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할 의사가 있는가?_이윤호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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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델베르크<71>

포기할 의사가 있는가?

이윤호_‘선교와비평’ 발행인

“하나님의 통치 앞에서 우리 자아부터 포기해야”

123문: 둘째 간구는 무엇입니까?
답: “나라이 임하옵소서”로, 이러한 간구입니다. “주님의 말씀과 성신으
로 우리를 통치하사 우리가 점점 더 주님께 순종하게 하옵소서. 주님의 교회
를 보존하시고 흥왕케 하옵시며, 마귀의 일들과 주님께 대항하여 스스로를 
높이는 모든 세력들, 그리고 주님의 거룩한 말씀에 반대하는 모든 악한 의논
들을 멸하여 주옵소서. 주님의 나라가 온전히 이루어져 주께서 만유의 주가 
되실 때까지 그리하옵소서.” 

교회설립 초기에 주님의 일꾼들에 의해서 선포된 메시지는 하나님 나라였습
니다. 이러한 사실은 사도행전에서 잘 드러납니다. 하나님 나라는 성령, 교
회 등과 더불어 사도행전의 가장 중요한 주제들 중 하나입니다. 

사도행전의 선포 내용은 ‘하나님 나라’

빌립이 사마리아성 사람들에게 전했던 메시지는 다
름 아닌 하나님 나라였습
니다(행 8:12). 바울이 에베소와 로마에서 전파했던 메시지 역시 하나님 나
라였습니다(행 19:8; 20:25; 28:23). 바울이 더베, 루스드라, 이고니온, 그
리고 안디옥을 다시 찾아 제자들을 굳게 할 때도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가르침
을 빠뜨리지 않았습니다(행 14:22). 
사실상 사도행전은 하나님 나라의 선포로 시작해서 하나님 나라의 선포로 끝
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는 장면으로 시작하여, 사도 바울이 로마에서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
는 내용으로 마무리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가운데, 하나님 나라의 메시지를 받아들인 사람들이 교회를 이루어가
는 역동적인 모습이 사도행전에서 묘사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책에는 
그 반대의 상황도 적지 않게 나타납니다. 즉, 하나님 나라의 메시지를 받아
들이지 않는 자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사실 이들에 대한 이야기는 사도행
전에서 매우 비중 있게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사도행전의 결말 부분도 하나님 나라를 거부하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로 이
루어져 있습니다. 바울은 그들에 대해서 옛날 이사야 선지자
가 이스라엘 백
성을 향해 던졌던 경고를 동일하게 적용하고 있습니다. 즉, 이들은 모두 하
나님의 말씀 앞에서 귀를 열지 못하고 눈을 뜨지 못하여 심판을 면치 못할 
사람들이었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 나라를 말할 때 통치의 개념이 두드러진다면, 하나님 나라
를 선포하는 것은 새로운 통치체제가 도래했음을 알리는 것이라 할 수 있습
니다. 사실 이 통치체제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라 이미 구약시대 내내 하
나님이 보여주셨던 것이지만 말씀에 민감하지 않은 자들에게는 낯선 것이었
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가 유대인들에게 전해졌을 때 그 나라의 모습
은 그들이 임의대로 꿈꾸고 있던 회복된 다윗왕국의 모습과는 큰 차이가 있
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새로운 통치체제에 순응한다는 것은 자신을 둘러싼 기존의 사고체
계에 대한 포기를 전제로 할 것입니다. 하지만 다수의 유대인들은 그들의 조
상 때부터 형성되어 전해오던 그릇된 이상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새로운 메시아왕국을 기다리고 있던 그들이었지만 자신들의 눈에 전혀 새로
운 모습으로 비쳐진 하나님 나라의 메시지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입니다. 

기에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교회의 성장을 적극적으로 방해함으로써 
주님을 대항하는 일에 참여하게 된 것입니다.
옛날 이스라엘 백성의 삶은 우리의 거울이 됩니다. 우리는 흔히 그들의 잘못
을 그대로 답습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임하기를 간구하는 우리의 
모습도 자칫 그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이러한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통치를 소망하고 그것에 온전히 복종하고자 합니다. 바로 말씀과 
성령의 이끌림을 받아 참 교회의 모습, 참 성도의 모습을 이루어 나가는 것
입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기도하는 우리가 실상은 하나님 나라의 통치를 거부하는 경
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만일 우리의 이상향(理想鄕)과 우리 자신의 사고체
계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오늘 우리는 너나할 것 없이 세상의 가치관, 특히 인본주의적 사고에 젖어 
있습니다. 이러한 생각들이 하나 둘 더해져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나라의 표
상을 임의대로 형성하도록 했습니다. 그 나라의 통치로 말미암을 교회의 흥
왕에 대해서도 이미 머릿속에 구체적인 형태를 그려놓아 버렸습니다. 자의적
으로 말입니다. 
그러므로 말씀과 어
울리지 않는 우리의 가치관을 면밀히 찾아내어 적극적으
로 단념하지 않는 한 하나님 나라가 임하기를 기대한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
것의 통치에 참여할 수 없을 것입니다. 
어쩌면 그의 나라를 바라는 우리가 오히려 그것을 대적하는 세력의 편에 서 
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바로 이스라엘의 흥왕을 고대하면서도, 하나님 나
라의 선포에는 냉담하여 교회의 성장에 걸림돌이 되었던 사람들처럼 말입니
다.

하나님 나라에 걸림돌 되지 않아야

하나님 나라의 통치를 간구하는 우리는 과연 자아(自我)를 포기할 적극적인 
의사가 있는지 살펴야 할 것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우리의 기도는 중언
부언하는 것 이상 아무것도 아닐지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