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며 섬기며|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_박종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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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며 섬기며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박종훈 목사_궁산교회>

 

인간이 생육, 번성의 복을 누리려면 다양한 생물들이 먹거리를 통해 조화롭게 살아가도록 잘 관리해야 한다

  겹겹이 쌓이고 묵었던 흑염소 외양간의 두엄 내는 작업을 했다. 염소들이 맛있는 풀을 먹고 버려진 나머지는 발로 밟고 배설물과 섞어지면서 자연 발효된 두엄은 한눈에 봐도 곰팡이류가 피어난 양질의 거름이 되었다. 그리고 무수한 붉은 지렁이가 놀란 모습으로 어디로 숨어야 할지 당황하는 모습도 재미있게 보였다. 손수레로 가득 싣고 감나무 밭을 향했다.

  그동안 뿌리를 깊이 내리도록 죽지 않을 정도의 거름만 주었었다. 이제는 견고하게 뿌리를 내리고 팔년이나 자랐기 때문에 본격적인 열매를 기대하며 과실나무에 양분을 공급해주었다. 감나무가 좋아하는 먹이는 거름이다. 그 거름에는 온갖 미생물과 지렁이들이 두엄을 분해하면서 배출하는 배설물들이 식물들의 최고 양식이 된다.

  지렁이를 주 먹이로 삼는 두더지는 지렁이를 먹기 위해 땅속에 굴을 만들고 다닌다. 덕분에 흙속에 신선한 산소를 공급하여 작물들을 건강하게, 흙을 부드럽게 하며 물 빠짐을 좋게 하고 있다. 필자가 심은 작은 고구마 밭이 호미로 캘 수 있을 만큼 흙살이 좋은 것은 두더지가 큰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다. 토지의 회복력으로 두더지가 살면서 고구마 두둑 양 옆으로 고속도로를 만든 바람에 쉽게 흙을 파헤칠 수 있었다.

  자연농법을 시작하기 전 한 두 해는 고구마를 캐려면 쇠스랑으로 힘껏 땅을 파야했다. 그만큼 흙이 단단하기에 농기구의 지렛대 원리를 활용하여 겨우 고구마를 수확했다. 도시에 사는 지인이 농사 체험 한다며 캐보기를 원해 방법을 가르쳐 주었지만 결국 고구마를 캐다가 자루를 부러뜨리고 말았다. 많은 비가 오면 표층이 씻겨나가고 가뭄이 들면 돌처럼 단단하던 밭이, 이제는 밟으면 스펀지처럼 눌러지는 부드러운 흙으로 바꿔진 것이다.

  친환경 생태계는 다양한 생물들이 먹고 먹히는 과정에 자연의 질서가 있고 생명의 번성이 활발하게 활동한다. 우리나라의 모 대기업에서 사과나무를 심었는데 어느 해에 형편없는 수확을 했다고 한다. 순서에 따라 관리를 완벽하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상치 못한 벌레들로 인해 큰 피해를 본 것이다. 갑자기 늘어난 해충들의 원인을 찾기 위해 세계적 전문 학자들을 동원하여 원인을 찾아본 결과 과수밭의 잡초를 제거한 것이 문제였다. 수많은 곤충들이 부드러운 잡초를 먹으며 살고자 했지만 나무를 위해 잡초를 제거하자 먹잇감이 부족하여 거친 과일나무 잎에 달려들었던 것이었다. 해충들은 처음부터 농사에 피해를 주기 보다는 자신들의 먹거리가 없기에 선택의 여지없이 작물에 달려든 것이었다.

  그 이후로 지금은 과수원에 초생재배법을 권장하기도 한다. 식물들은 동물들에게 먹히지만 그 동물들의 육체와 배설물은 다시 식물들의 먹이로 순환(循環)된다. 어느 한쪽만 일방적인 먹이를 위해 다른 생물을 제거하면 그 먹이사슬이 끊어지며 결국 모두가 살기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됨을 역사와 작금(昨今)의 환경이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인류역사가 전쟁의 역사라고 말하지만 그 이면에는 먹이를 서로 더 차지하려는 탐욕이 들어있다. 우리 한반도는 사계절이 뚜렷하고 금수강산의 혜택으로 먹거리가 풍성했다 그로인해 주위 나라의 수많은 외침을 당하며 살아왔었다.

