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르트 총회 400주년 기념 세미나_ 강의(2) | 도르트 신경과 교리 강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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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르트 총회 400주년 기념 세미나_강의(2)

도르트 신경과 교리 강설

<이승진 교수_합신|설교학>

 

* 지난 7월 10일 합신, 대신(수호) 교단 교류추진위원회 공동 주최로 열린 연합 세미나 두 번째
강의 논문을 편집상 부분 발췌하여 소개함에 필자와 독자의 양해를 구한다. – 편집자 주

 

도르트 총회 광경

“교리 강설의 과정은 서론의 문제 제기,
  성경적인 논증과 복음 선포,
  예증을 통한 교리의 확증,
  결론의 적용점 제시로 구성된다”

 

V. 도르트 신경에 관한 교리 강해 설교의 방법

  1. 교리 강설에 관한 연속 설교의 계획 세우기

   튤립 교리를 설교하려고 할 때 주제별 연속 설교를 계획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첫째는 다섯 가지 튤립 교리를 5회에 걸쳐서 순차적으로 설교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은 설교 서론에서 알미니우스와 항론파의 주장을 먼저 언급하고 성경적인 오류를 지적한 다음에 도르트 신경이 제시하는 올바른 교리와 그 적용점을 제시하는 순서로 진행된다.

① 인간의 부분 타락 VS 전적 타락
② 하나님의 조건적인 선택 VS 무조건적인 선택
③ 그리스도의 보편 속죄 VS 제한 속죄
④ 신자가 거부할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 VS 거부할 수 없는 은혜
⑤ 신자라도 타락하여 지옥에 갈 수도 있다 VS 믿음으로 인내하도록 도우시는 성령님

   위의 순서보다 좀 더 자세하고도 길게 도르트 신경을 연속 설교할 수 있는 방법은 59개 조항으로 구성된 도르트 신경을 같은 교리 항목으로 구분하여 자세하게 강해하여 설교하는 것이다. 연구자는 두 번째 방법을 따르되 각각의 교리 항목들을 다음과 같이 네 가지 교리의 범주로 구분하고 각각의 교리를 강설할 수 있는 실제적인 개요를 제시하고자 한다.

① 성부 하나님의 선택과 유기, ② 그리스도의 대속사역과 구원
③ 전적 부패와 회심의 은혜, ④ 성령의 역사와 성도의 견인

   이상의 네 가지 교리의 범주는 한편의 설교로 다 다룰 수도 있고, 설교의 상황을 고려하여 좀 더 세부적으로 나누어서 자세하게 연속적으로 설교할 수도 있다. 본 논문에서는 네 가지 항목으로 나누어서 해당 교리에 관한 설교의 개요를 제시하고자 한다. 각각의 교리에 관한 강설의 기본적인 구조는 서론에서 문제를 제기하는 단계로 시작하여 해당 문제와 관련된 성경 본문을 주해하는 단계와, 본문 주해에 근거한 교리 확정과 복음 선포, 그리고 설교의 결론부에서 해당 교리가 지향하는 적용점을 회중에게 제시하는 단계로 진행된다.

 

  1. 교리 강설의 효과를 위한 서론의 문제점 설정

   앞서 확인한 바와 같이 교리 강설이 목회적인 목적을 효과적으로 달성하려면 반드시 청중을 실천신학적인 인간론의 관점에서 이해해야 할 뿐만 아니라 설교 서론에서 청중의 상황화에 근거하여 청중의 문제점, 특히 범죄와 부패, 그리고 죄악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뜻을 대적하고 거스르는 문제점을 분명하게 지적할 수 있어야 한다.

   개혁주의 설교학자인 브라이언 채플(Bryan Chapell)은 이 과정을 가리켜서 타락한 상황에 초점 맞추기(Fallen Condition Focus, FCF)라고도 한다. ‘타락한 상황에 초점 맞추기’는 설교의 핵심 사상이 청중의 (죄악된) 상황을 향하여 정조준하도록 설교에서 청중의 상황을 고려하는 단계를 가리킨다. 특히 설교의 서론에서 청중의 죄악과 부패, 하나님 앞에서의 불가능성의 문제를 지적하는 단계를 의미한다.

