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허무의 열매는 허무일 뿐 _ 김인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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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허무의 열매는 허무일 뿐

– 욥기 15장 31절을 묵상하며

 

<김인석목사 _ 칼빈장로교회>

 

참 믿음은 내적인 변화와 더불어
외적인 삶으로 확인되어야 한다

 

인간이 지각할 수 있는 실제로서 세계란 무엇인가? 실재는 무엇이고 현세는 유일한 세계인가? 인간은 고대로부터 다양한 방식으로 이상향에 대한 갈망이 있었고 다만 함축된 시어(詩語)와 추론만 가능했었다. 이런 면에서 하나님을 아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의 차이란 표면적으로 거의 없는 것 같지만 결과적으로는 다른데 후자의 범위는 다른 세계에 대한 막연한 동경일 뿐이지만 전자는 오히려 현세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의 방식과 수단들에 대한 훨씬 확장되는 개방성을 가진다.

이런 주제에 대한 우리의 사색은 하나님에 대해서 훨씬 더 많은 지식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한다. 성경은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라는 신묘한 의미로써 세계의 근원에 대해서 직설하였다. 이때 계시는 언제나 진실을 포함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 자체일 뿐이다. 성경이 인간의 이러한 호기심을 위해 기록되지 않았어도 천상의 시민권이 허락된 신자들에게 현세를 살면서 동시에 보이지 아니하는 영원한 세계를 지각하며 살도록 인도하고 있다.

죄란 무엇일까? 죄는 능동성을 가진다. 스스로 속으며, 길을 잃는 자도 그러하다. 뱀의 간언에 넘어간 하와도 스스로 먼저 속는 길을 열어놓았다. 미혹과 같은 외부요인은 길이요 통로일 뿐 미혹된 길을 가는 자는 속는 자 자신이다. 이스라엘도 그릇 행하여 하나님을 스스로 떠났다. 다만 하나님의 진실은 소수에 의해서 지켜질지라도 미혹된 자들은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자기가 선호하는 길을 갔을 뿐이다. 거짓 선지자, 거짓 교사들은 디딤돌을 놓았을 뿐이다.

그런데 스스로 속는 자는 불의하고 불법한 일을 보고도 그리고 가는 경우 그들의 마음 속의 탐심이 선행하는 원인이다. 그러나 이런 정도는 보편 양심으로도 분별할 수 있다. 보다 치명적인 것은 스스로 허무한 것에 대하여 확신하고 신뢰함으로 속고 미혹당하는 것이다. 전도서의 ‘헛된 것’은 허무하고 덧없음을 말하지만 욥기의 ‘허무한 것’이란 거짓과 부정함을 뜻한다. 이 단어가 십계명의 제 3계명에 사용된 것이 의미심장하다. 따라서 ‘허무한 것’이란 하나님의 뜻과 목적에 반하는 죄다. 율법에서 정함과 부정함을 구별하는 목적은 사물 자체에 있지 아니하다. 인간에게 허락된 모든 피조물들은 은혜의 성격이 있다. 그러나 주신 이의 명령과 목적에 합당치 않게 사용한다면 세상의 진선미도 허무한 것에 불과하다. 죄가 허무라면 그 열매도 허무한 것이다.

허무함을 좇고 의지하려는 것은 인간의 태생적 본성이다. 죄는 더욱 더 미혹을 받아 속으며 허무한 것으로 기울어지기 쉽다. 인간의 마음은 모든 외부 환경과 조건들 이전에 이미 거짓되고 부패하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도 항상 이러한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때때로 빠질 수 있지만 그럼에도 그들의 선택이 취소되는 일은 불가능하다. 미혹된 자보다 스스로 자기기만에 빠진 자가 더 비참한 이유는 자기 속에 어떤 소망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만물이 하나님으로부터 왔어도 주신 분을 거기서 발견할 수 없다면 만물은 자체로 허무한 것이다. 허무한데에서 나오는 죄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으로 축약될 수 있다. 세상의 모든 좋은 것들의 열매도 불의한 자에게 허무한 것이며 그 열매도 허무하기에 사도는 그것을 사망이라고 이름 붙였다. 첫 범죄의 성격이 보이는 세계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목적에서 벗어난 것이라면 이후 모든 범죄의 본질은 거기에 있다. 따라서 모든 인류는 보이는 것을 과대평가하고 보이지 않는 것은 과소평가한다.

하나님은 모든 생수의 샘이다. 강은 샘의 근원에서 흐르며, 죄의 후손인 인류는 깨진 항아리 같아서 거기에 잠시 담아둘 뿐이며 그마저도 곧 부패시킨다. 허무한 데 의지하지 말고 길이 아닌 곳으로 가지 말아야 한다. 세상의 부요나 영광이나 즐거움이나 위대한 가치가 전해주는 어떤 약속도 하나님을 따르지 않는 한 모두 헛것이요 허무한 것에 불과하다. 죄는 능동적이고 영광으로 가는 길은 수동적이다. 그리스도와 영광의 아버지께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구하는 자가 복되다.

우리는 스스로 속이지 말고 허무한 데 굴복하지 말아야 한다. 만물은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로서 그의 영광으로 돌리는 것이 마땅한 일이다. 참된 믿음은 모두에게 같은 세계에서 같은 삶의 양식과 수단이 주어졌어도 그것을 통해서 보이지 아니하는 영원한 나라를 향하여 살도록 하는 데 있다. 신앙은 그렇게 내적인 변화와 더불어 외적인 삶으로 확인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