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뜨락| 전도 가방 둘러메고_윤순열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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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뜨락

전도 가방 둘러메고

<윤순열 사모_서문교회>

 

생각지 않은 곳에서 새 신자가 등록케 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계산 방법

  지난밤부터 촉촉하게 내리는 비 덕분에 오랜만에 집에 앉아 한가로운 시간을 가져봅니다. 저는 주일을 제외한 모든 날에 전도를 나갑니다. 오후 2시면 동행자가 없어도 저 혼자 전도 가방을 둘러메고 동네로 나갑니다.

  이곳은 앞뒤로 아파트가 숲으로 빽빽이 둘러싸인 신도시입니다. 왼쪽으로 4000세대, 오른쪽으로 3월에 1560세대가 입주했습니다. 새로운 아파트가 입주하는 시기에는 외출도 삼가하고 약 삼 개월 동안을 입주 전도에 올인했습니다. 그때는 12월부터 3월까지로 동장군과 한파가 몰아치는 한겨울이었습니다. 마호병 25개를 사가지고 생강과 계피를 넣어 팔팔 끓여서 식지 않게 마호병에 넣은 후 손 수레에 싣고 미끄러운 눈길과 빙판 길을 걸어서 입주하는 모든 세대를 거의 빼놓지 않고 방문했습니다.

  처음에는 전도 물품을 너무 많이 가지고 가서 힘들었지만 자꾸 다니다 보니 요령이 생기더군요. 아파트 경비 아저씨들과도 친분을 맺어서 그날그날의 입주 정보를 얻어내는 기지도 발휘했습니다. 따끈따끈한 생강차는 아무나 주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다니는 집이면서 멀리서 이사 온 집이 1순위였습니다. 사람들은 저에게 묻더군요. 얼마나 전도가 되었느냐고? 여기에 대해서 저는 뭐라 자신 있게 자랑하거나 내놓을 만한 것이 없습니다. 안수집사님 한 가정이 유일한 등록자이고 요즘 젊은 부부가 매주 출석하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몇몇 분들과 관계를 맺어서 교제하는 정도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생각지 않은 곳에서 새 신자가 등록하는 일들이 생겼습니다. 예년에 비해 놀라운 일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계산 방법이구나! 하고 놀라울 따름입니다.

  복음의 씨를 뿌리러 나갈 때는 정말 춥고 힘들었습니다. 주변을 보니 저처럼 열심을 내는 교회나 개인도 별로 없었고 저 혼자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매일매일 입주자들을 찾아다니고 있더군요. 전도는 쉽지 않았습니다.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않아야 되는데 이런 경우는 낙심이 됩니다. 열심히 전도했는데 큰 교회로 가버릴 때 오히려 안 믿는 자들에게서보다 믿는 자들에게서 받는 상처가 더 큽니다. 나도 모르게 대형교회 울렁증과 피해망상자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온종일 발품을 팔아도 우리 교회는 오지 않고 앞의 큰 교회 교패만 늘어날 때면 힘이 빠집니다.

  이곳 신도시로 이주하기 전 있었던 일이 생각납니다. 지금은 그곳이 재개발되어 새로운 도시가 되었지만 옛날 그곳은 서민들이 살고 있는 열악한 동네였습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아담한 교회를 짓고 목회하고 있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저는 언제나 낮이면 전도를 쉬지 않고 하는 편입니다. 그때도 나지막한 빌라 동네를 4,5층씩 오르내리면서 벨을 누르며 전도지를 넣고 집에 와서 쉬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양복에 넥타이를 한 말끔한 남자분이 찾아와서는 두서없이 화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그 분은 화가 나서 몹시 흥분했는지 소란을 피웠습니다. 시끄러운 소리에 남편이 나왔고 남편은 그 분의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분위기를 가라 앉혔습니다. 그 분은 놀랍게도 동네의 안 믿는 불신자가 아니었고 동네의 후미진 곳에서 지하실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목사님이었습니다. 이유인즉, 왜 자기 교회 옆에 까지 와서 전도지를 넣었느냐며, 이것이 화가 난 동기였습니다.

  목사님은 시골에서 목회하시다가 얼마 전에 올라오셔서 목회 하고 있는데 너무 힘들다는 이야기와 작은 교회로서 위축감과 피해 의식을 느낀 듯했습니다. 사람 좋은 저의 남편은 그 분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 분은 화를 가라앉히고 돌아갔습니다. 참으로 가슴 아프고 애처로운 일이었습니다. 얼마 후 그 분은 이곳에서 더 이상 목회를 할 수 없어 시골로 내려간다며 한 명뿐인 교인을 우리 교회에 소개해 주고 떠났습니다. 사역에 지치고 힘들어 우리 교회까지 찾아와 소란을 피우던 그 목사님의 모습이 가슴 아픈 애처로움으로 제 가슴속에 지금까지 남아 지워지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