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영혼의 중간지대, 대기상태는 없다
< 조봉희 목사, 지구촌교회 >
“천국과 지옥은 단번에 영원히 결정되는 것이며 번복되지 않아”
우리는 어떤 신학적 노선을 비판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오순절 신학을 비판할 수도 있고, 감리교의 웨슬레 신학을 비판할 수 있습니다. 물론 장로교나 침례교의 근본주의를 비판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천주교 신학도 비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번에 소위 천주교의 교황이라고 하는 프란시스코의 방한을 기점으로 천주교가 추종하고 있는 시복과 관련해 신학의 원론을 따라 비판하고자 합니다. 겸손과 청빈의 모범을 보여준다고 하는 프란치스코를 비판하자는 것이 아니라, 그가 이번에 행했던 천주교의 시복 사상이 신학적으로 잘못되었다는 점을 비판하고자 합니다.
죽은 사람이 복을 줄 수 없어
사람이 죽은 다음에 아무리 교황이라 할지라도 그 권세로 죽은 사람을 복자신분으로 승급시켜줄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그 누구라 할지라도 죽은 사람이 복자가 된다 할지라도 그가 복을 빌어주는 천사로 그의 신분이 상승될 수도 없습니다.
또한 죽은 지 오래된 그 사람이 천상에서 지상에 있는 후대들에게 얼마나 기적을 많이 일으켜주었는가를 근거로 교황이 그를 성자로 서품해 준다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이론입니다.
이러한 생각들과 그 생각들 뒷받침하는 이론들은 모두가 비성경적입니다. 이것은 인간이 만든 가상적 이론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불교나 힌두교에서 주장하는 소위 윤회사상과 별다를 바 없습니다.
죽은 사람에게 해택을 줄 수 없어
지상에서 살아 있는 사람들이 공적을 쌓아드림에 따라 죽은 자에게 어느 정도의 혜택이 간다고 하는 주장 또한 허구 이론입니다. 이런 신학을 샤머니즘 신학이라고 명명합니다. 이것은 죽은 조상에 대한 인간의 부담을 덜어주려는 심리적 위로 픽션입니다.
어떻게 지상에 있는 인간의 노력에 의해 죽은 자가 영적 진보를 이룰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엄밀히 말하자면 인간의 마음 한 공간, 심리적 욕구충족을 위한 무속신앙에 불과합니다.
거두절미하고 성경은 사람이 죽으면 곧바로 심판이 임한다고 단언합니다. 단회적인 상선벌악으로 종결됩니다. 천국과 지옥은 단번에 영원히 결정되는 것입니다. 번복되지 않습니다. 변경이나 철회 불가입니다. 천국과 지옥의 중간지대, 연옥은 없습니다. 어떤 승급을 위한 대기상태는 없습니다. 이런 이론은 너무나 인간적입니다.
사람의 사후에는 심판만 있어
인간의 사후와 관련해 이 지상에서 결정권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절대주권을 갖고 계십니다. 교황은 신적 존재가 아닙니다. 그도 인간이요, 한 사람의 성직자에 불과합니다.
교황은 무오자가 아닙니다. 그가 인간이라면 본질상 우리와 똑같은 죄인 중 한 사람입니다. 다만 한 분의 성직자일 뿐입니다.
우리의 구원자는 오직 예수님뿐이십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중보자는 오직 예수님뿐이십니다. 하나님 이외에 그 어느 누구도 천상의 결정권을 행사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절대 주권자이십니다.
그러므로 그 어느 누구도 망자, 곧 죽은 자를 복자나 성자로 서품하거나 승급시켜줄 수 없습니다. 이것은 사람의 아쉬운 마음을 달래주려는 허상 이론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자기 최면상태로 유도하는 픽션 신학입니다.
예수 안에서만 구원 있을 뿐
인간에게는 오직 예수님만 필요합니다. 사후심판은 ‘단번에’ 그리고 ‘영원히’입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없습니다. 중간 지대, 대기 상태는 인간이 고안해 낸 허구 세계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구원 문제, 영원한 상급 문제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절대주권으로 이루어집니다. 기회는 지금 뿐입니다. 다음은 없습니다. 오늘 예수를 믿고, 지금 여기에서 최선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보라, 지금이 곧 구원의 말이요, 은혜의 날이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