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인지심(不忍之心)
< 장석진 목사, 광주월산교회 >
“장애인들 역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기에 소중히 여겨져야”
인간에게는 남의 불행을 차마 눈뜨고 보지 못하는 마음이 있다. 굶어서 고통 받는 저개발 국가나 북한 어린이의 굶주린 사진을 보게 되면 가슴이 찡해진다.
이처럼 고통에 빠져 절망하는 사람을 보고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인간의 마음을 맹자는 불인지심(不忍之心)이라고 말했다. 아니 불(不)자에 참을 인(忍)자다. 그러니까 ‘불인지심’은 인간으로서 남의 불행을 차마 보지 못하는 마음이다.
맹자는 백성들이 굶어죽고 전쟁에 피를 흘리며 쓰러지던 당시 전국시대에, 정치 지도자들에게 ‘불인지심’을 가지고 ‘불인지정(不忍之政)’을 펼치라는 강력한 일갈(一喝)이었다고 한다.
맹자는 비유를 통해 이렇게 불인지심을 설명한다. “지금 어린 아이가 내 눈앞에서 우물 속으로 빠지려 하고 있다. 이 때 인간이라면 누구나 측은(惻隱)한 마음이 들어 손을 뻗혀 그 아이를 구해주려 할 것이다. 이것은 마음속으로 그 아이의 부모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것도 아니고 동네 친구들에게 칭찬 받으려고 하는 것도 아니다. 아울러 내가 손을 뻗혀 구해 주지 않았다고 동네 사람들에게 욕먹을까 두려워해서도 아니다. 이것이 인간은 누구나 남의 불행을 차마 두고 보지 못하는 본능적인 불인지심을 갖고 있다는 증거다.”(此所以謂人皆有不忍人之心者)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은 능력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 따뜻한 마음을 소유한 사람이다. 존 왓슨은 “만나는 사람마다 친절하게 대하라. 당신이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전쟁을 치르는 이들이다. 그들은 육체적 고통을 느끼며 마음의 고통을 겪고 있다. 당신이 그들에게 가까이 갈수록 그들이 짊어진 짐을 발견하고 신음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레위기 19장 14절에 보면 “너는 귀먹은 자를 저주하지 말며 맹인 앞에 장애물을 놓지 말고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하셨다. 성경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장애인 사랑과 연관시키셨다. 장애인을 귀히 여기는 사회가 하나님 나라에 가까운 사회이다.
21세기 산업화의 과정에서 우리에게 가져다 준 역기능적 산물이 바로 수많은 장애인의 발생이다. 산업재해, 교통사고와 약물복용이 증가하면서 많은 후천적 장애인을 양산하는 시대가 되었다. 장애인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예비 장애인이다. 따라서 장애인을 귀히 여기는 것은 우리 자신을 귀히 여기는 것이다.
예수님은 당시 사회의 금기를 깨트리시고 시각 장애인의 눈을 만지시고 청각 장애인의 귀를 만지시고 지체 장애인의 손을 잡아 일으키셨다. 특별히 장애인들이 소중히 여김을 받아야 할 중요한 이유는 그들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