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재산 과세와 한국교회의 위상 정립
< 박종언 목사, 평안교회 >
“교회는 사회의 공공성을 선도하는 견인차 되어야”
아침저녁으로 날씨가 서늘해졌습니다. 첫눈과 결빙소식도 들립니다. 추수의 풍요로움과 함께 어려운 이웃이 더욱 생각납니다.
이럴 때 교회와 나라를 생각하면 많은 염려가 생깁니다. 9월 15일부터 10월 7일까지 공시되었던 ‘지방세특례제한법 일부개정법률(안) 입법예고’ 때문입니다. 제목이 생소하시겠지만, 내용은 독자들이 잘 아는 내용입니다.
교회가 예배당이나 사택 등을 살 때 발생하는 취득세와, 부동산을 보유하면서 매년 내는 재산세를 그동안 감면받아왔는데 앞으로는 감면혜택을 없애겠다는 것입니다.
개정안에 따르면, “…일몰 미설정된 감면에 대한 일몰기간 적용(제6조…제50조…) 1)… 2) 사회복지법인 등의 감면, 학교 감면, 평생교육단체 감면, 종교 및 제사단체 감면… 등에 대한 적용 기간은 각각 2019년 12월 31일로 함”이라는 단순한 내용입니다.
개정 이유는 ‘노인 장애인 등 새로운 복지 수요에 대응해야 하는 등 지방 재정 여건과 지방세 감면의 비정상적 문제들을 정상화하는 방향으로 사전 사후 관리를 강화하고자’ 종교 단체에 대해서 지방세 감면 혜택을 종료할 것이랍니다. 참고로 2012년 한 해 동안 기준 종교계가 감면받은 재산세 및 취득세 등은 324,946건에 2,990억 원 정도입니다.
이와 더불어 목회자과세와 관련하여 목사들 중 일부는 목사는 세금을 내고 교회는 세금을 내지 않으면 되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있었으나, 교회의 법적인 지위가 달라지므로 ‘과세의무 없는 자발적 납부’ 외에는 종교의 자유와 납세의 의무를 조화시킬 방법이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었습니다. 그런 중에 교회에 대한 과세가 예고된 것입니다.
교회가 한국사회에 비춰지는 모습이 세상의 빛과 소금인 복의 근원이 아니라 종교사업자로 보였기 때문에, 공직자들이 종교, 결국 기독교회에 비과세 혜택을 줄만큼 공익성이 없다고 판단하는 것이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이 시대는 공공선이라는 이름으로 종교가 후퇴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종교의 도덕적 가치는 과세정의보다도 높습니다. 종교적 가치 없이 공동체 가치는 불가능합니다. 그 사회의 도덕적 가치의 최후 보루가 종교입니다. 국가제도의 정당성을 돕는 기관이 종교개혁 500년의 기독교회입니다.
링컨과 윌버포스는 당시 산업구조상 경제체제의 붕괴를 가져올 것이라던 노예제도 폐지를 기독교신앙으로 실현시킴으로써 천부 인권이 확립되었고 산업혁명과 평등한 참정권을 가진 서구의 민주국가가 성립되었습니다. 그런데 노인 복지를 위해 교회에 세금을 물리겠다는 것은 너무나도 당혹스럽습니다.
신자의 실천적 신앙생활이 섬김과 나눔이고, 한국교회의 복지사역을 빼놓고 노인복지를 말할 수 없습니다. 기독교 신앙이 아니고는 인간 개개인의 존엄성 존중과, 모두가 다함께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자는 공동선을 말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종교의 공익성, 사회통합기능, 사회봉사기능 및 종교 편향을 이유로 변증하여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정부에 반대 의사를 재출하여, 10월 16일에 입법을 추진하지 않겠다는 답변을 들었습니다. 참으로 교회의 위상을 다시 세움에 있어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제 주사위는 다시 한국교회에 주어졌습니다. 한국교회가 우리 사회에서 공공성에 아무런 유익을 끼치지 못한다면 또 다시 이 문제는 재론될 여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잘 아는 것처럼 초대교회는 국가와 교회와의 관계가 완전히 분리된 상태가 아니고 박해받던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사회 봉사를 감당했습니다. 가난한 자, 약한 자, 노예들에게 들어가서 계속해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우선적으로 전파하면서 사랑으로 봉사해나갔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초대교회에 나타난 사랑은 선택받은 백성 그 안에 머물지 않고 그 경계를 넘어서 가난한 자, 버림받은 자, 굶주린 자, 병든 자, 약한 자 등등을 다 찾아가는 그런 사회봉사 형태로 나아갔습니다.
목회자 과세, 지방세 감면 일몰 등의 도전은 하나님께서 한국교회에 주시는 권고라고 보입니다. 이제 한국교회가 초대교회 복음의 능력과 본질을 회복해야 할 때입니다. 그리고 본질로 돌아가기 위해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라‘고 하신 말씀을 기억해야겠습니다.
여기까지는 그동안 열심히 했습니다. 여기에 하나가 더해져야 합니다. 곧 우리 주변에 산적해 있는 상당수 목회자들이 최저생계비조차 보장되지 않고 있는 현실을 간과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미자립교회 목회자들은 부득이 평일에 생업을 위해 일하지 않으면 안 되는 형편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창고와 양식을 열어 복음사역자들을 먼저 먹여야 합니다. 이것이 본질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어떻게든 재정이 허락한다면, 그가 전도사이든 목사이든 복음사역자에게 최저생계비를 공급하는 일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미자립교회 목회자들을 놓아두고서는 결코 한국교회가 공공성 회복을 위해 아무런 힘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우리 교단에서는 총회 목회자최저생활비대책위원회가 있어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힘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차제에 이 문제를 총회에 위탁하는 것으로 자위하지 말고, 각 노회가 그리고 각 지교회가 앞장서서 함께 이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