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지에서 온 편지 <1>
총회 합신세계선교회 소속으로 세계 각국에 나가서 복음을 전하고 있는 선교사님들과 사모님들이 보내온 편지입니다. 이번호에는 인도네시아와 터키에서 온 편지를 게재합니다.(편집자 주)
터키 이스탄불에서
그동안 별 큰 일없이 지내던 터키가 지난 5월 한 달 동안 몸살을 앓았습니다. 5월 1일 노동절 행사를 정부가 방해하고 특히 이스탄불 중심지인 탁심에 있는 공원을 없애고 그곳에 터키에서 가장 큰 모스크와 백화점을 세우고자 시도하는 정부에 대해 가장 격렬한 데모가 지난주 토요일(6월 1일)에 있었습니다.
경찰들의 과잉진압으로 사상자가 발생하자 근처에 있는 군부대 군인들이 나서서 부상당한 시민들을 돕는 일이 발생했으며, 진압을 반대하는 경찰들 중 일부가 사표를 제출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이 일을 접한 다른 대도시들에서도 시민들이 동시 다발적 데모를 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정부가 손을 들고 경찰들을 철수시키고 시민들의 저항에 한발 물러섰지만 아직도 그 후유증은 남아있습니다.
대도시 젊은이들이 거리를 활보하며 총리의 퇴진을 요구하고 밤 9시가 되면 대부분의 시민들이 집집마다 베란다로 나와 그릇을 두드리며 현 정부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이 일로 인해 현 이슬람 정권의 수장인 에르도안 총리의 이슬람화 정책과 독주에 제동이 걸린 것은 사실입니다.
내년 봄에 총선이 치러질 예정인데 앞으로의 터키정세가 어떻게 전개될지 많은 기도가 필요합니다.
터키 이스탄불에서 김00 선교사 올림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에서
샬롬! 추운 겨울 한국을 떠나 인도네시아에 온지 벌써 5개월을 접어 들면서, 선교사로서 엄마로서 아내로서의 생각들을 기도편지를 통해 나누어 봅니다.
주부로서 이곳에서 가장 힘든 것은 바로 식수 문제입니다. 거의 매일 비가 오는데, 한국의 장맛비와 같이 천둥과 번개를 동반합니다. 비가 올 때는 집이 흔들릴 정도의 벼락이 쳐서 처음에는 무척 무섭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비는 많이 오지만, 정작 마실 물은 없습니다. 골목골목마다 이끼가 낀 가느다란 호스를 통해 들어오는 상수도는 석회가 많아서 식수로 사용하기가 어렵습니다. 모든 식수는 정수된 물을 구입해서 먹어야 합니다. 식당에서도 물은 주문해서 먹어야 합니다. 매일 집에서 나와 골목을 지날 때마다 호스를 보며 각 가정과 이 땅에 맑고 깨끗한 생명의 생수가 흘러넘치길 기도해 봅니다.
현지에는 매일 비가 오지만, 대부분 우산을 가지고 다니지 않습니다. 집중호우가 오지만, 30분 정도후면 곧 그치기 때문에 가게 처마 밑이나 정류장 주변에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립니다. 급하게 해야 할 일들이 자연의 순리 앞에서는 뒤로 미뤄질 수 있음을 날마다 경험합니다. 약속에 늦어도 비가 와서 늦었다고 말하면 용서가 됩니다.
저도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며 현지인과 함께 쪼그리고 앉아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맨 발에 우산을 든 아이가 하나 둘 모여듭니다. 오젝빠융(Ojek Payung)이라 불리는 이 아이들은 약간의 돈을 받고, 차타는 사람들에게 우산을 받쳐 줍니다. 저 아이들은 학교도 안가고 대낮에 왜 여기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비는 추억이나 낭만이 아니라, 이들에게는 현실입니다.
최대의 이슬람 국가인 인도네시아에서 처음으로 고난주간과 성금요일, 부활절을 보냈습니다. 놀라운 것은 성금요일과 부활절, 그리고 예수님 승천일이 모두 국가공휴일입니다.
종교가 의무인 인도네시아는 각 종교의 중요한 날을 공휴일로 지정해 놓고 있습니다. 현지인들이 예수 부활을 기념해서 장식해 놓은 계란이 이색적입니다. 믿음이 없이도 얼마든지 종교를 흉내 낼 수 있음을 발견합니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 속에서도, 인근 현지 교회 4개가 문을 닫게 되었고, 자카르타에서는 교회를 부수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저는 현지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 중에 뒷문이 열리면 간이 덜컥 내려앉기도 합니다. 그러나 무슬림들의 협박과 고난 속에서도 꿋꿋이 사역하시는 현지 사역자들과 성도님들을 보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무슬림들의 마음 속 깊이 뿌리박힌 복음에 대한 저항들이 하루 속히 무너지기를 기도합니다.
약 40년 전에 설립된 언어훈련학교는 매달 한 단계로 구성되어 있고, 각 과정을 마치면 평가시험을 치르게 됩니다. 시험 후에 현지인 교수와 훈련생들을 저희 집으로 초대하였습니다.
쌀밥에 김치, 그리고 잡채를 만들어서 한국 음식의 맛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현지 재료들을 급하게 섞어서 나름대로 한국식으로 차렸습니다. 그런데 식사를 시작하자 갑자기 이 분들이 힘들어 하였는데, 그 이유는 젓가락질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주방에서 포크를 찾아보니, 저희 집에 포크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몇몇 분은 그냥 젓가락으로 잡채를 힘겹게 먹었고, 어떤 분은 과일용 포크로 반찬을 먹었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즐거운 시간이었고, 우리가 서로 다른 나라 사람들이지만, 주 안에서 하나임을 확인하였습니다.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에서 원00 선교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