  지금은 남아도는 쌀을 기아에 허덕이는 곳에 나누며 사는 것이 장기적으로 우리의 유익이 될 것이다. ‘곡간에서 인심난다’는 속담이 있듯이 서로 먹거리를 나눌 때 서로가 사는 길이라 여긴다. 경주 최부자집에서는 주변 백리 안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도록 했다 한다. 세상이 뒤바뀌는 난리 속에서도 삼 대를 넘어 부자로 살아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갈수록 이 사회가 실업자가 늘고 일자리가 줄어드는 추세에도 서로가 함께 먹고 살도록 지혜를 모을 때이다.

  정부 정책은 대량농업을 위주로 펼치며 기계화를 내세우지만 가격경쟁력에서 토지가 많은 나라에 밀리고 있다. 기계화가 될수록 사람들 일자리는 줄어들고 그만큼 안전한 먹거리도 줄어든다. 경제적인 잣대로 하다보면 다양한 생물이 없어지고 특정한 농산물의 집중으로 가격하락과 심각한 환경오염을 배출하고 있다. 이제는 가족농이 하나의 대안으로 여긴다.

  소규모의 가족 농으로 친환경 농산물을 생산한다면 많은 일자리가 생기고 다양한 생물들의 먹거리가 순환되며 고품질 농산물을 보장받을 수 있다. 무엇보다 값비싼 농자재가 필요 없어 초기 자본금을 줄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생태계가 복원이 된다면 신약 개발과 아울러 다양한 창의적인 생각과 도안(圖案) 이나 설계(設計)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소싯적 뒷동산에 메어둔 황소와 같이 놀던 시절이 생각난다.

  소들이 언제 풀을 먹으며 어떤 풀을 좋아하고 언제 휴식을 취하며 어떻게 새끼를 낳는지 자연스럽게 보고 알게 되었다. 쇠똥이 마르기전 쇠똥구리가 먹잇감으로 둘둘 말아 자기 집으로 가는 모습은 최고의 장난감이요 구경거리였다. 이미 마른 쇠똥은 악동들의 불장난의 쏘시개 감으로 더없는 재료가 되었다. 자연은 서로 다른 생물들이 정해진 질서와 각기 다른 상황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모습을 통하여 아이들에게 많은 상상력을 키우게 한 위대한 교과서였다. 미련하고 무지한 동물이라도 먹거리로 길을 들이기도 하며 먹을 것으로 유인하여 사냥을 하기도 한다. 지금은 농촌에서도 가축들을 보기가 어렵다.

  대규모로 사육하는 축사에 전염병을 옮길까봐 함부로 구경도 못한다. 동물원에나 미디어를 통해서나 보는 자연은 극히 제한적이다. 먹고 먹히는 자연속의 생물의 변화과정을 보면서 배우는 것은 삶의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이천년 전 예수님이 몰려든 군중들을 보고 제자들에게 말씀을 하셨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수많은 배고픈 백성들에게 만족할만한 양식이 없는 줄 뻔히 알면서도 이 말씀을 한 것은 제자들에게 양식을 공급하는 사명감을 심어 주는 말씀으로 여긴다.

  제자들에게는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전부지만 주님은 그것으로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고 열 두 바구니나 남기는 기적을 베푸셨다. 비단 육신의 양식만 아니라 하늘 양식을 주기를 원하셨던 예수님이시다. 날마다 구하여야 할 양식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가르치신 분이시다. 이 땅의 정치적인 지도자나 종교적 지도자들은 대다수 민중들에게 먹을 것을 공급해주어야 하는 사명을 가지고 있다.

  이 명령은 인류 최초의 사람 ‘아담’이 창조주 하나님께 부여받은 명령이기도 하다.

  생육하고 번성하는 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사람에게 모든 생물을 다스리는 임무도 받은 것이다. 인간은 같은 피조물인 다양한 생물들이 먹거리를 통하여 살아가도록 잘 관리하고 그로인해 사람들도 먹거리를 제공받는 위치에 있다. 하지만 인류는 끝없는 탐욕으로 인해 수많은 생물들을 잃고서야 이제 그 가치를 알고 보호하려는 운동이 일고 있다. 필자가 사는 고창군 전체가 유네스코 생물권 보존 지역으로 선정된 것을 보면 그만큼 다양한 생물들을 보존해야만 하는 중요성을 현실로 말해 주고 있다. 그리고 국제적인 슬로푸드 운동은 고무적인 현상이다. 오늘도 다양한 생물들의 먹거리가 풍성한 살아있는 밭을 보면서 나만의 보물을 간직하고 즐기는 그 느낌을 스스로 누린다.