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 그리고 20년 후
김영자 사모_채석포교회
“흰머리에 숨겨진 인내의 세월 소중하게 여겨져”
따가운 햇살로 인하여 짙은 녹음이 그리워지는 계절입니다. 더운 열기가 가
득한 하늘에 에드벌룬이 높이 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마냥 부럽기만 한 동창회 잔치
면 소재지에 있는 한 초등학교에서 근흥초등학교 총동문회를 갖는다는 현수
막과 함께 체육대회를 알리는 것이었습니다. 어릴적부터 같은 동네에 살면
서 학교에 다녔던 형과 아우들의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지난 날들을 그리
워하며 같은 추억들로 인하여 즐거운 시간들을 보내기 위함입니다.
초등학교 때의 학교 운동장을 뒤덮던 만국기의 휘날림은 없었지만 추억의 사
람들을 만난다는 기쁨에 그날만큼은 현재의 자신들의 모습들을 잊고 과거로
의 여행을 즐기는 것을 보았습니다. 나는 도회지에서 학교를 졸업했고 전학
을 자주 다녀서 변변한 동창이 기억속에 남아 잊지 않아 동창회 모임들이
참 부럽기까지 할 때도
있었습니다.
도회지에 사는 사람들은 잦은 이사로 인하여 동창이나 동문들을 제대로 갖
지 못하지만 부모님들이 생존해 있는 농촌의 사람들은 이웃들이 친척이고
형, 아우이며 그들만이 소유하고 있는 보이지 않는 끈끈한 정이 있는 것 같
았습니다.
잠시 여유를 갖고 젊은날을 회상해 보는 날들이 많아졌다는 것은 그만큼 나
이를 먹어감이라 생각이 들 때쯤 남편이 신학교를 졸업한 지도 20년이 되어
20주년 기념행사를 갖기로 하였습니다.
마침 부족한 가운데 남편은 9회 동문회장을 맡고 있어 여러 가지로 신경을
많이 쓰는 것같이 보였으나 총무 목사님과 여러 동문 목사님들의 도움으로
용인 한화콘도에서 2박 3일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곳에는 동문들과 부인들, 그리고 교수님들이 참석했습니다. 17쌍의 목사
님 부부와 17명의 목사님을 합하여 51명의 동기 목사님들, 그리고 교수님 4
분이 참석하여 20년 전의 모습을 기억하며 밤이 가는 줄도 모르고 대화에 열
심이었습니다.
일반 사회인들과는 달리 목표가 같은 인생길을 살아가는 목사님들이기에 동
병상련을 느낄 수도 있었습니다. 일반학교와는 달리 신학대학은 특수 학교
라 같은 세대의 사람들만이 아니고 여러 계층의 학생들의 단체인지라 벌써
은퇴를 하신 목사님도 계시고 목회를 떠나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시는 분
들도 간혹 있었습니다.
남편은 모임이 있기 전부터 감격하는 것 같았습니다. 38살에 처음 신학교를
입학하던 그 무렵과 졸업과 목회의 어려웠던 일들과 기쁜 때를 생각하면서
그 모든 것을 감사하며 울먹이기까지 했습니다. 지금은 동문 중에 세상을 떠
난 사람 하나 없지만 앞으로 20년후의 모임에서는 보이지 않을 얼굴도 있을
것이라면서 기뻐했습니다.
학교 다닐 때 젊은 교수님을 모시고 족구를 즐겼던 소장파 목사님들은 그 교
수님과 같이 족구를 하면서 학창 시절을 생각하며 즐거워하고, 노장파 목사
님들은 은퇴 후의 계획들과 성장한 자녀들의 이야기들로 이야기꽃을 피우면
서 즐거워하였습니다.
남편들로 인하여 같은 길을 걷고 있는 사모님들의 대화도 재미가 있었습니
다. 교회의 규모를 떠나 자연인으로서의 여자인 것을 서로 인식하며 남편들
의 건강을 걱정하기도 하고 이제 갱년기에 들기 시작한다며 연상의 사모들
의 경험담을 들으면서 웃기도 했습니다. 머리에 듬성듬
성 난 흰 머리칼과 굵
게 파여진 주름살과 뱃살에서도 인격적인 모습들이 보여지는 것은 세상의
그 어떤 꽃남들보다 멋지게 보였습니다.
네 분의 교수님들도 그때 그 모습들이었습니다. 학교 다닐 때 어렵게 느껴지
며 말 한번 붙여 보지 못한 사람들도 다같이 교수님들과 여러 가지 이야기들
을 나누는 모습들도 너무나 흐뭇하게 보였습니다. 세월의 흐름은 어찌 할
수 없는 것인지 건강 문제가 가장 으뜸으로 많은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곳에서는 ‘너와 나’가 아닌 ‘우리’였습니다. 그리고 가족이었습니다.
늦게 참석하면서 행여 과일이 부족할까봐 과일을 사 오는 목사님들도 계시
고 시간 시간마다 먹을 것을 챙겨주며 서로가 서로를 생각하는 모습들이 아
름다웠습니다. 두고 온 교회와 가족들도 잠시 잊고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의 여행을 하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 정도였습니다.
20세기의 최고의 군인이었던 맥아더 장군은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
라져 갈 뿐이다”라는 말을 하고 84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고 합니다. 동
문 목사님들의 얼굴 모습에서는 예수님의 형상을 닮아 자비롭고 인자한 모습
들이 삶의 흔적으
로 남아 있는 것도 참 좋았고, 그러한 목사님들과 동반자
로 두 손 잡고 같은 길을 걷는 사모님들의 성숙된 모습들도 또한 아름다웠습
니다.
나이가 들면 학식이나 부와 명예도 다 내려놓고 평준화가 된다고 합니다. 인
생은 정답이 없고 한치의 앞을 내다볼 수 없다고 하지만 우리들은 소망이 있
음을 감사하면서 흰머리에 숨겨진 인내의 세월을 소중하게 여기며, 촛불이
꺼지기 전에 가장 밝은 빛을 발하는 것처럼 섬기는 교회를 향하여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20년 뒤에도 다시 볼 수 있기를
집에 돌아오니 몸은 피곤해도 여러 얼굴들의 모습들을 떠올리며 태초에 하나
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라는 말씀을 생각
해 보았습니다.
10년 후, 그리고 20년 후에도 보았던 그 얼굴 모두 다시 보기를 간절히 소망
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