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농어촌 비전트립을 마치고
< 참가자 명단 >
*2학년 : 김대영, 김상원, 김 원, 김주희, 이규성 (5명)
*3학년 : 고영재, 김미선, 박도진, 박영준, 한혜남, 현미정 (6명)
합신 농어촌 비전트립팀은 2, 3학년 학우들 11명과 인솔하시는 생활관장 목사님으로 구성되어, 보령지역의 향천교회(이인환목사님), 태안 지역의 모항교회(이재홍목사님)와 채석포교회(최창옥목사님)를 3박 4일 일정으로 방문했다. 그곳에서 축호전도, 교회 환경미화, 농촌봉사활동을 하면서, 농촌목회의 역동성과 전도의 중요성을 보고 배운 귀중한 시간들이었다.
(향천교회)
처음으로 방문한 교회는 충남 보령의 향천교회였다. 먼저 한명씩 돌아가면서 서로 소개하는 시간을 갖고 나서, 목사님 목회이야기를 듣는 시간을 가졌다. 합신 6회 선배님이신 이인환 목사님은 하나님 앞에서 대쪽같은 절개를 지닌 분이셨다. 30여년의 세월을 하나님 앞에서 꿋꿋이 농촌 목회를 위한 삶을 살아오셨다. 귀찮고 아무도 하지 않으려는 것을 먼저하세요. 그것이 하나님 기뻐하시는 일이예요. 목사님은 순종과 헌신의 삶을 그렇게 설명하셨다.
예배당을 둘러보면서 예배당 안에 행사나 구호가 되는 현수막 같은 것이 하나도 없네요?라고 목사님께 질문을 드렸다. 제가 그런 건 잘 못해요.그저 새벽기도 안 빠지고, 구역예배 다 인도하고, 강단을 비우지 않고 지키며 매일 저녁마다 성도들과 기도하고 있어요라고 말씀해주셨다. 사역을 하다보면 부득이 교회를 비우게 되거나, 좀 쉬고 싶을 때도 있었을텐데, 한결같이 교회 중심으로 말씀과 기도의 자리를 최우선으로 지켜오셨다는 목사님의 답변이 묵직한 깨달음으로 다가왔다.
목사님은 후배들에게 따끔하게 조언했다. 하나님의 일을 할 때는 계산적이 되면 안돼요. 인간적으로 하나하나 따지고 계산하면 하나님의 일도 인간적인 한계를 넘을 수 없어요. 바보 같은 믿음, 앞 뒤 가리지 않는 순전한 믿음이 있어야 하나님이 도와주세요. 상식이라는 말로 어느 순간 계산적이되고, 경험의 잣대로 판단하고, 현실적으로 반응해 온 지난 시간들을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둘째날은 다섯팀으로 나누어 네 팀은 동네 축호전도를 나갔고, 한 팀은 교회주변 풀뽑기와 야외 쓰레기장을 치우고 정리하였다. 미리 교회이름을 붙인 위생팩을 전도용품으로 준비해서 만나는 동네 어른들께 드리며 전도하였다. 어르신들마다 오랜 세월 마을을 떠나지 않고 교회를 시무하신 목사님 가정에 대하여 아주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계신 것을 알 수 있었다. 교회가 지역사회에 좋은 일을 많이 한다며 칭찬하시는 분들이 계셨다. 한 사람의 목회자의 헌신이 지역사회에 빛과 소금이 되고, 하나님께 영광이 됨을 직접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내가 사역하는 교회, 지역에서도 이렇게 칭찬받고, 하나님께 영광돌릴 수 있을까? 부끄러운 나를 돌아보고 다시 결심하는 시간이었다.
(모항교회)
향천교회 목사님과 아쉬운 인사를 드리고 한 시간 가량 차로 이동해서 도착한 교회는 태안군의 있는 모항교회였다. 처음 주어진 일은 고구마를 심기 위해 밭을 갈아엎는 거였다. 난생 처음 해보는 일이었지만, 우리 모두는 몸을 아끼지 않고 최선을 다하여 섬겼다. 7평 정도 되는 땅을 개간하면서 오랜 만에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농부들의 고된 노동을 체험하였다.
전혀 밭으로 소용이 있을 거 같지 않은 밭을 개간하는 과정 중에 복음서에 나오는 돌작밭이 떠올났다. 이 밭이 불신자의 마음처럼 느껴졌다. 너무도 힘들게 밭을 갈고, 물을 주고, 검은 비닐을 덮고, 그 안에 고구마 순을 심는 일들이 우리가 감당하는 전도이고, 목회이고, 선교가 아닌가 생각했다. 잡초 하나를 뽑는 것도 쉽지 않았다. 뿌리 깊은 잡초를 뽑으려면 있는 힘껏 뽑아야 했고, 많이 수고한 것 같은데 돌아보면 별로 진척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결국엔 밭이 만들어지고 고구마 순을 정성껏 심고 마무리하듯이, 사역 현장에서 넘어야 할 많은 일들이 있지만 결국은 교회가 세워지고 하나님 영광이 나타나게 될 것이라는 소망을 잊지 말아야겠다.
