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야! 열심 특심이 아니어도, 너니까 사랑한다
< 추둘란 집사, 홍동밀알교회 >
““하나님보다 내가 더 많은 자리를 차지한 것 알게 돼”
연초에 사모님이 조용히 나를 불렀습니다. 그동안 몇 년째 혼자 도맡아온 성
전꽃꽂이와 주일학교 간식을 다른 사람과 나눠서 하는 것이 좋겠다고, 그것
이 목사님의 뜻이라고 전해 주었습니다.
그동안 혼자 도맡아 해 온 교회 봉사
목사님의 뜻이라니 바로 그 자리에서 그러겠노라고 확답을 드렸습니다. 그런
데 돌아서 나오는 내 마음은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지
금 생각해보면 그럴 만도 했습니다. ‘죽도록 충성하라’는 말을 ‘죽도록
일을 하라’로 알아들은 나였기에 잘 하고 있던 교회 봉사를 다른 사람과 나
눠서 하라는 얘기는 충성을 줄이라는 말로밖에 들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목사님에게 서운함을 느끼기 시작하니 기도도 막혀 버리고 예배에 집중도 되
지 않았습니다. 다른
때 같았으면 이 시험이 지나가기를 무기력하게 기다렸
을 텐데, 이번에는 참 이상하게도 성경에서 답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잠들기 전 한두 시간 가졌던 휴식을 물리치고 성경을 넘기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날은 “내 마음이 이러하니 주님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라고 여쭙기
도 하고 “주님, 오늘은 아무 말씀이라도 좋으니 제게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면 주님이 먼저 얘기해 주세요.” 라고 기도하며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
니다. 그리고 이번 일에 대한 확실한 답변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내게 빌립보서 말씀을 주셨습니다. “어떤 일을 하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고, 서로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
십시오.”
다툼과 허영이라는 단어가 좀 와 닿지 않아서 다르게 번역된 성경과 비교하
여 읽어보니 ‘경쟁심과 자기자랑’으로 이해가 되어졌습니다. 그제야 저는
무릎을 쳤습니다. 성경의 그 많은 말씀 가운데 하나님은 어떻게 이 말씀을
주실 생각을 하셨는지, 사람의 마음과 그 의도를 정확히 꿰뚫어보시는 하나
님의 능력에 입을 다물 수가 없었습니다. 성전꽃꽂이를 8년 남
짓 하고 주일
학교 간식 요리를 3년 남짓 하면서 나는 내가 경쟁심과 자기자랑으로 봉사했
다고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달리 자원하는 분이 없다는 핑계도 내가 나를 속인 것이었습니다. 언젠가 주
일 설교 중에 ‘완벽주의는 죄’라는 말씀을 주셨지만 그것 또한 다른 집사
님에게 해당하는 말로 들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옳았습니다. 열심과 특
심으로 봉사하여 하나님을 위해 남보다 내가 더 뛰어나게 인정받고 칭찬받아
야 한다는 잘못된 충성심이 분명히 내 속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경쟁자가 없
었지만 오히려 누군가 경쟁하며 쫓아올까봐 완벽에 가까운 수준으로 봉사하
지 못해 안달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봉사를 나누어 하면 그 칭찬이 다른 사람에게 돌아갈 것인데 그것을
견딜 수 없었던 것입니다. 오랜 시간 드린 봉사와 헌신에 하나님 사랑과 나
를 향한 사랑이 교묘히 섞여 있었다는 것을 알고 저는 깊은 회개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러자 그동안 막혀있던 하나님과의 관계가 시원스레 열리는 것이 느껴졌습
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내가 드린 봉사 때문에 나를 인정해 주시는 것이
아니라, 자녀이니까 있는 그대
로 사랑해주신다는 것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
다.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로 회복되어질 때마다 하나님은 저를 “아가야”하
고 불러주시는 것을 느끼는데, 나는 그동안 그 호칭이 어떤 의미였는지 몰랐
다가 이번에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둘째로 태어났습니다. 언니는 예쁘고 붙임성 있는 성격이어서 집안어른
들이 좋아하였습니다. 남동생은 집안에 하나뿐인 장손이니 특별한 사랑을 받
는 것은 당연했습니다. 하지만 예쁘지도 않고 붙임성도 없는 나는 그 사이
에 끼여서 제대로 사랑받지 못한다고 생각했고, 아예 그런 것을 바라서도
안 된다고 생각하며 자랐습니다. 그나마 공부를 잘하고 상을 많이 받아오니
그것으로 인정을 받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가족관계를 통해 배운 사랑이 그러
하였기 때문에 나는 하나님도 그렇게 나를 사랑해주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래서 열심에 특심을 내어 하나님 아버지 앞에 인정받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언젠가 병중에 계셨던 외할머니께서 우리집에 잠깐 와 계시다가, 설
거지하는 저를 보고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아가야, 뭘 그리 애쓰느냐. 이
리 와서 쉬어라.”
그 한마디가 내게 얼마나 큰 위
로가 되었는지 그때는 몰랐으나 지금 생각해
보면 내 영혼 전체가 위로받는 듯한 따뜻한 말이었습니다. “뭔가 기특한 일
을 하지 않아도 너는 내 손녀딸이니까 너를 사랑한다.”는 말로 들렸던 것입
니다. 나는 그 일을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하나님은 그때에 내가 그 말을 얼
마나 좋아했는지 아시고서 그날의 외할머니와 똑같이 저를 불러주신 것입니
다. 하나님의 아가페 사랑을 감히 이해조차 할 수 없는 나이기에 그나마 내
수준에서 이해할 수 있는 그때 그 순간을 떠올려 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도 목사님께도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내 마음에
하나님보다 내가 더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을 알게 해 주신 것이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집사님이 해 놓은 꽃꽂이와 간식 요리에 진심에
서 우러난 칭찬을 할 수 있는 넓은 마음을 주신 것도 감사했습니다.
2월입니다. 해마다 새해계획을 세우는 1월에 마음이 설레고 기대감이 부풀었
는데 올해는 1월보다 2월에 더 마음이 설렙니다. 지난달보다 이번 달에 말씀
이 더 달게 느껴지고 하나님의 사랑이 섬세하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교회 봉사 서로
나눠 지는 계기 만들어
이번 달보다 남은 열 달 동안 부어주실 그 사랑이 얼마나 뜨거울지 벌써부
터 기대가 되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