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올바른 구원의 확신을 공유하라 _ 변세권 목사

0
57

시론

올바른 구원의 확신을 공유하라

 

<변세권 목사 _ 온유한교회, 합신 총동문회장>

 

구원의 확신은 하나님 중심적이며
객관적(교회적)이어야 한다

 

우리에게 그리움을 한 움큼 남겨 놓고 떠나신 박윤선 목사님을 생각하니 30년이 지나도 그 사랑을 다 채울 길이 없다 그러나 이제 그 분의 가르침의 의미를 깨달았으니 그를 따라 모두 바른길을 걷자. 무엇보다 올바른 구원의 확신 문제를 살펴보기 바란다.

본래 성도로서 구원의 확신을 갖고 살아가는 것은 매우 유익하다. 하지만 이것이 ‘자신의 주관적 섭리’가 되면, 당연 참된 확신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문제를 야기한다. 더 기막힌 것은 사실상 구원 받지 못했음에도, 소위 유명하다는 목사들에게 속아 거짓된 자기 확신에 빠져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자들은 평생 참된 구원의 길을 모른 채, 지옥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는 이단 및 사이비의 경우가 대체적이지만, 제도권 교회 내에도 없다고 단정하거나 안심할 수는 없다.

구원의 확신 문제와 관련하여, 전통적인 해법은 지정의적 변화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지성에 빛이 들어오고, 감정이 통하고 행동이 변하는 데서 구원의 확신을 갖게 하는 방법이다. 근대에 코르넬리스 프롱크(Cornelis Pronk)는 삼단 논법을 제시한다. 첫째,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믿으면 영생을 얻는다. 둘째, 나는 그리스도를 믿는다. 셋째, 그러므로 나는 영생을 얻었다. 하지만 여기서 두 번째 명제가 사실 주관적 확신이라는 데서 여전히 불확실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관점은 로이드 존스(David Martin Lloyd-Johns)가 “구원과 관련된 성경 구절에 대한 추론의 과정을 통해 확신을 가질 수 있고, 그러한 확신은 성령의 역사에 의한 것이다”라고 한 것과 같은 맥락이라 자기 주관적인 것이다. 존 파이퍼(John Piper)가 ‘구원하는 믿음’이라고 하는 주제 하에, ‘첫째, 자신의 마음에 비취는 빛(확신)이 있어야 하고, 둘째, 영광의 복음 안에 보장되어 있는 ’안식을 실제로 누린다.‘는 데서 ’구원의 확신‘을 갖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성도 자신의 심리적 확신을 전제하는 것이므로 역시 정확하지 못한 주장이다. 이 두 학자는 오늘날 교회 개혁 진영에서 두드러진 지도자들임에도, 여전히 은연중에 인본주의 구원의 확신의 전통을 이어가는 모습으로 보여 무척 아쉽다.

올바른 구원의 확신은, 미묘한 함정을 잘 피하고, 정확한 근거를 붙잡는 것이어야 한다. 미묘한 함정이란, 아무리 이렇게 저렇게 표현할지라도 결국에는 주관적 확신일 수밖에 없는 그런 논증들을 조심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분명 주관적 확신이라고 해서 전부 무익한 건 아니고, 어느 정도 필요하기도 하다. 하지만, 확신에 대한 ‘결정적 근거’로 삼을 경우 매우 위험하다.

그러면 결정적 근거란 무엇일까? 하나님의 구원 방식인 ‘영원전의 선택’ 및 그것의 ‘언약적 시행’에 자신이 지금 포함되어 있는가를 보는 것이어야 한다. 성경이 명백히 선포하고 있듯이, 먼저는 ‘창세전의 선택’이 있다. 이것이 언약의 형식이 되어 역사 속에서 펼쳐졌다. 그리하여 지금 교회라고 하는 모습으로서 시간과 세계 속에 나타나 있다. 즉 지금은 ‘새 언약의 성취’가 부상한 시대이다.

정리하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작정을 시행해 나가심에 있어서 지금이라고 하는 이 시대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출현시켰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가운데, 그에 따라 올바른 교회에 속하여 있고, 올바른 교회를 이루고, 올바른 교회를 선양하는 삶을 살고 있는 데서 그러한 사람은 이미, 벌써, 실로, 구원의 확신 가운데서 살고 있는 것이다.

가령, 다윗이 구원의 확신 속에서 살아갔을 때 좀 더 구체적으로 그는 어떤 삶을 살았던 것일까? 신정정치 체제로서 경영되는 ‘하나님의 나라’의 건설자로서 평생을 보냈던 것이다. 사도 바울이 구원의 확신 속에서 살아갔을 때 그는 어떤 삶을 살았던 것인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로서의 직무 수행에 충성하여 평생을 다해 이방 지역에 교회를 세워나갔다.

그렇듯이, 지금의 우리로서도 자신이 속해있는 공동체가 보다 더 교회답게 성립되고 활성화 되는 일에 이미 가담해 있고 계속 기여하고 있는 것이므로, 그렇다면 이미 하나님께 붙잡혀 있는 것이고 따라서 내일도 계속 그러할 것이다. 바로 이것이 바울이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빌 3:12)고 한 바 의미이기도 하다. 구원의 확신은 이렇게 하나님 중심적이며 객관적(교회적)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