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사회에서 신자의 삶이 가지는 의미
< 김영규 교수 >
·개혁주의성경연구소 소장
·뉴욕과학아카데미(NYAS)
·미국과학 진흥협회(AAAS)
·미국화학학회(ACS) 초청회원
“하나님의 형상 빛내며 버티는 것이 인류의 과학 기술보다 위대해”
신문이나 잡지 및 방송 등의 대중 매체들은 읽을거리나 이야기 거리 혹은 볼거리를 찾아 이용자들에게 즐거움을 주고자 노력한다. 그러나 그 즐거움 뒤에도 가능한 한 인간의 복합적인 모든 요구들을 만족시켜 주어야 하는 조건들이 뒤따르고 있다.
그런 요구들 중에서 창의성, 경제성, 예술성, 시대성, 대중성 등 다양한 조건들이 있다. 그러나 교회의 가치나 정체성이 그런 조건들에 맞추게 되면 장기적 안목에서 교회는 타락하고 거짓교회가 그런 창의성, 경제성, 예술성, 시대성 그리고 대중성을 등에 업고 교회의 중심 자리에 서게 된다.
그렇게 되면 참된 그리스도인들이 그런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는 기간들이 길면 길수록 참된 교회 자체가 저절로 없어지게 된다. 그때 국가나 사회도 역시 피해를 보게 된다. 좋은 사회는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은 좋은 사람들이 많아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기독교가 필요로 하지 않을 만큼 사회 안에는 좋은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의 경우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로 하지 않게 되고 영원히 죄인으로서의 인간의 근본을 깨닫는 기회를 얻지 못하여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시는 진정한 복을 이 세상에서 누리지 못하고 죽음의 즐거움에 빠지는 것으로 만족할 것이다.
그런 자들에게 죽음은 아마 아무 것도 아닐 수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에게 죽음은 하나님의 형벌이기 때문에, 인간이 반드시 극복해야 할 도약 점이라기보다는 이제 하나님의 형벌로부터 자유로운 참된 복으로 갑자기 옮겨지는 비상하는 점에 불과하다.
그리스도인들의 삶이 그런 비상의 점에 의해서 바르게 평가되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약자가 되거나 영혼에 있어서 이미 가난한 자가 되어 하나님이 주신 은사들을 충분히 사용하지 못하거나 포기하면서 살아가기 쉽다.
물론 교회에 오는 자들은 오래된 죄인들일 수 있고 극한 죄인들일 수 있다. 기도하기 위해서 모인 자들도 기본적으로 우울한 자들이다. 그러나 그렇게 돌아온 죄인들이 교회 안에서 큰 일을 행하고 사회 안에도 조금씩 변화를 주고 있다. 이 점이 바로 국가나 공공 매체들이 이룰 수 없는 부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를 깨끗한 자들이 모인 자들이라고 생각해서는 아니 된다. 다만 최소한 회개할 수 있고 잘못이나 오류로부터 돌이킬 수 있는 자들이 모인 모임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그런 일로 인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들이 가득한 곳이다. 왜냐하면 위대한 일은 하나님 앞에서 진정한 죄인이 되는 일로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북부 카르타고를 역사적으로 위대하게 만든 것은 그 도시에서 터툴리아누스가 그러한 자로서 하나님 앞에 돌아오고 키프리아누스가 그렇게 돌아와서 그들이 진리의 증인들로서 순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회개하여 돌아온 아우구스투스가 카르타고 도시를 빛나게 하였다. 이처럼 회개한다는 것은 위대한 일이다.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로 인하여 하나님께 돌아오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 일은 간단하여도 국가나 사회가 행할 수 없는 일이다.
인간에게 위대한 일은 모두가 하나님께 돌아오는 일이다. 고도로 발달한 과학과 기술도 하나님께 다시 돌아가는 일을 하지 않기 때문에 자신을 패망으로 가게 하는 교만의 씨가 되고 있다. 에너지 법칙은 비가역성(시간)을 근본으로 하는 운동의 법칙이지만, 그런 법칙으로부터 모든 것을 설명하려고 한다면, 그런 설명이 하나님 없이 무로부터 시작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교만의 극치라고 말할 수 있다.
아담의 죄나 사탄의 죄의 근본은 모두 이런 교만의 극치에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때문에 하나님을 필요로 하지 않는 자,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는 자, 하나님께 경배하고 감사하지 않는 자 모두가 같은 죄인들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과학과 기술의 진보는 인류에게 일순간 교만이 어떤 힘으로 있을 때 사고로서 일어난 순교보다 위대한 일일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진보들이 하나님께 돌아가는 길로서 자연과 인간 사회의 발전과 더불어 하나님께 진정 돌아 와서 거기에서 발견되는 은택들을 하나님께 돌리고 감사할 때 순교보다 위대한 일이 될 것이다.
시대에 대해서 저항하는 것이란 진정한 인류에게 그런 정신 하에 어떤 시대에도 이루지 못한 위대한 진보를 이루는 일일 것이다. 우주의 역사는 첫 창조로부터 엔트로피가 커가는 소비의 역사라고 한다면, 그런 소비의 역사는 인간에게 은택의 시대들이고 기회의 시대들이다.
인간의 삶은 그렇게 짧지 않다. 인생 하나 하나가 하나님께서 우주의 궁극적 일들이 꽃피는 공장과 같다. 그 안에서 하나님의 형상이 빛나는 우주 역사에 있어서 더 이상 기회가 없는 위대한 일이 이루어지는 공장이다. 하나님의 형상을 빛내며 버티는 것이 인류의 과학 기술의 모든 진보들을 모은 것보다 더 위대한 일일 수 있다.
인간의 행복은 진보가 아니라 어디에서 피는 하나님의 선물에 불과하다. 위대한 일은 그런 인간의 행복과는 다른 것이다. 시대를 저항하여 인류의 역사에 있어서 누구도 하지 않는 일을 묵묵히 극복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향하여 진보를 이루는 일이 위대한 일이다.
모든 것들을 버리고 그런 것들만 남기 위해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미래 인간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 적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