저녁식사는 선장으로 일하고 계시는 안수집사님 가정에서 정성껏 준비해주셨다. 육체의 노동이 주는 기쁨과 더불어 싱싱한 자연산 우럭과 해삼, 그리고 게장 등등 정말이지 너무나 맛있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몸은 조금 힘들지만 왠지 모르게 마음은 풍성했다. 농어촌교회 성도님들의 섬김은 참으로 따스하고 넉넉했다.
밤에는 이재홍 목사님 목회이야기를 듣는 시간을 가졌다. 목사님은 마음껏 전도하고, 성경읽고, 기도할 수 있으니 목회만큼 재미있고 행복한 것은 없다고 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씀하셨다.
목사님은 매 주 4~5일을 아침 9시부터 저녁 때까지 사모님과 함께 전도를 다시신다고 한다. 차로 1시간 거리 안에 있는 모든 불신가정을 전도대상자로 정하고, 집집마다 다니며 전도하고, 육칠백명의 이름을 빼곡이 적어놓고 성도들과 함께 저녁 9시에는 매일 기도회가 이어진다고 한다.이렇게 수고해서 얻은 전도의 열매들로 계속 새신자들이 등록하고 교회가 부흥하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저녁 9시가 되자 성도들이 오시고 기도회가 열렸다. 그 기도의 열정 또한 뜨거움이 가득하다는 것이 함께 참여한 우리에게 큰 도전으로 다가왔다. 모항교회 사모님께서 해주신 말씀이 떠오른다. 전도는 전도를 받는 대상도 살아나지만 전도를 하는 사람도 살아나는 길이다 그동안 전도의 대한 막연함과 두려움이 있었는데, 적극적인 마음을 갖는 계기가 되었다.
다음날 아침에는 세 개 지역 6팀으로 나누어서 축호전도를 나갔다. 우리는 마을을 돌며, 밭에서 일하시는 분들, 가정에 계신 분들을 방문하여 준비한 위생팩을 전달하고 기도해 드리는 귀한 시간을 가졌다. 모항교회 목사님, 사모님이 수없이 방문한 가정들을 많이 만났다. 그들은 교회에 상당히 마음이 열려 있었다. 어느 한 집도 우리를 거절하거나 난색을 표하는 집이 없었다. 청년시절 교회를 열심히 섬겨 아직도 외우고 있는 사도신경을 직접 읊으시던 불교인 아주머니, 교회에 나가고 싶지만 남편을 절에 모셨기 때문에 나갈 수 없다는 분, 남편이 배를 타기 때문에 제사를 지내고 있어 교회에 나가면 화를 당할까봐 못나가신다며 남편이 배를 그만타게 되면 나가겠다고 꼭 약속하던 아주머니, 다양한 사연의 사람들을 만나며 그분들이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오기를 기도하며 전도하였다.
축호전도를 하면서 모항교회 목사님과 사모님이 얼마나 수고하며 매일 복음의 씨를 뿌리고 계신지를 실제로 확인하고 그 열매를 경험하는 시간이 되었다. 목회가 정말 행복하다는 이재홍 목사님을 뵈면서, 내게 전도는 어색하고, 설교하는 것은 부담되고, 기도는 바쁘다는 이유로 자꾸 시간이 쫓겼던 경우가 다반사였는데, 정말 기본이 충실한 목회자의 모습은 이런 것이구나 귀감이 되었다.
(채석포교회)
모항교회에서 전도와 영혼구원에 대한 큰 도전을 받은 우리는 다시 아쉬운 발걸음을 돌려 차로 30분을 달려 채석포교회로 이동했다. 많이 피곤하고 지쳤지만, 채석포교회에서 주실 하나님의 은혜는 무엇일까? 기대하는 마음이 컸다. 도착하자마자 3개지역 6개팀으로 나누어서 마을 전도를 시작했다. 무더운 날씨였지만, 밭에서 일하시는 분들을 위해 사모님이 준비해주신 시원한 수정과와 우리가 준비한 위생팩을 들고 이집 저집 큰 소리로 인사하고 그냥 들어갔다. 시골이라 문이 잠겨 있는 곳은 없었다. 특이한 것은 모두가 우리를 반겨주며 손님으로 여겨주신다는 것이었다. 보통 복음을 거부하는 분들도 있는데 여긴 그렇지 않았다. 충청도 분들이 점잖아서 직접적으로 거절하지 않으신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수도권에서 노방전도 할 때와는 너무나 다른 모습이어서 조금 당황하기도 하였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함께 차도 마시고 주시는 수박도 먹고 같이 콩도 까드리고 전도하는 모든 시간들이 너무나도 행복했다. 어떤 분들은 우리에게 수고가 많다며, 집에 있는 앵두나무 가지도 꺽어주셨다. 정말이지 이분들이 진정으로 예수님 믿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전도를 마치고 저녁을 맛있게 먹고 성도님들과 함께 수요예배를 드렸다. 아담한 예배당에 할아버지 할머니 동네 어르신들이 오셨다. 우리는 성도님들과 함께 찬양을 드리면서 주의 성령으로 하나되게 하시는 은혜를 맛보았다. 도시 교회의 세련됨은 없지만 모두가 한 마음으로 하나 되어,서로를 안아주고 손뼉도 마주치고 눈을 바라보며 함께 웃어주며 기쁨으로 찬양을 드렸다. 어느새 예배당에 모인 모두의 마음에 감동이 일고 눈에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기쁨의 눈물이었다. 감사의 눈물이었다. 이렇게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주의 몸된 교회를 지켜온 목사님과 성도님들 때문에 생긴 감동이었다. 우리는 여기에 모인 우리 특송을 드렸고, 말씀에 순종하는 것만이 영원히 남는다라는 목사님 말씀이 선포된 후에, 2학년, 3학년 전도사님 한분씩 예수님을 만나 회심하고 사역자의 길을 가게 되기까지의 간증을 들었다. 은혜와 감동이 가득한 예배가 끝난 후, 우리에게 한 사람 한 사람 찾아오셔서 악수하시며 인사해주시고 집으로 돌아가시는 성도님들을 뵈며 마음이 뭉클했다.
