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창균 칼럼> 선생님 생각
사는 것이 쓸쓸하고 서러울 때 불쑥 찾아갈 고향이 있다는 것이 큰 축복
이 듯이, 살다가 언제라도 큰 감사와 가슴뭉클함으로 떠올릴 수 있는 스승이
있다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제게는 그러한 선생님들 가운데 한분으로 박윤
선 목사님이 계십니다. 사실 나 혼자만이 아니라, 80년대 중반 이전에 신학공
부를 한 목회자들 가운데 상당수가 그 어른을 귀한 스승으로 모시고 있습니
다. 그리고 우리는 그 어른과 어떤 연줄이 닿아 있다는 것을 어디서나 자랑스
럽게 이야기 합니다. 특이한 것은, 그 어른을 스승으로 여기는 많은 목회자들
이 그분과의 사이에 한두 가지 이상의 개인적인 일화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
니다. 제게도 기도와 관련하여 잊지 못할 사연이 있습니다.
84년 12월 어느날 불광동 수양관에서 있었던 합동신학원 졸업생 사은회에
서 있었던 일입니다. “기도 많이 하시오.”“알겠습니다.”“기도 많이 해야
돼!”“예” “기도 많이 하라구.”“알겠습니다.” 돌아가신 박윤선 목사
님
께서 이제 신학교를 졸업하고 나갈 제 손을 붙잡고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사
은회의 마지막 순서로 부부를 동반한 우리 졸업생들이 줄을 서서 은사님들 앞
을 차례로 지나가며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는 자리였습니다. 간단한 목례와
악수, 그리고 한마디 말씀을 들으며 80여명이 늘어선 줄이 진행하고 있었습니
다. 저도 행렬 속에 서서 다른 교수님들 앞을 거쳐 마침내 우리들이 가장 존
경하던 80대 고령의 박윤선 목사님 앞에 섰는데, 제 손을 붙잡고 “기도 많
이 하시요.” 하셨습니다. 의례적으로, “알겠습니다.”하고 지나가려는데
박목사님은 제 손을 놓아주지 않고 세번을 계속 같은 말씀을 하시는 것이었습
니다. “기도 많이 해야 돼.” “기도 많이 하라구!” 저 때문에 술술 진행되던
줄이 갑자기 정체가 되었고, 제 뒤에 있던 동료들은 잠시 기다려야 했습니다.
저는 자리에 돌아와서 얼굴이 달아올라 견디기가 힘들었습니다. “이 어른
이 이제 슬하를 떠나 교회를 향해 제자들을 내보내면서 왜 내게 이렇게 하셨
을까? 평소에 나를 깊이 사랑하셔서인가? 아니면 기도하지 않는 얄미운 신학
생, 도무지 믿을 수 없는 목
회자 후보생으로 기억에 남아서인가?” 아무래도
후자 같았습니다. 그 자리에서 저는 손을 불끈 쥐며 결심을 했습니다. “내
가 평생에 기도하리라!”고. “나는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범치 않겠노라!”
고. 그야말로 기도에 진력하는 목사가 되겠다고.
그 이후, 기도하는 목회자가 되어보려고 가끔씩 다짐도 해보고 애도 써보
고, 때로는 밤을 새우며, 때로는 밥을 굶으며, 때로는 엎드려서, 때로는 소리
도 지르며 몸부림을 쳐보며 지내오지만, 연약한 인간이고 죄성에 물든 인간이
어서 틈만 있으면 딴짓에 몰두하고 기도하는 일을 뒷전에 두고 있는 나의 모
습을 발견하곤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엎치락 뒤치락, 넘어졌다 일어섰다를
반복하면서도, “기도해야 한다”는 마음만은 언제나 불같습니다. 나 뿐만
이 아니라, 우리 교회가, 내가 사랑하는 우리 교인들 모두가 기도하는 사람들
이기를 바라는 간절한 소원이 제게는 있습니다. 기도에 대하여 말하는 사람
은 많으나 기도를 하는 사람은 적으며, 이런저런 아이디어와 불평을 내놓는
신자들은 많으나 기도의 눈물을 내놓는 자들은 적은 이 때, 박윤선 목사님이
내 손을 잡고 놓지 않
으시며 내게 하시던 그 말씀을, 나는 이제 내가 사랑하
는 우리 교우들의 손을 잡고 하고 싶습니다.
이 달 말일이 그 어른 떠나신지 12주년이 되는 날인데, 문득 큰 감사와 가
슴 뭉클함으로 제게 그렇게 기도를 가르치신 그 선생님 생각이 납니다. 이
달 말일에는 합신 뒷 동산에 있는 그 어른 묘소에라도 한번 가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