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그 속에서 무엇이 되어가고 있는가?
< 변세권 목사 · 온유한교회 >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어떻게 이루어 가셨는지 확인해 보아야”
가을비를 맞으며 주변 숲속을 걸었다. 비에 젖은 낙엽들은 서둘러 떠날 채비를 하고 겨울은 벌써 저만치서 가까이 오고 싶어 안달하고 있다. 그동안 우리의 목회가운데 하나님은 무엇을 하셨는가를 더 깊이 생각해보게 된다.
보통 우리가 구원을 받으면 태어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된 시점을 먼저 떠올린다. 그것은 기도하고 회개했더니 구원이 온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인 2천 년 전에 예수 그리스도가 나를 위하여 죽으신 사건에 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은 태어나서 예수를 믿게 되어 그 믿음을 고백하고 결단하여 신자가 된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를 믿겠다고 고백할 때 예수 그리스도가 등장하는 것이 아니다. 그 예수는 2천 년 전에 우리를 위하여 죽으신 분이시다.
그런데 우리는 태어나서 믿게 되니까 이 시간상의 역순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니까 결과부터 정해놓고 태어나서 믿으라는 것이다. 우리가 나중에 태어나지만 우리의 운명과 결과가 과거에 완료되었기 때문에 도망갈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예수그리스도의 구원은 반복되지 않는다. 마치 ‘너 나가서 잘 살아야 한다’는 것과 같은 것이다. 박영선 목사는 ‘재창조가 창조 안에 있는 창조라는 무한대를 쓰신다. 창조의 능력과 부활이 시간 속에서도 나타나서 시간이 역순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했다.
결정된 우리의 운명과 승리와 영광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우리의 삶의 정황에 펼치라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오늘 구원받은 신자의 삶을 ‘주님 외에는 아무 것도 없어요’라고 단지 외우고 고함만 지르는 식의 관념화된 깨우침으로만 기독교를 보지 말고 시간적 개념으로 보아서 함께 울고 함께하는, 그래서 그 한 사람이 겪는 인생의 순례가 시간과 현실 속에서 자라간다는 시간적 완성과 개념으로 살아야 한다.
성경은 사전식이 아니다. 성경은 이야기이며 세계관이다. 따라서 설득력을 잃으면 안 된다.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무슨 법만 보이고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이상한 현상에 빠져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구원은 하나님께서 예수 이전의 인류와 예수 이후의 인류로 양분하고 있다. 그래서 하나님이 누구신가? 하나님이 무엇을 하셨는가? 전과 후에 대한 인식이 있어야 한다. 거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시간의 의미를 알고 현실이라는 과정을 알아야 한다. 그 속에서도 하나님은 우리가 제일 잘 나갈 때나 가장 좋을 때 쓰시지 않고 때로는 형편없이 부족하고 연약할 때 쓰시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때로 이 원리를 모르고 혼동하기 때문에 의심하고 갈등하고 체념하고 자폭하기도 한다. 사람은 누구나 다 잘못하면서 크는 법이다. 그리고 잘못할 수 있다. 그것은 법으로 규제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하다 못해 자식을 기르며 살아보면 다 알게 된다. 그리고 이 세상에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것도 알게 된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바꾸지 못한다.
하나님의 은혜만이 우리를 자신의 소유로 되찾으시고 처음부터 끝까지 능히 구속을 이루어 가신다. 그래서 사람은 알고도 틀리고, 몰라서도 틀리고, 철없어서 틀리고, 경박스러워서 틀린다. 지난 시절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실수를 용납하셨기에 살 수 있었다.
다윗도 시글락에서 어려움에 처했을 때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우는 것이 전부였다. 그것은 곧 ‘내가 이렇게 못났구나!’하는 절망과 ‘하나님이 어떻게 이러실 수가 있나?’ 하는 원망뿐이다. 우리는 여기서 고민해야 한다.
그것은 신자의 구속받은 은혜가 일상생활과는 무관하다고 보는 관점이다. 이런 사고로는 사람이 훌륭해지지 못하고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잘 참아 내지를 못한다. 바로 그 때 그 환경에서 어떻게 할래? 가 중요한데 말이다.
억울할 때 어떡할래? 오해받아서 어떡할래? 답은 모든 것을 인내하며 감당하는 수밖에 없다. 목회하면서 이제 조금 배우는 것은 모세의 말대로 인생은 짧고 죄만 짓더라는 것과, 인간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훌륭하지 않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기도해서 겸손해지는 것이 아니라 아내 하나, 자식 하나 감당하지 못하면서 겸손해지는 것이다.
사람은 고생하고 실패를 해봐야 겸손해지고 자기가 얼마나 못났는가를 알아야 겸손해진다.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자리에까지 가야 담대해지는 것이다. 우리는 그 속에서 내가 무엇이 되느냐가 중요하다.
사람은 은혜를 받지 못하면 다른 사람을 째려보게 되어 있다. ‘까불지마! 나 그런 사람아니야!’로 자존심을 세우기보다 ‘정말 잘 났구나!’하며 상대방을 인정해주고 ‘나나 잘하자!’ 하며 각자 자기의 역할만 잘하면 된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최고 잘하는 것이다.
올 한 해의 시간도 마무리 되어가고 있다. 하나님이 무엇을 하셨는지, 어떻게 우리를 인도하셨는지, 어떻게 그 약속하신 일을 이루어 가셨는지를 확인해 보아야 한다. 그러면서도 또 헤매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하나님이 이미 우리에게 주신 승리, 영광, 자랑, 명예를 믿음으로 붙들어 안아 구속받은 신자의 생애 속에 더 누리며 펼쳐나가는 현재의 시간과 과정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