밤에는 수박을 먹으며 최창옥 목사님의 목회 이야기를 듣는 시간을 가졌다. 최목사님은 이십여년 전에 교회를 개척하셨고, 교회가 헐리게 되는 어려움을 겪다가 이전해서 다시 지금의 교회를 세우게 되신 이야기를 해주셨다. 그 후 수년 사역을 감당하다가 다른 지역으로 부임해 가셨고,시간이 많이 흐른 뒤 다시 채석포교회로 돌아오셨다고 한다. 목회하면서 어려움이 크고, 실망이 될 때 성도들과 아이들을 생각해서 교회를 떠나지 말고 끝까지 그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것을 거듭 당부하셨다.
다음 날 아침에는 사모님의 인도로 어떤 성도님 집에 갔다. 할아버지가 편찮으셔서 마늘농사철에 손질하지 못한 마늘이 비닐하우스 안에 가득했다. 그 많은 마늘을 할머니 혼자서 다 손질하셔야 한다고 하니 우리의 마음은 바빴다. 열심히 마늘 손질을 했지만 익숙하지 않은 손놀림에 스스로를 답답해 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돌아갈 시간은 다가오고 할머니께서 손질하실 마늘은 여전히 많았다. 마지막 시간까지 최선을 다했지만, 더 많이 도와드리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총평)
목회는 행복한 것이다. 이것은 이번 농어촌 비전트립을 통해 느낀 것을 한 문장으로 표현한 것이다. 각기 다른 환경에서 서로 다른 사역으로 섬기시는 세 교회의 목사님 가정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한 것이 있다면, 바로 그분들의 행복한 표정이었다. 농어촌 지역에서 사역하는 것이 도시에서 목회하는 것보다 경제적으로 어렵고, 여러 환경적으로도 많이 불편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농어촌교회 비전트립에서 기대했던 것은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 엄청난 희생을 감수한 목사님의 사역의 경험과 헌신을 배우고 싶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것은 목사님들의 엄청난 고생과 희생의 모습뿐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농어촌 목회자에게 부어주신 큰 복들이었다. 목사님들이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 안에서 얼마나 많은 기쁨과 은혜를 누리고 있는지를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우리가 간 마을마다 어르신들마다 목사님과 사모님을 모르는 분이 없었다. 전도하면서 교회이야기를 하면 오히려 더 대화가 우호적으로 흘러감을 느꼈다. 목사님들에게 마을 사람들을 전도하는 것은 도시목회처럼 다시 못 볼 사람들에게 한번 전도하고 마는 것이 아니었다. 5년이고 10년이고 볼 사람들을 매일 마주하면서 도움을 줄 수 있고 신뢰할 수 있는 좋은 관계를 이루는 것이었다. 평소 목회자의 행실이 여실히 드러나는 곳이 농어촌이고, 그래서 훌륭한 목회자가 아니고서는 오랫동안 버티지 못하는 곳이 농어촌 목회라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또한 사모님들이 목사님의 가장 든든한 동역자임을 보게 되었다. 사모님들의 섬김과 헌신, 동역이 농어촌 목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무척이나 큰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이번 농어촌 비전트립을 통해 환경이 문제가 아님도 깨닫게 해주셨다. 결국 목회자의 모든 사역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느냐 마느냐에 달려있다. 하나님이 어디든 부르시는 곳으로 순종해 나아간다면 그 다음부터는 하나님께서 이뤄주신다는 것이었다. 나는 선택해야 한다. 어떤 목회자로 설 것인가! 눈에 보이는 크고 작음을 쫒아가는 자가 될 것인가? 하나님이 바라보시는 한 영혼을 쫒아가는 자가 될 것인가? 나의 뜻이 아니라,내가 보기에 적절한 곳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그 곳을 지키는 삶은 저 천국에서 영원히 불타지 않을 사역으로 영원히 남을 것이다. 영원을 심는 사람으로, 주의 말씀에만 순종하는 주님의 사역자로서 빚어지길 간절히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