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백성인가, 바로의 종인가?
< 이복우 목사,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 >
출애굽기 5장은 모세와 아론이 바로에게 하나님의 명령을 전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어서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바로의 반응과 조치가 설명되고, 나아가서 이스라엘 자손의 기록원들이 바로에게 호소한 일과 모세와 아론을 원망한 일,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대한 모세의 탄원을 기록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몇 가지 중요한 교훈을 받게 된다.
1. 이라엘을 “내 백성”이라고 부르신 하나님
하나님은 모세와 아론을 통해 바로에게 “내 백성을 보내라”고 명하심으로써 이스라엘 사람들을 “내 백성”이라고 칭하셨다. 그런데 이것은 하나님의 자존심이 굉장히 상하시는 일이다. 왜냐하면 지금 이스라엘 백성은 모두 바로의 ‘노예’로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켜 “내 백성”이라고 부르신 것은 “나는 네가 맘대로 부리고 있는 이 노예들의 왕이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당시에 노예는 한낱 짐짝 같고 짐승과 같은 존재로 취급되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처럼 천하기 비길 데 없고 무력하기 짝이 없는 노예들의 왕이라 하니 바로가 하나님을 얼마나 우습고 하찮은 존재로 생각했겠는가? 한낱 피조물에 불과한 바로 앞에서 우주만물을 만드시고 다스리시는 창조주 하나님이 말로 다 할 수 없는 멸시를 당하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스스럼없이 ‘이 노예들이 내 백성이며, 나는 이 노예들의 왕’이라고 선언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내 백성”이라고 일컬으신 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맺으신 언약의 핵심 내용이다(참조, 창 17:7; 출 6:10; 렘 26:12; 히 8:10 등). 여기서 우리는 상황을 초월하여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이스라엘로 하여금 하나님의 백성으로 존속하게 하며, 또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근본 동인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출 2:23-25).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버러지 같은 너 야곱아”(사 41:14)라고 부르셨지만 동시에 자신을 그 버러지 같은 “야곱의 왕”(사 41:21)이라고 말씀하셨다. 히브리서 11:16에서는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셨다”고 말씀한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이 어떠한 형편에 있든지 간에 단 한 번도 그들을 부끄러워하거나 모른다고 말씀하신 적이 없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영원토록 사랑하신다.
우리가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도 이와 동일한 은혜에 근거하고 있다. 하나님은 죄의 종노릇하던 버러지 같은 우리에게 언약에 근거한 구원을 베푸시고 “내 백성”이라, “내가 택한 자라”(사 43:20)고 말씀하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신다. 아니 하나님은 오히려 우리를 존귀한 자로 여기신다. 세상에 이보다 더 큰 은혜가 어디 있겠는가! 신자가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는 궁극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2.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바로의 반응
바로는 “내 백성을 보내서 그들이 광야에서 내 앞에 절기를 지키게 하라”(출 5:1)는 하나님의 명령을 듣자, “여호와가 누구이기에 내가 그의 목소리를 듣고 이스라엘을 보내겠느냐 나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니 나는 이스라엘을 보내지 아니하리라”(출 5:2)고 말한다. 여기에서 바로는 하나님에 대한 그의 무지를 보여준다. 그는 “여호와가 누구냐?”라고 묻고 이어서 “나는 여호와를 알지 못한다”고 말한다. 바로는 여호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였다.
그런데 하나님에 대한 이러한 ‘무지’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는 것으로 나아간다. 그는 “여호와가 누구이기에 그의 목소리를 듣고 이스라엘을 보내겠느냐 나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니 이스라엘을 보내지 아니하리라”고 말한다. 막강한 권세와 힘을 가지고 살아 있는 신으로 추앙받던 바로는 여호와 하나님을 아주 하찮은 존재로 여긴 것이다.
바로는 여호와 하나님을 알지 못했고 하나님을 무시했다. 무지가 무시로 이어진 것이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모르면 하나님을 무시하게 된다. 세상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근본 원인도 하나님을 모르는 데 있다. 신자들도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방자하게 행하게 된다(참조, 잠 29:18).
이어서 바로는 하나님을 무시하는 반면에 자신을 매우 과시했다. 2절에서 그는 “내가그의 목소리를 듣고 이스라엘을 보내겠느냐 나는여호와를 알지 못하니 나는(개역개정역에는 빠져 있다) 이스라엘을 보내지 아니하리라”고 말했다. 그는 무려 세 번이나 “나는”을 말함으로써 자신을 매우 높이고 있다. 하나님에 대하여 무지한 바로는 하나님을 무시하고 멸시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자신을 매우 과시하고 높였다. 이런 점에서 바로는 세상을 대표하는 자가 된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바로의 부정적인 반응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더욱 괴롭히는 것으로 확장된다.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광야로 나가겠다고 하는 것이 쉬고 싶어서(출 5:4, 5) 하는 짓이며, 게을러서(출 5:8, 17bis.) 하는 소리요, 거짓말을 하는 것(출 5:9)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벽돌을 만드는 데 필요한 재료인 짚을 주지 말라고 감독들에게 명령한다. 하지만 벽돌을 만들어 내는 양은 이전과 동일하게 하라고 명령한다. 이리하여 바로는 하나님을 무시하고 멸시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을 더욱 무시하고 멸시하며 핍박했다. 이것이 악한 세상의 특징이다. 세상은 하나님을 모르고 하나님을 무시하고 멸시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도록 괴롭히고 핍박한다.
3. 바로의 처분에 대한 이스라엘 백성의 반응
상황이 더욱 악해지자 이스라엘 자손의 기록원들은 바로를 찾아가서 호소한다. 이때에 그들은 자신들을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말하기는커녕 “당신의 종”, 즉 바로의 종이라고 말한다. 그것도 무려 세 번이나(출 5:15, 16bis.) 연거푸 반복함으로써 매우 강조하고 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얼마 전에 하나님께 머리 숙여 경배한 모습(출 4:13)과는 극단적인 대조를 이룬다.
하나님께서는 노예로 살면서 인간 취급을 받지 못하는 이스라엘을 변함없이 “내 백성”이라고 인정하시나,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이 ‘바로의 종’이라고 강변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고난이 가중되자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그 존귀한 신분을 팽개치고 바로의 종으로 살기를 서슴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스라엘의 이러한 모습은 우리에게 그리 낯설지 않다. 그 모습이 손해를 보고 불이익을 당할 것 같으면 세상에 굽실거리며 마치 세상의 노예인 것처럼 살아가는 현대의 그리스도인들과 많이 닮았기 때문이다.
마치는 말
하나님께서 어떤 망설임도 없이 우리를 내 백성, 내 자녀라고 말씀하시는 것처럼, 우리도 주저함 없이 하나님만이 나의 왕이시며, 나는 오직 하나님만을 섬긴다고 말하고 자랑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상황을 뛰어 넘어 우리를 당신의 백성으로 인정하신다. 우리 역시 어떠한 처지에서도 하나님의 백성이어야 하며, 하나님께만 소속되고 매인 자임을 고백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