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귀한 목사의 아내로 사는 길
어머님, 당신은 상처한 목사님 가정에 “훗어머니”로 드셔서 쉽지 않은 결혼 생활을 감당하셨습니다. 오로지 “주의 종의 사역을 돕기 위해” 결혼하셨던 당신은, 부군인 박윤선 목사로 하여금 오로지 말씀 연구와 복음 전파에만 몰두하시도록, 단순하지 못했던 가정을 도맡아 짊어지고 가셨지요.
과거에 한국의 가난했던 많은 어머님들이 그랬듯, 사과 한 알을 자신의 입에 직접 넣어보지 못하셨고, 값나가는 옷 한 벌 스스로를 위해 입어보지 못하시며, 묵묵히 34년 어려운 목사 사모의 삶을 사셨습니다.
“영혼 구원을 위한 목사직이 세상에서 가장 귀하다”라고 하시며, 우리 형제들 모두가 세상 그 어떤 유복하고 존경받는 직업보다 복음 전하는 그 길을 가기를 진심으로 원하셨던 분이셨습니다.
또한 남편인 박윤선 목사님이 원하시는 것이면, 한 겨울의 온상에서 키운 딸기나, 철지난 귀한 생선(특히 청어), 혹 목사님이 미국 유학 시절에 먹었던 과일 파이(pie)가 참 맛있었다, 한번 언급하시면, 그것을 구하시려고 시장 가방 한 손에 끼고 가난했던 5-60년대의 한국 시장들을 샅샅이 뒤지곤 하셨던 당신 … 지금도 저희들은 생생히 기억합니다!
엄연히 결혼하여 남편으로 모신 목사님을, 남편이라기보다는 항상 “목사님”이라고 부르시며, 34년을 언제나 아버님이 설교 후 목축이실 음료수 보온병과 필기도구를 가방에 넣고 그림자처럼 그의 설교지를 따라 다니시던 어머니, 아버님의 설교에 항상 감동받아 하시던 것을 생생히 기억합니다.
당신은 소천하기 몇 해 전까지도 알츠하아머병으로 기억이 다 없어져서 자주 자주 “아버지(박 목사님)가 지금 집회 인도차 와 계신데, 저렇게 잡숫지도 못하고 왔다 갔다 하신다”면서 오래 습관화된 말씀을 되뇌곤 하셨죠. 아무리 저희들이 “아버지가 이미 20여 년 전에 돌아가셨다” 해도 듣지 않고 계속 걱정하곤 하셨죠.
어머님, 당신은 우리더러 항상 “진실하라”시며, “쌀 한 톨도 거짓으로 얻으면 안 된다” 하시고, “동전 하나도 과장해서 구하지 말라”고 하시곤 했지요. 저희들이 소싯적에 이웃집 살구나무의 다 시들어 버린 열매 몇 개를 주인 허락 없이 따먹었음을 아셨던 어머니는 저희 손을 꼭- 쥐고 함께 주인을 찾아 용서를 구하도록 하신 일을 똑똑히 기억합니다.
“혀가 잘려도 절대 거짓말은 안 돼”라고 저희들을 깨우치곤 하셨죠. 항상 “내실 없이 말만 앞세워선 안 된다”고 저희들을 경계하셨고, 피나는 준비 없이 남들 앞에 나서는 것을 무섭게 책망하시던 당신, 그 말씀이 아직 귀에 생생할 따름입니다.
또한 어머님은 저희 모두에게 “하나님 제일주의만이 살 길임”을 강조하시고, 항상 성경 말씀 암송을 독려하시면서 잘 주시지 않던 용돈도 상급으로 기꺼이 내거시고, 성경 암송을 시켜주셨습니다.
주일 성수를 생명같이 여기시며, “숨넘어가지 않는 한, 주일예배 결코 빠져먹지 말라”고 하셨고, 언제나 빳빳한 새 돈으로 준비했다가 주일 헌금하라고 주셨지요. 공부로 피곤한 저희들을 저녁마다 가정 예배를 드리자고 강권하며 독려하시곤 하셨지요. 우리가 바빠서 기도 시간을 제대로 갖지 못함을 못내 안타까워하시며, 귀가 따가울 정도로 기도를 강조하셨지요.
부족하나마 저희들이 이만큼이라도 된 것, 당신의 수없는 눈물어린 기도와, 그렇게도 가슴 저리게 일러주신 가르침 덕입니다. 항상 저희들의 신앙을 염려하셨던 당신은, 우리가 세상에서 황당한 오해와 억울한 일로 괴로워할 때, “기도만이 살길이다” 하시며, 눈물로 저희들과 함께 통곡하시며 떡 먹듯이 며칠씩 금식 기도를 반복하시면서 저희가 당한 난관을 기어코라도 극복하도록 해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어머니! 어머님이 가르쳐 주신대로 살겠습니다. 진실하기 위해 혀를 깨물겠습니다. 새벽을 깨우기 위해 허벅지를 꼬집겠습니다. 당신이 그토록 원하시던 대로, 복음 전파에 진력하고,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정성으로 섬기겠습니다. “교회와 사회에 없어선 안 될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겠습니다.
