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웃으며 회의합시다 _ 조봉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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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칼럼

“웃으며 회의합시다”

 

<조봉희 목사 _ 지구촌교회>

 

교회, 노회, 총회 등에서의 각종 회의는
목회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는 서로를 위로, 격려하며 세워 주는
영혼의 쉼터여야 한다

 

네덜란드의 황금시대 대표적 화가 렘브란트는 100여 개의 훌륭한 자화상 그림을 남겼습니다. 그 중 그가 죽기 일 이년 전에 그린 <웃는 자화상>은 그의 유아기를 연상시키는 인간 본연의 자유로운 모습을 보줍니다. 인간은 웃으며 살 수 있는 멋진 존재입니다. 그래서 철학에서도 인간을 호모루덴스(homo ludens, 유희하는 존재)로 정의합니다. 사람은 웃는 만큼 행복합니다.

웃으며 사는 만큼 자신의 운명과 미래를 스스로 결정하는 것입니다. 미국 버클리대학에서 1958년과 1960년 사이에 찍은 나이 20세 정도의 여학생들의 학급 사진을 분석, 이들의 얼굴 표정과 이후 운명 사이의 관계를 추적 분석했습니다. ‘한 순간의 얼굴 표정이 평생의 운명을 바꿀 수 있을까?’라는 호기심으로 연구를 해본 것입니다. 졸업생 141명을 30년 동안 조사했습니다. 그들이 27세, 43세, 52세가 되었을 때 자녀, 재산, 질병유무 등을 분석했습니다. 결과는 놀라왔습니다. 평소 잘 웃는 얼굴로 다니는 학생들이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공한 세일즈맨 치고 고객에게 웃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최고 의사 예수의 10가지 처방〉을 쓴 Leonard Sweet 박사는, 우리가 계속 웃으며 살면, 꾸준한 조깅을 했을 때 얻을 수 있는 효과와 맞먹는다고 합니다.

“당신이 웃을 때, 모든 조직이 진동한다. 횡경막도 춤을 추며, 세포조직도 춤을 춘다. 모든 세포는 행복해한다. 당신이 행복해지면, 보다 장수하게 되고요. 만일 당신에 세포들에게 이런 진동의 춤을 선사하지 않으면, 당신이 세포들의 생명을 빼앗는 것이다. 그래서 웃음이 명약이다.”

웃음은 아픔을 없애는 카타콜아민의 생성, 칼로리의 연소, 동맥긴장완화, 소화효소 분비촉진, 내분비 계통의 자극에 영향을 줍니다. 웃음은 스트레스 호르몬인 아드레날린, 노르아드레날린, 코르티졸의 분비를 억제하는 기능을 한대요. 또한 웃음은 엔돌핀, 엔케팔린과 같은 진통 완화 물질을 분비하게 하는데. 엔돌핀은 모르핀의 200배, 엔케팔린은 300배의 진통효과를 가져온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이 1회 크게 웃을 때마다 200만원어치의 엔돌핀이 나온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런 원리에 입각하여 웃음을 “내적 조깅”이라고 말합니다. 힘들고 지칠 때면 일부러 크고 유쾌하게 웃어보세요. 사람은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고, 웃어서 행복해진다는 말도 있잖아요. 성인은 하루에 15번을 웃는데, 아이들은 400번 웃는다고 합니다. 당신도 아이처럼 행복해지고 싶다면 웃으세요.

이처럼 하나님은 인간을 웃으며 살도록 만드셨습니다. 사람이 찡그리기 위해서는 80여개의 얼굴 근육들이 움직여야 하는 반면, 미소를 짓기 위해서는 15개의 근육만 움직이면 된다고 합니다. 그러니 웃는 일이 훨씬 더 쉽고 편한 것입니다. 실제로 내가 인상을 쓰고 있으면 온 세상이 짜증스러워 보입니다. 하지만 내가 웃고 있으면 세상도 따라 웃습니다. 더구나 마귀는 절대로 웃지 않습니다. 비웃을 뿐입니다. 또한 우리의 뇌는 실제와 상상을 구분하지 못하는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억지로, 거짓으로 웃더라도 우리 안에는 실제 웃는 것과 똑같은 반응이 일어납니다.

