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계속해서 사는 길을 제시하라_최광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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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계속해서 사는 길을 제시하라

<최광희 목사_행복한교회>

 

하나님은 에덴동산에서 그의 말씀을 안 듣는 인간을 끝내 찾아와 살 길을 제시해 주심

  사람이 살다보면 종종 매우 나쁜 결정을 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어떤 단체는 다수의 사람들이 엉터리 결정을 하면서 옳은 주장을 하는 사람은 바보로 만들어 버릴 때도 있다. 어떤 경우에는 그들에게는 결정권이 있다. 때로는 그들은 말로 선동을 잘 한다. 그렇게 잘못된 결정을 한 결과 그들이 화를 당하는 것을 보면 참 답답하다. 게다가 그들의 나쁜 결정으로 나에게까지 고스란히 피해를 입는 경우도 있는데 그럴 때는 너무나 허탈하고 화가 난다. 그럴 때는 정말 어쩌면 좋단 말인가?

  사도 바울도 그런 경험을 했다. 바울이 죄수 아닌 죄수 신분이 되어 로마로 호송되어가던 때의 일이다. 호송 책임자인 백부장 율리오(Julius)는 바울을 좋게 봤다. 그래서 중간 기착지인 시돈(Sidon)에서는 바울이 친구들을 만나고 올 수 있도록 배려도 해 주었다. 그랬던 율리오이지만 그레데(Crete)의 미항에서는 바울을 그저 죄수로만 취급했다. 여행 경험이 많은 바울은 계절상 더 항해하는 것이 위험할 것으로 판단하고 미항에서 겨울을 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더 항해를 하다가는 화물과 배는 물론이고 생명까지 피해를 입을 것이라고 바울은 강력히 주장했다.

  그런데 바울과는 달리 선장과 선주는 미항보다 조금 더 가서 뵈닉스(Phoenix) 항구에서 겨울을 나는 것이 여러모로 좋다고 주장했고 백부장은 그쪽 손을 들어주었다. 때 마침 남풍이 순하게 불어왔고 그들은 배를 출발시켰다. 이렇게 순풍까지 불어주자 선장과 선주 및 출항을 주장했던 사람들은 바울을 얼마나 비웃었을까? 어쩌면 바울도 창피하게 여겼을 지도 모른다. 잠시 순풍이 불지만 언제 폭풍이 몰아칠지 모르는데 출항을 하는 것을 보면서 바울은 안타까워서 마음이 타들어갔을 것이다. 하여간 알렉산드리아호(Alexandrian ship)는 순풍에 돛을 달고 출항했다.

  그런데 무슨 일이든지 잠시 순풍이 분다고 다 잘 될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알렉산드리아호가 출항한지 ‘얼마 안 되어’ 그레데 섬 가운데에서 유라굴로(Euraquilo) 광풍이 불기 시작했다. 결국 배는 돛을 내리고 바람에 떠밀려가기 시작했다. 선원들은 우선 값비싼 화물을 버렸다. 그래도 안 되겠는지 사흘 때 되는 날에는 배의 장비들까지 자기들 손으로 내버렸다. 배에 양식은 남겨 놓았지만 밀을 갈아 빵을 만들 정신이 없어서 다들 굶고 있었다.

  처음부터 바울의 말을 들었어야 했다. 바울은 처음부터 이렇게 될 것을 예견했다. 화물과 배뿐 아니라 생명까지 위험하다고 분명하게 말했다. 그럼에도 옳은 말을 하는 사람을 바보로 만들어 버리고 결정권을 가진 사람들이 바울의 말을 무시하더니 이 무슨 꼴이란 말인가? 그들의 결정으로 자기들만 고생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제 바울을 포함한 276명이 모두 죽게 생겼다. 한 배를 탄 공동 운명의 바울은 이제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그들을 미워하거나 원망하거나 항의하거나 저주한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러기를 무려 14일째, 바울은 다시 그들 가운데 서서 사는 길을 내어 놓았다. 기도하는 사람 바울은 그들에게 배는 파선되겠지만 사람들의 생명을 구조될 수 있다고 말했다. 처음부터 바울의 말을 들었어야 했다는 말도 빠뜨리지 않았다. 이런 위기 속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려주었고 자신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자기의 신앙을 고백했다.

  살다보면 한 배를 탄 것 같은 공동 운명체, 같은 단체에 속한 사람들이 나의 옳은 말을 들어주지 않을 때가 있다. 내게는 뻔히 보이는 것을 그들을 보지 못하고 잘못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다수결로 잘못된 결정을 할 때가 있다. 혹은 결정권을 가졌다는 이유로 망할 길로 가는 경우가 있다. 그 속상하고 화가 나는 상황에서는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경우에 하나님의 사람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바울은 정말 좋은 본보기를 보여주고 있다. 바울이 보여준 정답은 그런 상황에서 다시 사는 길을 제시하는 것이다. 내 말 안 들었으니 죽든지 말든지 내버려 둔다면 속은 후련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지혜로운 사람의 처신이 아니다. 그렇게 해서는 하나님에게나 나에게나 다른 모든 사람에게나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것은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다.

  하나님은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은 인간을 끝내 찾아오시고 살 길을 제시하여 주셨다. 죽을 위기에서 선장과 백부장은 바울의 말을 들었지만 사람들은 지금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있다. 그런데 하나님은 지금도 계속해서 멸망 길로 가는 사람들에게 사는 길을 제시하고 계시다. 하나님이 바로 그런 분이시기에 하나님의 사람의 선택도 계속해서 사람들에게 사는 길을 제시하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