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하나님 되심이 바로 행복의 모든 것
김영규 목사_뉴욕학술원, 남포교회 협동목사
그리스도인들의 대인 혹은 대외 관계는 일상의 경배와 감사의 삶과 분리될
수 없을 것이다. 즉 이웃을 배려하고 이해하며 판단하는 일에 있어서 그리스
도인들의 각 개인 안에 성장해 있는 하나님에 관한 지식과 분리할 수 없다
는 말이다.
일반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은 생의 마지막에 가까울수록 하나님에 관한 지식
이 더 성장함에 따라서 스스로 죄인됨이 커져간다고 말할 수 있다. 앉아 있
고 서 있으며 누워 있어도 그런 일이 얼마나 큰 죄인으로 남아 있는지를 점
점 더 깊게 깨달아 가는 것이다. 죽기 직전까지 죽음 자체도 하나님의 은총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깨달아 가는 것이다. 왜냐하면 일상적인 죽음은 영혼까
지 인간의 존재 자체를 완전히 소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죽음도 하나님의 은총
우주와 그 안에 있는 모든 존재들의 존재 자체뿐만 아니라 사탄의 존재 자체
도 하나님의 은총
없이 불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다. 인간에게 미치는 모든
재난들도 값없이 그 동안 얼마나 많은 은총들을 받았는지를 확증하는 은혜
로 남아 있을 뿐이다. 존재의 완전 소멸 전까지의 그런 확증하는 은혜로서
재난이나 죽음은 결코 인간이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는 조건이 될 수 없
다.
극미시세계와 극거시세계에 따라 일상에서 주시는 모든 은총의 영역에는 하
나님의 창조적 영역이 있다. 즉 그 주어지는 방식이 첫 창조의 방식과 다르
게 첫 창조된 것을 보존하고 통치하시는 방식으로 무에서 명령적으로 은총
이 부어지고 있는 방식이 있다.
종종 사람이 재난과 죽음에서 피해달라고 하나님께 구하는 것은 지금의 그
런 섭리의 방식보다 더 큰 은총을 달라고 조르는 것이다. 지금 있는 그대로
가 얼마나 큰 은혜인지를 모르는 경우이다. 다만 그렇게 구했더니 들어 주셨
다는 것은 인간 존재 자체가 하나님께 구하지 않으면 한 순간도 존재할 수
없다는 깨우침을 위한 것일 것이다.
사람이 거시적 의식을 넘어 단백질이 변하는 펨토초의 단위로 하나님을 기억
하고 감사한 사실이 인정되더라도, 존재 자체가 확증하는 은혜로 남아 있는
n이상 그것의 소멸에 이르기까지는 감사할 수 없을 것이다. 거기에 바로 죽음
까지도 하나님 앞에 형벌 이전에 부끄러운 죄로서 남아 있게 하는 확증하는
은혜의 증거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그리스도의 대변과 성령의 간구 없이는 우리 자체로 홀로 있
거나 우리의 것으로 일을 하면 할수록 더욱 더 부끄러운 일이 더 많아질 것
은 당연하다. 하나님의 백성에게 하나님께서 자신을 지극히 큰 상급으로 주
실 때는 물론 자신의 존재하신 것을 소멸하셔서 주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나 속성들에는 아무런 가감이 없이도 그 자신을 충분히 주실 수 있는 방
식으로 주실 것이다. 그리고 그 방식도 우리가 하나님의 은총의 대상이지만
자신과 동일한 형체가 될 만큼 최대로 은총을 부어지는 방식이다.
그렇다면 세상 사람들은 그들에게 내린 창조적 은총의 내용만큼이나 모르는
죄인들이지만,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에게 특별히 구별하여 주시는 은총들을
모르는 만큼 더 큰 죄인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진정한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을 입은 자들은 실제로 그런 배은망득의 죄인들이 결단코 될 수 없을 만
큼 불가항력적인 은총을 받는다.
그
런 불가항력적인 은총을 받는 자가 체감하는 재난과 불행 뒤에 그런 재난
과 불행들을 더 좋은 은혜를 향한 수단들로 사용하시는 그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으로 살아 계시는 한, 그들에게 하나님 자신보다 더 큰 복이 되는 것
은 없다. 경우에 따라서 요셉의 생애처럼 그런 재난과 불행이 더 큰 재난과
불행을 피해 가는 출구요 자신과 그런 불행을 야기하였던 자들에게도 복이
되게 하는 첩경일 수 있다.
참된 그리스도인들에게 궁극적으로 그들에게 피해를 주는 재난과 불행은 없
다. 죽음까지도 그들의 행복을 위한다. 그렇게 행복이 되는 것은 그 죽음을
주신 자이신 그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으로 남아 계시기 때문이다. 그들의
하나님이 되신 상태로 남아 있는 것이 모든 행복의 모든 것이다.
고난도 행복 위한 것
지금 그에게 그의 하나님으로 남아 계시는 기적이 한 가닥이라도 보인다면,
그는 그런 하나님으로 영원히 우리의 하나님으로 남아 계실 것으로 믿어야
할 것이다. 다만 인간인자들의 조건들에 따라 인간을 향하여 극대화한 행복
한 삶과 행복한 나라를 이룬다면.
그 만큼의 모든 은혜들을 더욱 더 확증하는 은혜
로서의 그런 재난과 불행이
란 그런 삶과 나라에게 체감의 정도를 크게 할 뿐이다. 행복한 상태와 행복
한 환경이란 하나님의 은총의 질에 있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게 하는 문명이
나 그 조건들은 이미 그 자체로 불행과 재난일 수밖에 없다. 하나님 앞에 진
정한 두려움은 이것을 아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