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약함 속에 담겨 있는 능력
< 송영찬 국장 dan7777@dreamwiz.com >
바울의 신비스런 셋째 하늘에 대한 경험은 그를 자고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이지만 육체의 가시는 그를 이 땅에 묶어둠으로써 오히려 그리스도의 능력을 경험하게 하는 은혜의 수단이 되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능력이 그의 백성에게서 나타난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목적을 성취시키기 위해 그 사람을 사용하시는 방법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바울은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후 4:7)고 말한 바 있다.
바울에게 있어 ‘주의 환상과 계시’는 누구에게든 가장 자랑할 만큼 신비롭고 은혜로운 경험이었다. 하지만 자신에게는 커다란 유익은 될지 모르지만 교회와 성도들에게까지 유익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성도를 온전케 하고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세우는 것은 환상이나 계시가 아니었다. 그것은 전적으로 복음 전파의 사역을 감당하는 사도의 수고를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바울은 그것이 무엇이든 아무리 자랑할 만하고 자신에게 큰 유익을 가져다준다 할지라도 교회에 유익이 되지 않는다면 사도직의 정당한 수행을 위해 기꺼이 포기하였다.
반면에 바울에게 있어 육체의 가시는 그리스도의 능력을 나타내기 위한 하나님의 은혜였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때에 곧 강함이니라”(고후 12:10)는 바울의 선언은 이 사실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서 바울은 그의 탁월한 수사학적 방법으로 그리스도의 능력을 강조하고 있다.
연약함 속에서 완성되는 주님의 능력, 바울에게 거처를 정하신 주님의 능력, 바울이 연약할 때에 그에게 속한 능력은 모두 살아계신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바울의 통상적인 언급과 잘 부합되고 있다. 그것은 부활이 어떻게 성도들 안에서 이루어지는지를 보여준다.
이런 의미에서 바울은 기꺼이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때에 곧 강함이니라”(고후 12:10)고 고백할 수 있었다.
우리에게 자랑할 만한 그 어떤 것도 실은 그리스도의 능력을 나타내지 못한다. 오히려 우리의 약함 속에서 그리스도의 능력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명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