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교육특강| 교회의 교회됨 요한계시록 2:8-11_이복우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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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교육특강

교회의 교회됨

-요한계시록 2:8-11-

< 이복우 교수_합신|신약학>

 

모든 교회는 각각 형편이 다를지라도 주님의 말씀을 들어야 참 교회이다

주님은 교회의 모든 정황을 아시므로 그의 말씀은 교회에 가장 적실하다

교회는 말씀을 잘 듣도록 체계를 만들어 성도들의 참여를 독려해야 한다

사역자가 무엇보다도 말씀을 잘 가르침이 교회 부흥과 회복의 비결이다

 

  1. 일곱 교회에 보낸 한 통의 편지

  요한계시록 1:11에 보면, 부활하신 예수께서 사도 요한에게 “네가 보는 것을 두루마리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등 일곱 교회에 보내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에 따라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했다(계 1:4). 이 서신에는 크게 두 가지 특징이 있다. 먼저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임에도 불구하고 편지를 의미하는 ‘두루마리’(βιβλίον)라는 단어가 복수가 아닌 단수이다. 이것은 일곱 교회에 보내는 서신을 ‘하나의 두루마리’에 써서 보내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이 편지는 일곱 교회가 차례대로 돌려보도록 회람용으로 작성된 한 통의 편지였다. 이 사실은 일곱 교회들이 언급된 순서가 편지를 회람하기 좋도록 당시의 도로를 따라 시계 방향의 순서로 되어 있다는 점에서도 분명하다. 둘째로 이 편지가 기록될 당시에 수신 교회들이 있었던 아시아에는 일곱 개 이상의 교회가 있었다. 그런데도 주님은 오직 일곱 교회에만 편지를 보냈다. 사도 바울은 골로새서 4:13에서 이렇게 말씀한다. “그(에바브라)가 너희(골로새교회)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히에라볼리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많이 수고하는 것을 내가 증언하노라.” 여기서 사도 바울은 그 당시 아시아에 라오디게아교회뿐 아니라 히에라볼리교회와 골로새교회도 있었다는 것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런데도 주님께서 단지 일곱 교회만 선정하여 서신을 보내신 것은 숫자 7이 가지는 상징성 때문이다. 요한계시록에서 숫자 7은 완전과 완성 또는 총합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편지의 대상인 일곱 교회는 지역 교회이면서도 동시에 시공을 초월하여 역사상 존재하는 모든 교회를 상징하고 있다.

  따라서 주님께서 오직 일곱 교회에, 그것도 단 한 통의 회람용 서신을 보낸 것은 이 서신의 내용이 이 땅의 모든 교회들에게 공통으로 주시는 우주적 메시지이자 보편적 도전이며, 1세기를 넘어 항구적인 가치를 가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이유로 일곱 교회에 주시는 메시지가 따로따로 분명하게 구분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각 메시지의 마무리 부분은 모두 동일하게 “성령이 ‘교회들에게’(ταῖς ἐκκλησίαις)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로 되어 있다(계 2:7, 11, 17, 29; 3:6, 13, 22). 주님은 이 세상에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있을’ 모든 교회들이 반드시 들어야 할 말씀을 이 편지에 써서 보냈다. 그러므로 이 서신은 교회가 어떠해야 마땅한가 하는 교회의 교회됨에 대한 주님의 교훈을 주고 있다.

 

  1. 교회의 교회됨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다. 이것이 교회의 본질이다. 예수님은 1:11에서 요한에게 “두루마리에 써서 … 일곱 교회에 보내라”고 말씀하셨고, 2:8에서는 “너는 서머나에 있는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써서 교회에 보내라”는 말씀과 “교회에게 편지하라”는 말씀은 따지고 보면 “교회는 주님의 말씀을 들으라”는 명령과 같은 말이다. 이런 까닭에 “편지하라”(8a)는 명령에 이어 “그가 말씀하신다”(8b, …이가 이르시되)는 말이 따라 나오고 있다.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곧 교회의 교회됨이요 교회의 본질이라는 사실은 본문의 구조에서도 잘 드러난다. 본문은 “처음이신 분이자 마지막이신 분이 말씀하신다”(8b)로 시작하고, “성령이 교회에게 말씀하신다”(11a)로 마친다. 그래서 “예수님이 말씀하신다”와 “성령이 말씀하신다”가 각각 본문의 시작과 끝을 괄호처럼 감싸고 있다. 이렇게 해서 예수님과 성령이 교회에 ‘말씀하신다’는 이 사실이 매우 강조되고 있다. 이러한 구조도 일곱 교회에 보내는 모든 메시지에서 동일하다. 일곱 편지들은 각각 서로 다른 칭찬과 책망, 경고와 권면과 약속들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각 교회가 처한 상황과 형편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일곱 교회에 보낸 모든 편지는 “예수님이 교회에 말씀하신다”(계 2:1b, 8b, 12b, 18b, 3:1b, 7b, 14b)로 시작하고 “성령이 교회에 말씀하신다”(계 2:7a, 11a, 17a, 29; 3:6, 13, 22)로 마치는 이 구조에서는 조금도 다르지 않다. 이것은 이 땅에 있는 교회들이 지역과 시대와 인종과 문화 등에 따라 그들의 형편과 상황은 서로 다를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는 점에서는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 그래야 참 교회이다.