알렉시스 카렐 박사는 ‘얼굴색깔과 위 색깔은 같다.’라고 말합니다. 얼굴이 웃으면 위도 웃습니다. 얼굴을 찡그리면 위도 찡그리게 됩니다. 그래서 소화불량에 걸리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웃는 만큼 스트레스에서 해방되고 치료의 효과가 있습니다. 웃는 만큼 위장도 신나게 활동합니다. 즐겁게 웃고 난 사람의 뇌를 조사해 보니 놀랍게도 독성을 중화시키고 웬만한 암세포라도 죽일 수 있는 호르몬을 다량 분비시킨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교회생활이나 목회현장에서 잘 웃지 않는 현상이 있습니다. 우리 중 어떤 분들은 교회에서의 여러 기관회의, 제직회, 당회, 노회, 총회에 참여할 때 왜 그처럼 엄숙하고 비장한 각오로 참여하는 것일까요? 왜 웃음을 상실한 회의로 전락할까요? 회의가 시작되면 너무나 경직된 모습으로 마치 사생결단하여 무언가를 쟁취하려는 자세로 발언을 할까요?

교회와 교단 안에는 수많은 종류의 모임과 회의가 있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즐겁게 토의를 하고 회의를 하는지 진단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회의 현장에서 서로 웃으며 교제하고, 즐겁게 조율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제직회나 당회가 웃으며 회의하는 만큼 교회 전체가 건강한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노회는 수많은 목회자, 장로님, 특히 목회자 후보생들에게 거룩한 회의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현장학습이기도 합니다. 다음 세대 목회자들에게 회의를 효율적으로 하는 기본원리, 자신의 의사를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커뮤니케이션 기술, 다양한 의견을 수용하는 포용성, 여러 가지 분분한 의제를 가장 덕스럽게 합의 도출하는 표본을 보여주는 살아 있는 임상교육 현장입니다. 신학교에서의 교과서 교육을 뛰어넘는 목회실습 장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회의 중에도, 끝난 후에도 즐거운 마음으로 돌아가도록 해야 합니다. 혹시 무겁고 씁쓸한 마음으로 돌아가는 회의가 되었다면 그 근본을 자성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노회나 총회는 한 교단에 속한 목회 동지들의 연합체입니다. 일 년에 한두 번 만나는 교제공동체입니다. 따라서 서로 반갑고 즐거운 프렌드십과 파트너십을 나누는 행복의 플랫폼이어야 합니다. 모처럼 각 교회의 지도자들, 목회 동역자들, 친구들, 선후배들이 함께 교제하는 만남의 광장입니다. 우리는 친구(friend)로 모이는 것이지, 적(foe)으로 만나는 것이 아닙니다. 목회현장에서 고군분투하는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며 세워주는 영혼의 쉼터여야 합니다. 그러니 서로 해맑게 웃는 행복 충전소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하는 ‘거룩한 공회(공동체)’의 본질입니다.

부족하지만 저는 지금까지 당회나 여타 회의를 하면서 웃음 없이 진행해 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서로 즐겁게 웃다가 당회를 마칩니다. 얼마 전에도 새해를 위한 당회정책회의를 하는데, 어느 장로님이 참으로 귀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당회가 은혜롭지 않다는 것이 이상한 현상 아닌가요?” 참으로 감동적인 말씀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선의의 목적으로 열띤 논쟁을 하다가도 마지막은 웃음으로 마무리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마지막에 웃는 자가 진정한 승자입니다. 그러므로 많이 웃으며 살아갑시다. 특히 회의를 즐거운 코이노니아 모임으로 향상시켜 나갑시다. 우리의 웃음도 거룩한 사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