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두 얼굴들…
< 김영자 사모, 채석포교회 >
“하나님이 계시므로 진실은 언제나 밝혀져”
며칠 전에 도배지를 구입하기 위해 서울에 갈일이 있었습니다. 시장이나 마트에서처럼 내가 필요한 물건을 곧 바로 구입할 줄 알았는데 장판지와 벽지의 카탈로그를 보여주고 다음날에야 구입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순간 난감했습니다.
내가 살고 있는 곳보다 다양한 제품과 좀 더 저렴한 가격으로 구입할 줄 알고 방산시장까지 갔는데 집으로 그냥 돌아가자니 순간 기름 값이 아깝고 억울해서 남편과 나는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난처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집이 아니면 잠을 설치는 나 때문에 집이 아닌 곳에서 잠을 자는 것을 특별한 일이라 생각하는 남편에게 오늘은 서울 아들집에서 자고 가자고 했더니 남편은 생뚱 맞는 소리를 한다고 하면서 어디로 전화를 했습니다. 남편의 친구 목사님이었습니다.
남편은 다짜고짜로 친구에게 오늘 밤에 밥도 사주고 잠 좀 재워 달라고 했습니다. 왜? 라고 묻지도 않고 흔쾌히 대답하는 것을 듣고서 잠시 머릿속에 생각했던 아들의 얼굴을 지우면서 아들보다 친구를 찾는 남편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여러 가지 문제로 머리가 아프고 힘든 것을 나에게 말하지 않았지만 많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순간 엿 볼 수 있었고 이번만큼은 집이 아닌 곳에서 친구와 함께 있는 것만으로 나름 위로를 받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친구 목사님과 사모님의 건강상태가 많이 좋지 않았지만 편안하게 맞이해주는 따뜻한 마음을 보면서 그 동안 답답함으로 막혀있던 가슴을 펼 수 있었습니다.
긴 겨울이 지나고 자고나면 새로운 꽃으로 매일매일 우리에게 선물을 주는 봄이 다가 오지만 내 마음은
아직 얼음덩어리가 풀리지 않고 더욱 추위를 느끼고 있는 한 겨울이기 때문입니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라는 속담이 있듯이 이제 사람들을 믿을 수 없고 대인기피증으로 사람 만나기가 싫어졌습니다. 가장 신뢰하는 사람들에게 신뢰가 깨어지는 배신감을 느끼며 신의를 져 버리는 일들로 또 마음의 상처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남편의 친구 집에서 편안한 하루를 보내고 돌아오는 자동차에서 “바보처럼 살았군요”라는 노랫말을 들어 보니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며칠 전 신문에서 감동적인 글을 읽었습니다. 대법관이었던 김능환 씨의 일상생활을 적은 글이었습니다. “대법관 김능환”이 아니라 “편의점 사장 남편 김능환”이라는 제목의 내용이었습니다. 편의점을 경영하는 아내의 일터에서 법복이 아닌 잠바차림으로 박스를 옮기는 모습이 아주 행복하고 편안하게 보였습니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재직 중 경력을 밑천삼아 대우받으며 큰돈을 벌면서 100세 시대의 이모작을 시작하려는 풍조가 난무한 세태에 신선한 충격이자 모두가 본받아야할 모델인 것 같았습니다.
가끔 이른 아침에 동네 이장의 목소리가 확성기를 타고 조용한 새벽을 깨울 때가 있습니다. 의료검사차가 왔으니 복지회관 앞으로 나오라든가, 어촌계에서 어민들이 조개를 캐는 날을 일러 주는 동네 소식들을 들을 때 어느 날인가 문득 어릴 때 일들이 그리움이 되어 생각날 때가 있습니다.
어릴 때 어머니의 치마꼬리 잡고 따라 다녔던 교회의 일입니다. 내가 태어나기 오래 전부터 그곳에 교회가 있었습니다. 내 기억으로 처음에는 가마니를 깐 곳에 앉아 예배를 드렸고, 내가 초등학교 들어 갈 쯤에서는 마루바닥이었습니다. 어릴 적 가장 부러웠던 것은 내 친구 언니였습니다.
그 언니의 검정치마에 흰 저고리와 더불어 친구 아버지인 최 집사님이 치는 교회 종소리며, 교회 확성기에서 울러 퍼지는 “멀리 멀리 갔더니…..”라는 찬송가 소리였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친구 언니가 확성기에 대고 찬송가를 부르면서 교회를 알렸던 것 같습니다. 지금과 같이 길거리마다 난무한 현수막은 없었지만 오랜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부터 나에게 이상한 버릇이 생겼습니다. 내게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머니는 어떻게 하셨을까? 그리고 성경의 무슨 말씀으로 위로를 받으셨을까?”라고 생각하는 일입니다. 어떤 법조인은 손에 찔린 가시는 시간이 지나면 그 가시가 빠지면서 상처가 아물지만 마음에 박혀진 가시는 평생에 빠지지 않는 다는 것을 명심하며 재판에 임했다고 합니다.
이제 신도이면서 농부 아내 김영자로 살면서 자유를 만끽하며 자연과 살고 싶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힌 후 가장 먼저 “아버지여, 저희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라고 말씀 하셨던 것처럼 이번 부활절에는 나로 인하여 가슴에 가시가 박힌 자에게는 용서를 빌고 싶고, 야누스처럼 우리들 앞에서는 신의를 보였으나 혼란과 아픔을 준 분들의 잘못을 사하여 달라고 기도하면서 하나님께서 놀랍게 교통 정리를 하시면서 진실은 항상 밝혀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해와 진실이 밝혀지면서 오랜만에 숙면을 취하고 햇살이 밝게 비치는 창가에 앉아 어머니가 항상 자주 부르셨던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를 불러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