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는 십계명
< 고경태 목사, 주님의교회 >
“계명이 지워진 돌판 붙잡고 하나님의 교회라고 외칠 수 없어”
모세는 40일 동안 시내산에 있으면서 십계명의 두 돌판을 여호와께 받았다. 그리고 백성들의 진영에 왔을 때에 벌어지는 작태에 두 돌판을 깨뜨렸다.
그 후 동족상잔의 비극이 일어났으며, 모세의 중보로 다시 두 돌판을 다듬어서 십계명을 받았다. 이 돌판은 이스라엘이 폐망하면서 잃어버렸지만 살아있는 여호와의 계명으로 우리의 구주이신 예수께서 십자가의 구속으로 성취하셨다.
중세 천년의 기독교는 심하게 부패하여 사회로부터 인정받지 못했다. 그 정점에 등장한 독일의 루터, 프랑스인 칼빈으로 부패한 로마교회와 루터파, 칼빈파(개혁파와 장로파)로 분리되었다. 이렇게 형성된 개신교회의 복음이 미국을 통해서 우리나라에 전도되었다. 구교는 신교가 들어오기 100년 전에 중국을 통해서 유입되었다.
신교와 구교의 십계명 내용에는 차이가 있지만, 모두 십계명을 여호와의 율법으로 여긴다. 신자가 갖는 절대 유일신, 거룩하신 이름, 주일신앙의 믿음과 일상의 행동의 규정이 십계명에 있다.
그런데 작금에 이슈가 된 목사의 박사논문 표절 사건은 표절의 종지부를 찍는 것처럼 크게 느껴진다. 이제 더 이상 표절은 이상한 행동이 아니라, 상식적인 행위가 된 것인가?
어떤 이는 ‘노래주점(?)에 갔다, 가지 않았다’로 한 해 동안 소동하고 있다. 어떤 이는 칠계를 범함에 징계를 받았는데, 다시 세력을 이루어 칠계의 징계에 종지부를 찍었다. 이러한 큰 사건은 죄의식을 약화시켜 모든 죄행을 상식으로 여길 수 있게함에 큰 위험이 있다.
이슈와 가십이 될수록 죄는 교묘히 전파되며 확산된다. 여타 이단 교파에서 있어서 그러려니 했지만 정통교회, 로마 교회의 부패를 개혁한 신교에서 일어나는 계명의 불순종 그리고 표리부동(表裏不同)은 교회 안에서 스스로 십계명을 깨뜨리는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백성에게 선동된 아론이 자기를 위한 신(神)인 송아지를 만들었는데, 지금에 와서는 사역자들이 백성을 선동하여 안에 있는 십계명을 깨뜨리려 하고 있다.
종교다원주의로 1계명, 2계명, 3계명이 위협되는 가운데, 부산에서 개최되는 WCC총회에서는 종교다원주의를 표방하며 돌진하고 있다. 주일에 다양한 행사를 개최하는 교회의 행동에서 4계명인 주일준수의 순종도 희석되고 있다. 포스트모던의 세파를 이기지 못해서 권위가 상실됨은 5계명의 침몰이다.
그리고 교회간의 끊임없는 분쟁, 성도간의 분쟁은 6계명의 몰락이다. 사역자의 성적 범죄 행위를 넘어서 범죄 후에도 버젓한 교회사역은 7계명의 몰락이다. 사역자의 논문 표절은 8계명의 몰락이다. 이러한 범죄 행위를 정당화시키려는 거짓말과 고집은 9계명의 몰락이다. 자기 교회 성장을 위해서는 남의 교회의 성도도 탐내는 것은 10계명의 몰락이다.
십계명을 깨드릴 수 있는 존재는 계명을 수여하신 여호와뿐이다. 그 거룩한 종인 모세가 백성에게 합당하지 않는 돌판을 깨드려, 역설적으로 백성과 십계명을 유지하였다. 그 거룩한 율법을 받아 간직하며 행동해야 될 교회가 십계명을 돌판에서 지우고 있다. 계명이 지워진 돌판을 붙잡고 하나님의 교회라고 외칠 수 있겠는가?
예수께서 십자가의 구속으로 율법을 성취하셔서 믿음으로 의롭게 된 백성은 자발적인 순종과 경외심으로 거룩한 율법을 준수해야 한다.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얻음은 신교의 교리이다(갈라디아서). 그러나 거짓 믿음이지만 교회 안에서 신자로 인정받으려는 자에게, 행위가 없는 자가 구원이 없다며 행위를 요구하는 자에게 야고보 사도는 거듭 외침을 반복한다(야고보서).
십계명이 없는 교회는 교회가 아니다. 십계명을 준수하지 않는 성도는 성도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