 

  1. 교회가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하는 이유

  그러면 예수님은 누구시기에 그 분의 말씀을 듣는 것이 교회의 정체성이 되는가? 무엇 때문에 교회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하는가?

  첫째, 예수님이 교회의 주인이시므로 교회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 예수님은 자기의 생명을 내어 주고 교회를 사셨다. 예수님은 자신의 피로 사람들을 죄에서 해방시키고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셨다(계 1:5-6). 예수님은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렸다(계 5:9). 그래서 모든 신자와 교회는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 되었다(계 14:4). 모든 신자와 교회는 예수님의 소유가 되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교회의 주인이시다. 예수님이 교회를 세우시고 소유하신다(마 16:18). 예수님이 교회를 시작하시고, 돌보아 지키며, 붙들고 계신다. 예수님이 오른 손에 일곱 별(교회의 사자)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교회) 사이를 거니신다(계 1:13; 2:1). 이처럼 예수님이 교회의 주인이시므로 예수님은 교회에 말씀하시는 것이고, 교회는 그 분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

  둘째, 예수님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신 분(계 2:8b)이므로 교회는 그 분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 예수님은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다”(계 22:13). 따라서 8절의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말은 알파와 오메가라는 뜻이다. 성부 하나님이 알파와 오메가이듯이(계 1:8a) 예수님도 알파와 오메가이다(계 21:6; 22:13).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며, 모든 것을 시작한 분이며 모든 것을 이루고 종결하는 분이다. 예수님은 존재하는 모든 것의 시작자이고 또한 종결자이다. 예수님은 시간과 역사를 지배하신다. 예수님은 만유의 주권자이다. 만물이 예수님의 통치 아래에 있다. 교회도 그렇다. 교회도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주권과 통치 아래에 있다. 그러므로 교회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야 마땅하다.

  셋째, 예수님이 교회에 생명을 주시는 분이기 때문에 교회는 그 분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 예수님은 죽으셨다. 그러나 그는 살아나셨다(8c, cf. 1:18). 예수님은 죽음에서 끝나지 않고 살아나셨다. 예수님이 죽으셨다는 것은 그 분의 고난을 가리킨다. 하지만 “예수님이 죽으셨다”는 말은 바로 앞에 있는 예수님이 “처음이자 마지막인 분”이라는 말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처음이며 마지막이신 분으로서 시간과 역사와 만물을 지배하는 주권적 통치자요 만물의 시작자요 종결자인 예수님이 ‘죽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오히려 예수님의 죽음이 외부 세력에 의해 강압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스스로 선택한 것임을 잘 증명한다. 예수님은 이미 오래 전에 이것에 대하여 예고하셨다.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요 10:18, cf. 요 10:11, 15, 17; 마 20:28; 막 10:45). 이것이 예수님의 죽음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음에서 끝나지 않고 살아나셨다. 그리하여 그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분”(계 1:5)이 되셨다. 예수님은 죽은 자들 중에서 부활하심으로써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분”(계 1:5)이 되셨고, 죄와 사망을 정복한 것을 증거하셨다. 그래서 예수님은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계 1:17b-18)라고 말씀한다. 이렇게 죽음과 부활을 통해 죄와 사망을 정복하신 예수님이 교회와 신자에게 생명을 주신다. 예수님이 ‘생명의 관’을 주신다(10)고 말씀한 것과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는다’(11)고 말씀하신 것은 모두 예수님이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라는 이 사실에 근거해 있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생명수 샘물을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신다(계 21:6). 부활하신 예수께서 목마른 자는 와서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고 말씀하신다(계 22:17). 이처럼 부활하신 예수님이 신자와 교회에 생명을 주시기 때문에 교회는 그분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

