
으로 택함을 입어 기름부음을 받을 만하였습니다. 이와같이 스스로 작게 여
겨 겸손할 때에 하나님이 세우시고 귀히 쓰십니다.
교직자 여러분! 우리 모두 스스로를 작게 보며 겸손하십시다. 왜냐하면 하나
님의 독생자요 우리의 구원자이신 예수님께서도 겸손하셨고 그의 겸손하심을 
우리로 하여금 배우라고 명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1:29절에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고 하셨습니다. 신앙생활
은 예수님께 배우는 것입니다. 목회는 예수님께 배워서 해야합니다. 곧 예수
님의 교훈과 삶을 배워야 합니다.
또 우리가 겸손해야 할 이유는 성경에 보면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고(벧전5:5),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하시며(시57:15), 겸손
한 자를 붙드시고(시147:6), 겸손한 자의 영을 소성케 하며(사57:15), 겸
손한 자의 소원을 들으신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래서 베드로전서 5:5절
에 사도 베드로는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고 하였습니다. ‘동이
라’는 말은 옷을 입을 때 사용하는 말인데 겸손은 성도들이 옷처럼 항상 입
고 다녀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직
자 여러분! 우리는 이 땅에서의 큰 자보다 천국에서 큰 자가 되도록 노
력하십시다. 우리의 소망은 천국이요 이 세상이 아닙니다. 그런데 지금 우
리 한국 교계를 볼 때 어떻습니까? 우리 교직자들이 지교회에서나 노회, 총
회에서 세상에서 큰 자가 되려고 광분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겸손을 가장 많
이 외치는 우리가 오히려 교만하지 않습니까? 정말 부끄럽습니다.

3. 하나님은 자기 일에 충직하고 성실한 자를 들어 쓰십니다.
오늘날에는 성실(誠實: 거짓이 없고 정성스러움)하게 일하는 사람이 참으로 
적습니다. 온통 평안함만을 추구하려 합니다.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적당
히 주어진 일을 하면 되지, 무엇 때문에 고생스럽게 일하느냐고 반문하는 사
람이 있습니다. 그야말로 적당주의로 일을 마무리하겠다는 식입니다. 그러
나 하나님은 대략 정당히 일하는 사람을 결코 좋아하지 않으십니다. 모든 일
에 열심을 품고 적극적으로 일하는 자를 기뻐하십니다.
본문에 사무엘이 이새의 아들들을 살피고 있을 때 막내 아들인 다윗은 들에
서 양을 치고 있었습니다. 본문 11절에 이새가 사무엘에게 하는 말입니다. 
“아직 말째가 남았는데 양을 
지키나이다.” 아버지께 제일 사랑받아야 할 
막내가 거친 들에서 성실하게 양을 치고 있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입니다. 
성실함의 참된 모습은 주어진 환경이 어떠하든지 불평없이 책임을 다하는 모
습입니다. 그것은 사람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 앞에 하는 일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골로새서 3:23절에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
하여 주께 하듯하고 사람에게 하듯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 중에는 하나님보다 사람을 의식하고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고 
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목회자의 설교나 성도의 신앙생활이나 교회의 제반
봉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바로 하고 충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자기 일에 충실한 자를 들어 쓰십니다.
세상에서 가장 귀한 사람은 믿음이 있고 책임감이 강한 사람입니다. 옛날부
터 큰 일꾼은 맡은 일에 충실하고 사명감과 책임감을 가지고 일을 하였습니
다. 우리는 결과와 업적으로 사람을 평가하려고 합니다. 이것은 사람을 외모
로 보는 잘못입니다. 하나님은 그 동기를 보십니다. 그리고 얼마나 최선을 
다했는가를 보십니
다. 
우리는 큰 일만 좋아하고 큰 일에만 관심을 가져서는 아니 됩니다. 작은 일
도 중하게 생각하고 작은 일부터 또 남들이 소홀히 여기는 일부터 잘하는 일
꾼이 되어야 합니다. 지교회에서 뿐만 아니라 노회와 총회에서도 사회와 직
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회에 부장과 임원과 회장과 기타 책임자가 
되어야만 잘하고 충성하겠다는 사고방식을 버려야 합니다. 평회원과 평직원
으로 일을 때부터 자기의 일을 성실하게 감당해야 합니다.
디모데전서 3:5절에 감독(장로)의 자격 중의 하나도 “사람이 자기집을 다스
릴 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아보리요”라고 했습니다. 이래
서 하나님께로부터 귀하게 쓰임을 받으려면 우리는 먼저 자기의 일에 충실하
여야 합니다. 충성할 때 귀히 쓰시고 더 큰 일을 맡기십니다. 또 하나님은 
“내 눈이 이 땅의 충성된 자를 살펴 나와 함께 거하리니”(시101:6)라고 말
씀하셨습니다.

