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인도하는 묵상칼럼(74)| 입을 다물고 눈과 귀를 열어야 할 때_정창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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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을 다물고 눈과 귀를 열어야 할 때  하박국 2장 1-4절 

< 정창균 목사, 합신 설교학 교수, 남포교회 협동목사 > 

 

 

“파숫군처럼 숨을 죽이고 긴장하여 잠잠히 기다려야 할 때 있어”

 

우리는 하나님이 역사를 다스리신다는 것을 의심 없이 믿고 있는데, 정작 삶의 현장에서는 하나님이 이 역사를 다스리고 계신다는 증거를 아무 곳에서도 찾을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악한 사람들이 세력을 움켜쥐고 마치 역사는 자기들의 손에 있는 것처럼 제멋대로 온갖 악을 행하며 큰소리치고 있는데도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아무런 조처도 취하지 않고 수수방관하고 계시는 것처럼 여겨질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약한 자가 당하고 악한 자가 잘 풀리는 역사 현장에는 하나님의 간섭으로 여겨질 만한 아무런 일도 없는 것입니다.

이런 현실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이해가 되지 않아 답답해지기 시작하고, 그러다가 그러시는 하나님이 서운해지고, 그 서운함이 깊어져서 하나님께 대한 분노가 되는 때가 있습니다.

아마도 이 문제로 가장 격렬하게 하나님께 따져 물은 사람이 있다면 바로 선지자 하바국일 것입니다(1장). 그는 불의와 부정과 간악과 패역과 겁탈과 강포가 판을 치는 현실 가운데서 살고 있었습니다. 악인이 의인을 에워싸서 하나님의 법은 유명무실한 것이 되어버리고, 공의는 오히려 왜곡을 당하는 것이 그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이었습니다. 그러나 현실이 그러한데도 하나님은 이러한 현상을 종식시키고 역사를 바로잡으려는 어떠한 시도도 하시지 않고 있습니다. 

선지자가 소리쳐 하나님께 이러한 현장을 고발하고, 이렇게 악한 역사 현장에 개입하셔서 조처를 취하시기를 상당기간 동안 부르짖고 외쳤으나 여전히 하나님은 묵묵부답이실 뿐입니다. 하박국은 하나님이야말로 역사 현실에 대하여 무관심하시며, 자신의 기도에 대하여 무응답하시는 분이라고 단정지을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왜곡된 현실에 대한 하나님의 무관심과 부르짖는 기도에 대한 무응답, 그것이 하박국이 직면한 문제였습니다. 

하나님의 이러한 처사에 대하여 선지자는 대단히 화가 나서 불만에 찬 항의를 쏟아냅니다.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리이까? 내가 강포를 인하여 외쳐도 주께서 구원치 아니하시나이다.” “어찌하여 나로 간악을 보게 하시며 패역을 목도하게 하시나이까.” 이어지는 선지자의 두 번째 항변은 더 격렬하고 더 직설적이어서 마치 하나님의 멱살을 잡고 흔들며 대드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그런데 무엇이 계기가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선지자는 갑자기 그의 태도를 바꾸고 있습니다. “내가 내 파수하는 곳에 서며 성루에 서리라. 그가 내게 무엇이라 말씀하실는지 기다리고 바라보며 나의 질문에 대하여 어떻게 대답하실는지 보리라!”(합 2:1). 

봇물 터진 듯 말을 쏟아내던 입을 다물고, 마치 초소에서 보초를 서는 파숫군처럼 긴장하여 눈을 열고 귀를 열어서 하나님이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지 듣고, 하나님이 어떻게 행하실 것인지를 보는 일에 집중하기로 하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입을 다물고, 대신 하나님을 향한 눈과 귀를 여는 ‘기다림’을 택하기로 결단한 것입니다. 

이렇게 시작한 선지자의 마지막 결과는, 세상이 어떻게 뒤집어지고 내 삶의 현실이 어떻게 곤두박질을 칠지라도 나는 여전히 즐거워할 이유가 있고, 나는 여전히 기뻐할 근거가 있다고 승리에 찬 노래를 불러대는 대변화였습니다(합 3:16-19). 

그리고 이러한 대 변화의 원동력은 역사는 여전히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고 그의 영광이 충만히 드러나는 곳을 향하여 진행하고 있으며(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하리라!), 역사를 다스리시는 주인은 여전히 하나님이시다(오직 여호와는 그 성전에 계시니 온 땅은 그 앞에서 잠잠할지어다!)는 말로 요약되는 역사관과 그러므로 의인은 세상과 현실이 어떻게 뒤집어져도 여전히 믿음의 삶을 살아간다는 확신이었습니다. 선지자가 입을 다물고, 귀를 열고 눈을 열어 기다려서 받은 응답이 그것이었습니다. 

봇물터진 듯 나의 말을 쏟아내던 입을 다물고, 이제는 귀를 열어 내 하나님이 내게 뭐라 말씀하실른지 기다리는 것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내가 처한 현장만 바라보느라 하나님에 대하여 감았던 눈을 열어서 내 하나님이 내게 무엇을 보여주실른지 마치 성루에 올라 보초를 서는 파숫군처럼 숨을 죽이고 긴장하여 잠잠히 기다려야 할 때가 있습니다. 

이 나라의 정치 현실이 이러하고, 교계의 흐름이 이러한데 하나님은 뭐하시는 것이냐고 하박국처럼 따져 물으며 항의하고 싶은 것이 많은 지금이 바로 그 때인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