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의 힘인가, 믿음의 힘인가?
< 정요석 목사, 세움교회 >
“긍적적 결과 몇개로 믿음 대치할 수 없어”
최근 교회 안에 불어대고 있는 적극적 사고방식의 한 아류인 ‘긍정의 힘’과 관련된 프로그램들이 유행을 타고 있다고 합니다. 과연 이러한 아류들이 믿음을 더욱 돈독히 할 수 있을까요?
가만히 보면 믿음을 자기의 소원이나 목표나 야망을 달성하는 수단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신자들에게 많이 있습니다. 믿음을 너무 긍정적 사고나 낙관주의나 그룹 다이내믹스(group dynamics)로 생각합니다.
믿음에는 분명 심리학이 말하는 긍정적 사고와 낙관주의와 그룹 다이내믹스의 측면이 있지만 목표와 내용에 있어서 전혀 다른 차원입니다. 기독교의 믿음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귀한 진리와 복들을 바라보게 하고 알아차리게 하여 누리게 하는 인식 수단입니다. 이런 믿음은 우리 자신에게서 나오지 않고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입니다.
베트남 전쟁 당시에 포로로 잡힌 미군 최고위 장군 스톡데일의 일화를 따라 나온 스톡데일 패러독스(stockdale paradox)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는 하노이 힐턴이란 전쟁포로 수용소에 1965년부터 1973년까지 8년간 갇혀 있었습니다. 그는 20여 차례가 넘는 고문과 갖은 수모를 당했고, 전쟁포로의 권리는 당연히 받지 못했습니다.
이런 어려움과 공포와 불안 속에서 그는 8년간을 당당하게 견뎌내고 무사히 풀려났을 뿐만 아니라, 수용소 내의 통솔책임을 떠맡아 많은 포로들이 수용소 생활을 견디어내도록 여러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스톡데일과 달리 포로수용소에서 절망 속에 죽어간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대체로 어떤 사람들이 수용소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죽어갔을까요? 낙관적인 사람일까요? 비관적인 사람일까요?
스톡데일 장군은 비관적인 사람들은 수용소 생활을 당연히 잘 견디지 못했지만, 낙관적인 사람들도 잘 견디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크리스마스 때까지는 나갈 수 있을 거야!”라고 낙관적으로 생각하는 포로들은 그 때까지는 활기차게 수용소 생활을 하며, 동료들에게도 “우리는 살아나갈 수 있어!”라며 격려했습니다.
그러다 석방이 되지 않으면 다시 “부활절까지는 나갈 수 있을 거야!”라며 힘을 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거듭되는 좌절에 결국은 상심해서 죽어갔습니다. 이삼년간 낙관적으로 생활해도 석방이 되지 않으면 어느 순간에 급격히 상심하며 침체되어 작은 일에도 쉽게 지치고, 그러다 병이 들면 회복되지 못하고 죽음에까지 이르렀습니다.
반면에 결국에는 성공할 것이라는 확신을 갖되 눈앞에 닥친 냉혹한 현실을 직시하는 포로들은 살아남았습니다. “크리스마스 때까지는 나갈 수 없을 것이다. 이것에 대비하자!”라고 생각한 이들은 살아남았습니다.
“나는 반드시 살아서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크리스마스 때까지는 석방될 수 없을 것이다”라고 하면서 정확한 현실 인식 속에서 긍정적으로 생각한 이들이 살아남은 것입니다.
아마 포로 기간이 이삼년에 국한하였다면 낙천주의자들 중 상당수가 살아남았을 것입니다. 이들은 살아남아서 긍정의 힘과 낙관주의의 능력에 대하여 찬사를 보냈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인생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단순히 긍정적 자세와 낙관주의의 사고와 행동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것들이 인생에는 너무나 많습니다. 아무리 기도를 해도 해결되지 않는 일들은 너무나 많습니다. 이런 면에서도 믿음을 쉽게 이것들과 같게 여기면 안 됩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여 임한 좋은 결과들 몇 개를 가지고 긍정을 믿음으로 대치하면 안 됩니다. 기독교를 심리와 가기 결단과 수양의 수준으로 떨어뜨리면 안 됩니다.
믿음은 철저히 하나님의 차원에서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고, 하나님이 신자에게 주시고자 하는 진정한 선물이 무엇인지 알게 하는 믿음을 천박하게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