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신경과 교회성장
< 원영대 목사, 부천평안교회 >
“눈높이 낮춰 교인들의 불편 해소해 가는 것이 교회성장의 기초”
황당하다! 사도신경과 교회성장이 무슨 상관이 있는가?
지난 해 모교회에서 담임목사 위임식이 있었다. 위임예배를 인도하는 사회자가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을 하는데 새로운 버전(새로 번역된 사도신경)으로 했다. 강단의 소리와 청중의 소리가 부딪혀 귀에 거슬리는 불협화음이 신앙고백을 하는 동안 이어졌다. 다음 순서는 찬송 순서였는데 스크린에 비췬 찬송가는 옛날 버전(통일찬송가)이 떠올라 한동안 인도자 혼자 독창하는 해프닝이 발생했다.
나는 20대 중반에 예수님을 영접했다. 예배 때마다 고백하는 사도신경의 내용 중에서 유난히 이해가 잘 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라라”에서 “저리”가 무엇인가 궁금해서 선배들에게 묻기도 했지만 속시원한 답을 얻지 못했다. “거룩한 공회”라는 용어도 분명하게 이해하지 못한 채 암송하곤 했었다.
종종 교우들에게 사도신경의 내용 중에서 “저리로서라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압니까?“라고 질문하면 십중팔구는 모르고 암송한다고 대답한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제위께 당장 교우들에게 질문해 볼 것을 권한다. 과연 몇이나 이 말에 대하여 이해하고 있는지? 주관적이지만 사도신경뿐 아니라 주기도문의 내용도 이전의 버전을 암송할 때면 선명하게 마음속에 그려지지 않는다.
지난 90회 총회 때 개정개역판과 새찬송가를 사용하기로 결정한 후, 새롭게 번역된 사도신경과 주기도문의 내용을 보니 약간 품위는 떨어지는 것 같았으나 그 의미가 확실하게 드러나 있었다. 그러나 공예배 중에 사용하는 것이 조심스러워서 번역위원으로 참여했던 모 교수에게 문의했더니 대환영이었다. 그래서 그 이듬해부터 우리 교회 모든 예배에 새로 번역된 버전을 사용해 오고 있다.
어떤 분이 말하길 “이 시대는 교회의 ‘존속’이 중요하다”고 했다. 어떻게 해서든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해에도 교회들이 폐쇄되고 약해져서 합병하는 경우를 보았다.
교회성장이 안 된다는 우려의 소리가 크게 들려온다. 그러나 교회성장이 안된다고 말하기 전에 먼저 성도들의 겪는 불편함에 귀를 기울였으면 좋겠다. 새로 전입해온 교우들은 이전 사용하던 성경 찬송을 다시 구입해야 하고, 통일되지 않은 사도신경 암송할 때마다 짜증스러운 불평의 소리를 낸다.
사도신경과 교회성장, 나는 관계가 있다고 본다. 한 마디 한 마디 그 뜻을 이해하면서 암송해 나가는 성도들의 마음속에 주의 은혜가 충만히 임하게 될 것을 믿는다.
작고 사소한 일이지만 눈높이를 낮춰서 교인들의 불편함을 해소해 나가는 것이 교회성장의 기초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