   서론에서 청중의 상황화 작업은 2가지 방식으로 진행된다. 첫째는 설교 주제에 관한 청중의 관심을 유발하기 위하여 설교 주제에 관한 문제 제기의 단계이고, 둘째는 복음 선포를 준비하기 위하여 인간의 죄악을 고발하는 것이다. 도르트 신경에 관한 교리 강설의 서론에서 문제를 제기하는 방법으로는 항론파의 주장을 풀어서 설명하는 방법과 항론파의 주장의 저변에 깔려 있는 논리를 신자들의 신앙생활에 대입하여 설명하는 방법으로 나뉜다. 이 두 가지 방식을 별도로 진행할 수도 있고 하나로 통합해서 진행할 수도 있다.

 

VI. 도르트 신경에 관한 교리 강설의 개요

  1. 성부 하나님의 선택과 유기

   성부 하나님의 선택과 유기에 관한 교리 강설의 목적은 신자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전적인 부패의 문제점을 심각하게 깨닫고, 그 죄악을 회개하며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총의 필요성을 강하게 인지하고 그런 과정을 통해서 얻은 구원의 은혜와 그 절대적인 확실성을 감사하도록 하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설교자는 서론에서 청중의 상황에 맞게 문제를 제기하여 그 문제 상황 안에서 청중을 포획해야 한다.

1) 서론의 문제 제기

   설교자가 ‘성부 하나님의 선택과 유기’에 관한 교리를 신자들에게 설득력 있게 설교하고 교육하려면 먼저 신자 편에서 이 주제와 관련하여 고민함직한 문제를 제시해야 한다. 그 방법으로는 알미니우스의 잘못된 입장을 그대로 소개하거나, 신자들이 겪는 고난이나 불신앙의 원인을 하나님의 무관심이나 유기의 책임으로 돌리는 경우를 지적하는 것, 그리고 신자 자신이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이유를 자신의 노력과 선행 때문이라고 자만하는 문제를 지적하는 방법이 있다.

   ① 알미니우스의 잘못된 견해를 소개하는 방식 – 알미니우스와 항론파들은 (첫째 교리의 2번 오류에서) 창세전 하나님의 선택에는 불완전하며 철회될 수 있고 확정적이지 않으며 조건적인 선택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들은 (첫째 교리의 4번 오류에서)“믿음으로 선택받으려면 선수 조건으로서 사람이 본성의 빛을 바르게 사용할 뿐 아니라 경건하고 겸손하고 온유하며 영생에 합당한자가 되어야 하며 선택은 이런 것들에 어느 정도 의존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알미니우스와 항론파들, 그리고 오늘날의 알미니안들은 하나님이 창세전에 신자들을 선택하신 이유는 누가 예수를 믿을 것인지 안 믿을 것인지를 미리 아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예지 예정이라고 합니다. 신자가 나중에 예수를 믿을 것을 미리 아신 하나님은 그 신자 편에서의 믿음이라는 좋은 성품과 조건을 미리 내다보시고 그 좋은 성품과 자질에 근거하여 그를 신자로 예정하셨다는 것입니다.

   ② 신자들이 겪는 고난이나 불신앙의 원인이 하나님의 무관심 때문이라고 오해하는 경우 –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오해합니다. 내가 아직도 구원 받지 못한 이유는 하나님이 나를 적극적으로 구원하시려는 계획이나 의지가 없기 때문이라고.. 내가 이렇게 고난을 당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시기로 창세전에 선택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나름대로 하나님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성경책도 읽어보고 교회도 나와서 성의를 표시했지만 그 때도 하나님은 침묵하시고 전혀 나를 만나주지도 않고 찾아와 주시지도 않고 오히려 내 문제를 외면하셨다고 생각합니다.

