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탕 같은 일회성 집회, 문제없나?
오늘날 수많은 교회들이 성장이라는 목표를 위해 인기 있는 사람들을 초청하여 전도 집회 행사를 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집회는 일회성으로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교인들은 유명 강사들의 재담과 입담에 웃고 그들이 경험한 간증 같은 이야기에 감동을 받으면서 그러한 일회성 집회에 도취되기도 한다. 집회가 끝나고 나면 집회에 참석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재미있고 유익한 집회였다고 말한다. 아니 너무너무 감동적이고 은혜로운 집회였다고 고백한다.
몇 주 지나서 그 집회에서 어떤 것이 그렇게 감동적이고 은혜로웠는지 물으면 대부분 기억하는 것이라고는 우스갯소리와 재미있는 여담, 혹은 간증 같은 감동적인 몇몇 사건들 정도이다. 어쩌면 그런 이야기들이 자신들에게 인간적인 위로가 되었고 그래서 그것을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라고 믿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나님께서 주시고자하는 진정한 영적 감동과 은혜는 우리가 겪는 어금버금한 인생살이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폐부를 찔러 쪼개는 무시무시한 말씀의 칼날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그 칼에 찔려 숨쉬기조차 힘든 영적 고통을 먼저 경험하지 않고는 결코 말씀의 감동과 은혜가 우리의 영혼을 사로잡을 수 없다.
말씀을 대할 때마다 자신이 얼마나 흉악한 죄인인지를 깨닫지 못하고서는 결코 감동적이고 은혜로운 말씀에 사로잡힐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를 치유하시며 성화의 길로 이끄신다. 이 과정은 분명 고통스럽지만 동시에 감동적이고 은혜롭다.
십자가 없이는 영광도 없다. 영적인 고통 없이 영적인 성장을 기대할 수 있는가? 그런 성장을 기대하는 것은 성경적으로 정당한가? 달콤한 사탕은 입으로는 짜릿한 단맛을 느끼게 하겠지만, 결국 그 백색의 단맛으로 온 몸을 파괴하게 될 것이다.
지금 우리가 달콤하고 짜릿한 인간적인 이야기에서 더 큰 감동을 받고 있다면 아마도 사탕을 입에 물고서 그 단맛에 매료되고 중독된 상태일 가능성이 크다. 우리는 과연 어떤 상태는 어떠한가? 지금 우리 신앙의 현주소가 어떠한지 점검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