4. 하나님은 성령에 감동된 사람을 들어 쓰십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감동된 사람을 쓰십니다. 우리가 아
무리 헌신하려고 해도 성령에 감동되지 않고는 주님의 일을 할 수가 없습

다. 다윗이 성령의 감동을 받을 이후에 그의 생애는 헌신적이고 기적적인 승
리가 뒤따르게 되었습니다.
본문 13절 이하에 “다윗이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이는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신정국가의 왕으로서 이스라엘의 정치적, 도덕
적, 영적 지도자가 될 수 있는 역량과 은사를 허락하셨음을 뜻합니다. 그 결
과 하나님의 영이 다윗에게 임하여 그를 주관하였고 다윗에게 임재한 하나님
의 영은 이후 계속해서 다윗을 권념하고 인도하셨으며 다윗의 언행을 통해 이
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다윗과 함께 계심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여호와의 신이 따나므로 하나님께로부터 버림받았고 완전히 악
한 자가 되었습니다. 이래서 우리 교직자는 언제나 성령의 감화와 감동을 중
요시하고 감동을 받도록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상고하며 기도하는 일에 힘써
야 합니다.
성경에 보십시오. 다윗이 일생동안 가장 큰 소원이 있었다면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고 싶은 것이었습니다(시23:6). 그에게는 호화로운 궁전이 있
고 안락한 침상이 있어도 여호와의 전에 있는 것만 같지 못하였습니다. 그래
서 그는 주의 장막을 사
랑하였고(시84:1,4), 주의 집에 거하는 자가 복이 
있나이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신앙입니까?
그가 이처럼 주의 전을 사모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또 기도하므
로 성령의 감동을 받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다윗이 왕으로 
있으면서 제6,7계명을 범하는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 다윗은 비록 일국의 왕
이었지만 나단 선지자의 충고를 듣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철저히 죄를 회개하
였습니다. 시편 51:10,11절에서 다윗은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11절에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
서.” 
이처럼 다윗은 왕으로 궁궐에서 쫓겨나는 것보다 하나님 앞에서 쫓겨나는 것
을 더 두려워했습니다. 다윗은 자기의 왕관을 거두는 것보다 성신을 거두는 
것을 더 염려하고 걱정하였습니다. 이는 그 자신이 성령의 감동이 없이는 아
무것도 할 수 없는 연약한 존재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다
윗을 세워서 쓰셨습니다.
어떻게 쓰셨습니까? 그가 이스라엘왕이 되어 나라를 
안정키시고 태평성대를 
이루고 살았다는 것입니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제가 볼 때에는 하나님께
서 다윗을 들어 쓰신 큰 경륜과 신비가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계시하는 왕이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1절에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성경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오랜 역사를 통하여 기다리던 메시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계시해주는 사람으로 세우시는 것이 최고의 쓰임을 받는 인물입니
다. 세계사적으로 보면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정치
적 최고 지도자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에서 모세는 예수 그리스도
를 계시하여 주는 제사장과 같은 일을 하였습니다. 그의 모든 행적은 장차 
구속자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계시하도록 쓰임받은 것이라 하겠습니다.
오늘 중심 인물인 다윗도 그러하였습니다. 다윗은 이스라엘 민족사에서 모세
를 이은 정치적 최고의 통치자였습니다. 모든 왕중에서 성군이요 그를 능가
할 인물이 없습니다. 다윗은 위대한 음악가요 시인이요 장군이며 탁월한 지
도자 곧 왕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통하여 큰 뜻을 이루고 있었으니, 예
수 
그리스도가 만왕의 왕으로 오실 것을 계시하는 예언적 인물로 쓰임받은 것
이었습니다.
우리 모두도 이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고 전파하는 일꾼들이 되십시
다. 이러기 위해서는 더욱 성령의 감동과 충만을 받을 것이요, 더 나아가 우
리 자신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바로 붙잡혀야 하겠습니다(행 18:5).
지금 우리 합신교단의 목회자들은 바른신학을 배웠다고 자부합니다. 바른신
학을 배운 자라면 더욱 하나님의 말씀에 확실히 붙잡히며 이 말씀속에 우리 
자신들이 완전히 들어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의 신앙의 생명이 말씀이
요 영혼의 양식이 말씀이요 삶(행위)의 규범이 말씀이요, 우리들의 목회의 
근거와 방법과 내용과 목적이 하나님의 말씀에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하나님의 말씀은 디모데후서 3:15-17절에서 가르친 대로 “우리로 하여
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
며 또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기 때문에 교훈과 책망과 바르
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며,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
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는 것”입니다.
거듭 말해서, 우
리 모두 성령의 감동과 충만을 받으며 또 하나님의 말씀에 
완전히 붙잡혀 항상 말씀안에서 살고 주님과 복음을 땅끝까지 증거하는 주님
의 귀한 일꾼들이 되도록 할 것입니다. 이렇게 할 때 이번 교직자 수련회 주
제(습3:17)와 같이 “너로 인하여 기뻐하시리라”곧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
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 될 것입니
다.
우리 모두 이 시대에, 하나님의 일꾼(종)으로 세움을 받았습니다. 세움을 받
는 것도 중요하지만 귀히 쓰임을 받는 것은 더욱 중요합니다. 아무쪼록 귀하
게 쓰임을 받는 합신교단의 모든 교직자들이 되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