   ③ 신앙생활의 가시적인 행복의 근원을 자신의 선행이나 노력에 두는 경우 – 오늘날에도 일부 신자들은 자기가 예수를 믿어 구원을 받은 것이 자신의 경건심과 영적인 일에 대한 차원 높은 관심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들은 교회에 나와서도 예배를 드리고 신앙생활을 감당하고 또 기도에 응답을 받는 이유가 자신의 경건과 선행, 그리고 남보다 더 간절하게 금식하며 기도하는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말하자면 자기가 하나님에게서 은혜의 선물을 받고 복을 받으며 기도 응답을 받는 것은 자기가 다른 신자들에 비하여 그럴만한 자격과 조건을 더 많이 갖추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2) 성경적인 논증과 복음 선포

   하나님 앞에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생각할 때 일차적으로 가장 먼저 기억할 것은, 저와 여러분은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거스르고 대적하며 온갖 죄악을 일삼기를 즐기는 죄인이라는 사실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다”(롬 3:10-12)고 말씀합니다.

   저와 여러분은 때로는 애굽의 바로처럼 반복적으로 주님의 말씀을 거역했습니다. 또 때로는 젊은 부자 관원처럼(눅 18:18-23) 주님이 분명 진리를 말씀해 주심에도 불구하고 우리 마음속의 탐욕 때문에 그 말씀을 따르기를 거부했던 자들입니다. 주님은 우리 인생 속으로 들어오셔서 여러 방법으로 우리를 지배하는 악한 귀신들을 분명 쫒아내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주님이 내 인생으로부터 떠나주시기를 바랬던 패역한 사람들이었습니다(Cf, 마 8:28-34).

   모든 죄인은 하나님 보시기에 같은 수준입니다. 죄인들은 모두 저주 아래 있습니다. 모두가 하나님 보시기에 정죄받았기에 죄인들은 모두 같은 자리에 서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를 매우 겸손하게 합니다. 그리고 우리를 겸손하게 하는 것이 바로 선택 교리가 의도하는 바입니다.

   도르트 신경에 관한 교리 강설의 선례를 제시하는 프롱크 목사는 다음과 같이 서론을 시작한다.

   “성경은 많은 부분에서 우리에게 믿고 회개하라고 권고하지 않나요?” 예 맞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에게 믿고 회개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믿고 회개하라고 명령하신다는 사실 자체가 사람이 믿고 회개할 본성상의 능력이 있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아르미니우스주의자들은 “해야 한다”고 규범을 제시하는 구절에 근거하여 신자는 “할 수 있다”고 결론을 내립니다. 우리가 “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 성경은 풍성하고도 명백히 증언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또한 우리가 스스로 행할 수 없다고 가르칩니다.

3) 예증을 통한 교리의 확증

   예전에 TV 방송 중에 ‘화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이 프로그램에 60대 엄마와 40대 아들이 출연했는데, 이 아들은 10여 년 전에는 아주 유명한 가수였습니다. 많은 인기를 모으면서 잘 나가다가 그만 자만심에 빠져서 가벼운 마음에 음주운전을 했고, 음주 단속에 걸렸고 언론에 공개되는 바람에 그만 그 인기가 땅으로 추락을 하고 말았습니다. 더 이상 방송에도 출연할 수도 없고 사람들이 찾아 주지도 않습니다. 할 수 없이 유흥업소 밤무대 가수로 근근이 버티는데 그 부모님들 입장에서는 자식이 그렇게 힘들게 사니까 얼마나 마음이 안타깝겠습니까? 엄마의 마음도 참 너무 힘들겠지요. 엄마가 자식을 버리다시피 했지만 엄마는 결코 자식을 버릴 수 없기 때문에 두 사람이 서로 화해하기 위해서 방송에 출연했습니다. 동남아 여행을 가면서 길거리에서 엄마가 아들에게 간절한 심정으로 권면합니다. 마침 아들도 연예 프로그램에 다시 출연도 하면서 조금씩 실력을 쌓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이름이 승진이라고 합시다.