기억력이 약해지시며 즐겨하시던 성경 암송도 못하시게 되자, 전에 암송하셨던 로마서 8장 앞부분만, 어린아이처럼 자꾸 자꾸 되뇌시며, 또한 자주 침상에서 일어나셔서 잘 이해도 안 되시는데 성경을 펴놓고 조용히 앉아계시곤 했던 모습을 생생히 기억합니다. 방문하던 저희의 손을 그 일그러지고 힘없는 손으로 부여잡고, 기도만은 정말 또렷또렷하게 하시던 당신…
“어서 주님이 불러주셔야지…” 하시며, 쇠퇴해진 기억력과 관절통으로 자주 괴로워하시던 어머니! 병원에 계실 때 가서 찾아뵐 때마다 우리더러 자꾸만 “바쁠 테니 빨리 가봐라” 하시면서 일에 허덕이는 저희들을 염려하시던 당신!
그동안 저희들이 당신께 불공했던 것, 당신의 뜻을 제대로 받들지 못했던 것, 잘 이해하지 못하신다 하여 언성을 높이기도 하며 마음에 상처드렸던 것 등 많은 잘못을, 염치없지만 이제 당신께 엎드려 용서를 빕니다.
일그러져버린 손과 발, 가물가물한 기억으로 괴로워했던 육신의 장막, 이제 훌훌 던져버리시고, 그토록 그리워하시던 영광의 나라에서, 그다지도 뵙고 싶었던 주님 손잡고, 이젠 좀 쉬시고 넘치도록 즐거이 지내세요, 영원토록 말이에요.
어머니, 저희도 주님이 부르시는 날, 얼른 어머님이 계신 천국에 가서, 영광의 주님을 뵈올 때 지극한 반가움과 지극한 기쁨으로 어머니를 부둥켜안으렵니다.
이 땅에서 어머니를 저희들에게 주셨던 하나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대단하신 우리 어머니! 정말 고맙습니다. 그리고 정말 사랑합니다.
– 유가족 일동 드림
–고 이화주(李和主) 님 연혁–
■1920년 7월 20일. 평안남도 평양에서 아버지 이양섭과 어머니 양상실 사이에서 셋째 딸로 출생하시다.
■17세 어간에 절친했던 친구(고) 차봉덕(차후, 여醫師)의 권유로 기독교에 귀의하시며, 이름을 花珠에서 和主(주님과 화목함)으로 바꾸시다.
■21세에 당시 평양 기홀기독병원과 연계된 간호전문학교를 졸업하시고, 상기 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하시다. (당시 장기려 박사, 김명산 박사에게 배움)
■소련의 신탁통치 당시 북한 평양 산정현교회에 출석하시며, 당시 이미 홀로 되신 (고) 주기철 목사의 사모, 오정모 여사를 수 년여 동안 가까이 모시면서신앙적 감화와 지도를 받으시다.
■6.25 전쟁 직전 월남, 부산 고려신학교에 입학하여 1949-51년에 현 고신대학교 신학과 예과과정(2년, 성문과)을 졸업하시고, 1951-54년에 고려신학교 연구과(3년, 현 M.div 과정)를 졸업하시다.
■1952년 이후 전도사로서 지방 교회들을 위한 목회 사역을 시작하던 중, 1954년에 당시 고려신학교 교장 (고) 박윤선 목사님과 결혼하시다. (박윤선 목사님께서 네덜란드 자유대학 대학원 유학 중, 한국에 남아계셨던 김애련 사모님을 불의의 사고로 먼저 천국에 보내심)
■자녀를 얻으시다.1955년. 득 1남(男), 박성은(聖恩) [자부: 병미, 손: Jamie(녀), Jerome(자) 1957년. 득 1녀(女), (전) 박성혜(聖惠) [사위: 전지현 (목사), 손: Andrew(자), Michelle(녀) 1961년. 득 2남(男), 박성진(聖眞) [자부: 미숙, 손: Tiphany(녀), Timothy(자)
■1973년.박윤선 목사님의 정년퇴임(사당동 총회신학교 교수, 70세)과 함께 자녀들과 미국으로 이민하여, 첫 2년 동안 전자제품 공장 노동자, 간호보조원 등을 하기도 하시고, 직접 운영하던 드라이크리닝점에서 옷 수선(alteration) 등을 하시면서 가정 경제를 감당해 나가시다. 또한 박윤선 목사님의 주석 집필을 도우시려고50대 중반에 운전을 배우셔서 탈봇, 퓰러,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도서관에 박윤선 목사님을 태워주시며 주석 완필을 적극 도우시다. (주석 완필은 1978년)
■1977-88년. 부군이신 박윤선 목사가 과거 이미 정년퇴임했던 서울 사당동 총회신학대학으로 재초청되어 대학원장에 취임하시면서, 함께 귀국하셔서 10여 년 동안한국에 계시며합동신학원 설립에 협력하시며 교수하시는 부군 박윤선 목사님을 내조하시다.
■1988년 6월. 34년 동안 내조하신 박윤선 목사님이 소천하신 후 미국으로 돌아오셔서자녀들과 함께 오렌지카운티에 거주하시다.
■2014년 8월 25일. 향년 94세로 소천하시다.
■가장 좋아하시던 성경말씀 : 로마서 8장가장 좋아하시던 찬송 : “하늘 가는 밝은 길이”(통 493/ 새 545), “내 주를 가까이 하려 함은”(통 338/ 새3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