  넷째, 예수님은 교회에 충성을 다 하신 분이기에 교회는 그 분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 서머나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예수님을 증거하다가(cf. 계 1:9) 환난을 당하고 경제적으로 궁핍하게 되었으며 자칭 유대인이라고 하는 사탄의 모임으로부터 비방을 받았다. 그들은 고난(苦難)과 가난과 비난(非難)이라는 3중고를 겪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의 환난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들은 곧 옥에 던져져 시험을 당할 것이다. 그런데 이토록 고난을 받는 서머나 교회에게 주님이 이렇게 명령하신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10). 일반적으로 ‘충성’은 ‘열심’이라는 말로 이해된다. 그러나 본문의 ‘충성’(πιστός)은 ‘믿음’(πίστις)이라는 말과 어원이 같다. 그래서 ‘충성’이라는 말은 신실하다, 믿을 만하다, 신뢰할 수 있다(trustworthy)는 수동의 뜻과 믿음이 있다(believing), 믿는다(trusting)는 능동의 뜻을 모두 가지고 있다. 신자는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로 인해 고난을 당할 때에도 믿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하고 또한 믿음을 지키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리고 이 믿음은 “죽기까지” 계속되어야 한다. 여기서 “죽기까지”(ἄχρι θανάτου)라는 말은 ‘죽음에 이를 때까지’라는 시간적 의미이기보다는 정도를 나타내는 ‘죽음에 이를지라도’라는 의미이다. 왜냐하면 모든 신자가 고난을 받아 죽임을 당해야만 신실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주님은 죽기까지 충성하면 생명의 관을 주신다고 약속했는데, 이 생명의 관은 죽임을 당한 순교자들만 받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산 모든 신자들이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약 1:12). 따라서 ‘죽도록 충성하라’는 말은 고난을 받아 죽음에 이르게 되더라도 믿을 수 있고, 또 믿음을 지키는 신실한 신자가 되라는 뜻이다. 신자는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다가 고난을 당해 죽음에 이르게 되더라도 하나님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하고, 또 하나님을 변함없이 믿는 사람이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지사충성’(至死忠誠)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반드시 기억할 것이 있다. 그것은 예수님이 신자와 교회에게 충성을 요구하기 이전에 먼저 그 분 자신이 교회를 위해 죽음에 이르도록 충성하셨다는 사실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음에 이르는 극한의 고난을 당했지만 그 때에도 신실하셨다. 예수님은 죽음에 이르기까지 충성하셨다. 그래서 예수님은 ‘충성된 증인’이라고 불리며(계 1:5), 충성되고 참된 증인(계 3:14)이라고 불린다. 그리고 흰 말을 타고 하늘로부터 나타나신 예수님의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다(계 19:11). 여기서 ‘충신’은 지금까지 말씀한 ‘충성’ 곧 ‘신실함’과 같은 단어이다. 이처럼 예수님은 신자와 교회에게 죽도록 충성하신 분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음이라는 극한의 고난을 당하면서도 죄인인 우리를 살리는 일에 신실하셨다. 그러므로 신자의 충성 이전에 예수님의 충성이 먼저 있다. 예수님은 지사충성의 원형이시다. 예수님이 이렇게 신자와 교회에게 충성하신 분이시므로 교회와 신자는 예수님의 말씀을 귀 기울여 듣고 순종해야 한다.

  다섯째, 예수님이 교회를 가장 잘 아시기 때문에 교회는 그 분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 예수님은 “내가 알고 있다”(9)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이 땅의 교회를 대표하는 일곱 교회 모두에게 똑같이 “내가 알고 있다”는 말씀을 하신다. 이 단어는 요한계시록에서 모두 12번 나타난다(계 2:2, 9, 13, 17, 19; 3:1, 8, 15; 19:12). 그 중에 9번이 예수님의 아심에 사용되었고, 그 중에 8번이 예수님이 일곱 교회를 아신다는 것에 관련되어 있다. 예수님보다 교회를 더 잘 아는 이는 없다. 주님이 교회에 말씀하시는 이유는 그 분 자신이 교회의 상황과 형편을 속속들이 다 잘 알고 계시기 때문이다. 주님은 오른 손에 일곱 별(교회의 사자)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교회) 가운데서(계 1:13; 2:1) 거니시는(계 2:1; 3:4) 분이다. ‘거니신다’는 말은 ‘사신다’는 뜻이다. 예수님은 교회와 함께 사시기에 교회가 당하는 고난과 가난과 비난을 모두 아시며 그들에게 대안도 줄 수 있다. 이처럼 교회에 주시는 예수님의 말씀은 그 분의 아심에 기초한다. 예수님의 아심이 그분의 말씀하심의 근거이다. 주님의 말씀은 교회에 가장 적실한 말씀이며, 교회는 주님의 말씀을 들어야 옳다.

