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의 이야기
< 김영숙 사모, 일산새하늘교회 >
“나는 성도들 앞에서는 사랑을 외치면서도 자기 아들이 나쁜 영향을 받을 것만 두려워하는 이기적이고 이중적인 엄마였습니다.”
고등학생 제임스를 처음 만난 것은 남편이 미국 덴버에서 목회할 때였습니다.
제임스의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에 가정 폭력자였고 어머니는 집을 뛰쳐나가서 자녀들을 돌보지 않아 제임스는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었습니다. 결국 제임스 남매들은 뿔뿔이 흩어져서 친척집을 전전하며 살고 있었는데 제임스의 친척들도 한인 사회에 소문날 정도로 온전한 가정이 없는 어려운 환경이었지요.
어느 날 제임스가 우리 교회 문을 열고 들어왔습니다. 제임스의 표정은 매우 어둡고 반항이 가득 차 있어 불안해 보였습니다. 설교 시간에도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고 어느 때는 쿨쿨 잠을 자기도 했지요. 제임스는 꾸준히 학생부 예배를 참석했지만 말투는 욕설에 가까웠고 말할 때도 발을 흔들거리며 불량스런 행동을 해서 온 성도들이 염려를 했습니다.
더군다나 학교를 결석하는 일이 잦아 퇴학 직전에 놓여있어 교회 부모님들은 그 아이의 사정이 안타까우면서도 자신들의 자녀가 나쁜 영향을 받을 것이 두려워 그 아이와 친해지는 것을 꺼려하기까지 했었지요.
부끄럽게도 나 역시 그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가장 심하게 제임스를 거부했지요.
그런데 제임스는 내 아들과 같은 학년이어서 교회에서 늘 붙어 다니는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우리 집에 자주 오더니 가장 친한 친구가 되어 버렸습니다. 친척집에 얹혀 살고 있던 그는 우리 집에서 지내는 날이 차츰 많아지기 시작했고 내 아들과 제임스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 지 밤을 새는 날도 많았습니다.
나는 제임스의 행동을 더 주시하게 되었고 미워하는 마음까지 생기더니 기도도 제대로 할 수 없었지요. 사모의 체면이 있어 걱정하는 모습을 숨기고 최대한 웃는 표정으로 제임스를 대했지만 내 마음이 드러났는지 제임스는 내 앞에서는 우물쭈물 하곤 했습니다.
하루는 아들이 내게 퉁명스럽게 말했습니다.
“엄마, 제임스한테 좀 더 잘해주면 안돼요?”
“내가 지금 잘하고 있지 않니? 맛있는 것도 해주고……..”
“엄마, 그런 것말고 다정하게 말도 건네주고 등도 쓰다듬어 주고 그러면 좋겠어요. 제임스는 그런 사랑이 필요해요. 불쌍한 얘예요.”
“나는 지금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더 이상은 기대하지 마.”
나는 쌀쌀하게 말하면서 돌아섰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제임스의 불량스런 눈빛이 조금 달라져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긴 했지만 불안한 마음은 여전했습니다. 나는 성도들 앞에서는 사랑을 외치면서도 자기 아들이 나쁜 영향을 받을 것만 두려워하는 이기적이고 이중적인 엄마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교회 중고등부가 그 지역에서 열리는 학생 부흥 운동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부흥운동에 참석하고 온 학생부 아이들이 달라지기 시작했지요. 예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온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경건생활을 한다며 세상 CD를 모두 버리고 복음송만 듣더니 교회에 모여 QT를 하고 기도를 했습니다. 교회 점심시간에는 어른들 식사를 식탁에 다 나르고 난 후 가장 늦게 점심을 먹으며 기쁨의 미소를 지었지요.
그런데 그 중에 가장 많은 변화를 보인 사람은 바로 제임스였습니다. 제임스의 얼굴에 웃음이 깃들기 시작했지요. 걸음걸이가 달라지고 말투가 부드러워지고 예배드리는 태도가 달라지더니 간절히 기도하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나의 염려와 불안을 단번에 깨뜨리신 분은 바로 주님이셨습니다. 이기적인 사랑과 편견으로 뭉쳐진 믿음 없는 나를 불쌍히 여기신 하나님의 강권적인 역사였습니다. 하나님은 제임스만 변화시킨 것이 아니라 학생부 모든 영혼들을 함께 변화시키셨습니다. 우리 교회는 학생들의 성령 폭발로 인해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더 열심히 기도하고 더 봉사하고 더 뜨겁게 주님을 사랑하는 모습이 어른들을 부끄럽게 만들었지요. 주님은 우리 두 자녀들까지 덤으로 은혜를 주셔서 우리 부부가 돌보지 못했던 자녀들의 신앙을 한 단계 더 올려놓으셨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얼마 전에 미국에서 의대 공부를 하다가 잠시 방학을 이용해 한국에 다녀간 아들이 와서 전해 주는 이야기는 너무나 놀라웠습니다.
“엄마, 제임스 소식 궁금하시지요. 제임스가 대학 다닐 때 어려움이 좀 많았지만 무사히 졸업을 하고 지금은 좋은 직장에 잘 다니고 있어요. 제임스가 얼마나 믿음이 좋은지 나도 놀랄 때가 많아요. 옛날의 제임스가 아니거든요. 자신뿐만 아니라 부모님, 누나와 동생 모두 교회로 인도해서 지금 신앙생활 잘 하고 주일학교에서 봉사하고 있어요. 이제는 친척들도 한 명씩 돌아오고 있는 중이에요. 그리고 올 봄에 믿음이 좋은 가정의 아가씨와 결혼할 거예요.”
지난 날 나의 편협하고 옹졸한 생각들이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지만 더듬거리며 대답했습니다.
“정말이니? 참 잘 되었네. 하나님이 하셨구나.”
그러나 나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한 가지 사실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제임스의 이야기는 바로 나의 이야기였다는 사실입니다.
뒤돌아보니 어리석고 실수 투성이었던 내가 지금까지 사모의 일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였다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 하나님은 그토록 오랜 세월을 기다리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