   “승진아! 너 예전에 절제하지 못해서 그렇게 고생했는데 이제 앞으로는 잘 해야 한다. 인생을 막 살려고 하면 안 돼.” 엄마의 그 안타깝고 간절한 마음이 저한테도 느껴집니다. 그러자 아들이 대답합니다. “그래 엄마! 그동안 10년을 고생했으니까 앞으로는 잘 할께.” 아들이 그렇게 진지하게 대답하는데 엄마는 맘속에 그동안 고생한 것이 잊어지지 않으니까 이렇게 잔소리를 이어갑니다. “너의 문제는 대답을 너무 쉽게 하는 것이야. 너 인생이 그렇게 쉬어 보여? 아직도 너 인생을 그렇게 막 살려고 하는 거야?” 엄마의 마음에는 10년 동안 아들이 그렇게 사회 밑바닥에서 고생하면서 아들이랑 같이 고생한 세월이 마음속에서 쉽게 지워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들한테 계속 잔소리를 하는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서 아들이 좀 짜증스럽다는 듯이 대꾸합니다. “엄마! 또 잔소리야. 아니 그럼 지금 내가 말이라도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데, 엄마는 내가 말을 쉽게 한다고 하면 지금 어쩌자는 거야?” 그러니까 엄마가 더 화를 냅니다. “아니, 지금 이 상황에서 화를 낸다면 누가 내야 하는 거니, 네가 어떻게 나한테 화를 낼 수 있어.”

   이 두 사람이 모자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서로 화해하지 못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아무리 피를 나눈 모자 관계이고 또 화해를 하고 싶더라도 두 사람의 힘으로는 결코 화해할 수 없는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인간의 근본적인 한계입니다. 아무리 자식을 사랑하더라도 엄마는 자기 힘으로 사랑하는 아이의 미래를 행복의 관점에서 바라볼 수 없습니다. 네 미래가 희망으로 가득 찼다고 확신을 가지고 말해 줄 수 없습니다. 그 미래 행복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계시로만 가능합니다.

4) 결론의 적용점 제시

   ① 자만심에 대한 회개 – 지금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형편과 처지를 생각할 때 우리에게 무슨 선한 성품이나 열심을 먼저 떠올린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판단하는 수평적인 사고 때문입니다. 수평적인 사고로는 절대로 하나님을 제대로 만날 수 없습니다. 신자라면 반드시 수평적인 사고에서 수직적인 사고로 전환해야 합니다.
   오직 거룩하시고 공의로우신 하나님만을 먼저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 분 앞에 서 있는 내 모습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무한히 밝고 거룩한 불꽃같은 눈으로 나를 지켜보고 계시는 하나님의 시선으로 내 자신의 내면을 내려다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시선으로 내 자신을 내려다본다면 우리는 결코 그 분 앞에서 그 어떤 좋은 성품이나 능력, 어떤 열심을 내세울 수 없을 것입니다.

   ② 전적 타락을 인정하며 은혜를 구함 – 나의 불신앙이나 고난의 책임을 하나님과 연관지어 생각할 때 절대로 그 책임을 하나님께 떠넘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히려 거룩하시고 공의로우신 하나님, 이 세상의 모든 눈보다 더 희고 이 세상의 모든 빛들보다 더 밝으신 하나님을 거울삼아서 그 앞에 엎드리시기 바랍니다. 그분 앞에서 분명히 드러나는 우리 내면의 추악한 죄악을 인정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렇게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주님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주님으로부터 구원의 선물을 받고 천국에 다 들어가는데도 나 혼자만 못 들어가더라도 그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임을 인정합니다. 나는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하나님을 대적했기 때문에 이 모든 범죄 때문에 지옥에서 영원토록 형벌을 받을 수밖에 없는 그런 죄인인 것을 인정합니다.”

   이토록 추악한 죄인인데도 불구하고 과연 나는 구원받을 수 있나요? 주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이런 나를 긍휼히 여겨 주시옵소서. 이렇게 간절히 주님의 은혜를 구하는 자들을 우리 주님은 결코 외면하지 않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