 

  1. 사역자의 책임

  주님은 교회의 주인이시며 시간과 역사의 주관자이시고 만물의 통치자이시며 만주의 주요 만왕의 왕이시다(계 17:14; 19:16). 이러하신 예수님이 죽음에 이르도록 교회에 충성하셨고, 그 충성으로 교회에 생명을 주셨다. 또한 예수님은 교회와 함께 살아서 교회의 모든 형편을 아시고 교회를 돌보아 지키며 인도하신다. 이런 이유들로 인해 이 땅의 모든 교회는 주님의 말씀을 들어야 하며, 그래야 교회답다.

  그러므로 교회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을 수 있는 체계와 프로그램을 만들고 성도들이 그것에 참여하도록 독려해야 한다. 교회의 흥함과 쇠함이 여기에 달려 있다. 하나님의 말씀이 교회를 살린다. 우리나라 초기교회는 하나님의 말씀 듣는 일에 참으로 열심을 냈다. 그들은 성경을 자세히 풀어주고 깊이 있게 배우는 ‘사경회’에 많은 시간과 노력과 물질을 드렸다. 이것이 한국교회가 성장하는 바탕이 되었다. 한국교회가 다시 부흥하려면 모든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일에 열심을 내야한다. 이것이 교회 회복의 비결이다.

  사도 바울이 밀레도에서 에베소교회의 장로들을 불러 놓고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이 무엇인가? “지금 내가 여러분을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여러분을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행 20:32). 사도 바울은 교회를 은혜의 말씀에게 부탁했다. 하나님의 말씀이 교회를 지키고 교회를 교회답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약화되거나 무시되면 교회는 힘을 잃게 되고 멸시를 받을 것이다. 또한 사도 바울은 교회는 진리의 기둥과 터라고 말씀했다(딤전 3:15). 교회는 진리라는 터 위에 진리라는 기둥으로 세워지는 하나님의 집이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진리가 사라지면 교회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또한 교회는 진리를 위한 터요 진리를 세우는 기둥이다. 교회는 진리를 확립하고 책임진다. 이것이 교회의 가장 중요한 사명이다. 이것보다 앞서는 것은 없다. 아무리 선한 일을 한다 해도 이 사명을 감당하지 않으면 그것은 교회가 아니다. 교회가 진리의 기둥과 터가 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교회에 주신 사명이요 영광이다. 교회는 이 영광을 상실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모든 사역자는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바로 듣고 풍성히 들을 수 있도록 온 힘을 다해야 한다. 이렇게 하지 않는 사역자는 교회를 해치는 자이다. 사역자는 성경연구에 전심전력해야 한다. 사탄은 절대로 대충하는 일이 없다. 하물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역자야 말해서 무엇 하겠는가. 사역자는 입을 열면 성경을 여는 사람이 되고, 성경을 열면 하늘을 여는 사람이 되어 말씀을 듣는 모든 이들의 마음이 불타오르도록 해야 한다(눅 24:27, 32, 45).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듣는 교회와 성도가 복이 있다(계 1:3).

 

  1. 맺는 말

  서머나 교회는 고난, 가난, 비난이라는 3중의 어려움을 당하고 있었다. 이러한 고난 중에 있는 교회를 지키고 인도하기 위한 주님의 처방은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었다. 한국 교회도 고난을 당하고 있고, 교회는 더 가난해 질 것이며, 그런데도 교회를 향한 세상의 비난은 점점 더 강해질 것이다. 이러한 때에 교회에 필요한 것이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주님의 처방인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다. 여름성경학교와 수련회가 다가오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회를 교회답게 세울 수 있는 은혜의 때가 오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